정도전과 경복궁
김영수교수 / 조선일보 7월 26일
1395년 9월 29일 조선의 새 도읍지 한양의 대궐이 완성됐다. 이성계는 종묘에 나가 조상을 뵙고 제사를 올렸다. 가마를 타고 시내에 들어오자 성균관 학생들이 찬양하는 노래를 바쳤다. 상점들이 늘어선 종로 네거리에 이르자 전악서(典樂署) 여악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성계는 세 차례나 가마를 멈추고 구경했다. 마침내 광화문에 도착하여, 경사를 축하하는 사면령을 내리고 국정 쇄신을 약속하는 교서를 반포했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점을 재차 천명하고, 노역에 지친 백성을 위로한 다음 공사 중 죽은 사람 집은 세금을 면제토록 했다.
10월 7일, 이성계는 새 궁궐에 군신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거나해지고 잔치가 무르익자 이성계는 기분이 좋았다. 정도전에게는 "노래를 들어보니 경의 공이 적지 않았다"며, 특별히 금으로 장식한 각대(角帶) 하나를 더 주었다.
이 자리에서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궁전 이름을 짓게 했다. 정도전은 즉시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큰 복을 받으라는 뜻이다. 경고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임금이 백성을 부려 스스로를 받들게 하는 것을 능사로 삼아서는 안 되니, 서늘한 전각에 있으면 그 맑은 그늘을 나누어 줄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경복궁의 정전(正殿)은 근정전(勤政殿), 정문은 근정문이라 이름 붙였다. 정치에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폐하게 되는 것이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정치같이 큰일이겠습니까? 문왕(전설적 성왕)은 아침부터 해가 기울도록 밥 먹을 겨를도 없이 일하여, 만백성을 잘살게 했습니다." 정도전의 설명이다.
문제는 문왕 같은 왕은 드물다는 점이다. 임금 대부분은 그 반대다. 첫째는 왕 자신의 문제이다. 늘 받들어 모심을 받게 되니, 교만과 안일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둘째는 주변 문제다. 왕의 호감을 받고 싶어 사람들은 "천하 국가의 문제로 정력을 소모시켜 수명을 줄이는 것은 당치 않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어찌 자기를 낮추어 수고해야 하는가"라며, 여악에 사냥, 진귀한 노리개로 손을 잡아 이끈다. 그러면 임금은 이들이 '나를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해, 스스로 황음무도에 빠진 줄도 모른다.
사람이 그리 쉽게 유혹에 빠지겠는가 싶지만, 그게 아니다. 정도전이 '경제문감별'을 저술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임금의 마음은 정치의 근본인데, 경국제세를 논하면서 이를 논하지 않으면 물이 맑기를 바라면서 그 근원을 맑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당 현종 초년의 정치는 참으로 눈부시다. 정치에 부지런하고 뛰어난 인재를 발탁하여, 재위 20년 동안은 천하가 부유하고 편안하며, 감옥에는 죄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년에 여색에 빠지고 환관과 간신을 총애하자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천하가 무너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다. 고려 말 공민왕도 같은 경우다.
"처음이 없지 않으나, 끝이 있기는 적다(靡不有初 鮮克有終)." '시경'의 말이다. 조선 태종이 즉위 초 '임금 노릇 하기를 어렵게 여긴다(君爲難)'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니, 한상경은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고 받았다.
성종 18년, 왕은 임종에 이른 한명회에게 승지를 보내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처음은 부지런하고 뒤는 게으른 것이 인지상정이니, 원컨대 뒤를 삼가기를 처음처럼 하소서(始勤終怠 人之常情 願愼終如始)."
정치는 겉으로 화려하지만, 실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들다.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왕이나 대통령이 많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도전이 왜 경복궁 정전과 정문에 '근(勤)'자를 붙였겠는가.
세종은 우리 역사에서 참으로 '근정전'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왕이었다. 1442년 45세의 세종은 다년의 격무로 건강을 심각하게 해친 상태였다. 당뇨병에 풍습병으로 물을 동이로 마시고, 눈은 잘 보이지 않았으며, 온몸의 뼈마디가 저려 운신조차 힘들었다. 이에 세종은 세자에게 대리청정토록 할 뜻을 밝히며 자신의 정치를 회고했다. "대저 군주가 처음에는 비록 정치에 부지런해도 끝에는 반드시 게을리하게 되니, 당 현종과 헌종이 밝은 거울이다. 내가 이를 부끄럽게 여겨, 즉위 이래 정치를 하는 데 부지런히 힘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날마다 신하들을 만나고 모든 서무를 친히 결재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재판에 지체됨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무가 폐기되지 않았다."
근면은 평범하지 않다. 정치만이 아니라 경영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것이 없다(一勤天下無難事).' 초등학교만 나와 우리나라 현대 경제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한 기업인의 좌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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