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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농업기사철

케어팜을 구상하라

치유농업이 농촌의 다원적 가치 확산  

백종호 기자 / 논설실장 2018.05.29 23:23


이 이야기는 픽션이 아닌 실화다. 영화 <곤지암>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농촌을 배경으로 한 치유․후생․사랑이란 주제를 담았다. 농촌과 사랑이란 키워드에서 소설 <상록수>를 떠올린다면 역시 틀렸다. 좀 더 폭넓은 인류애적인 사랑이야기다.  

내용은 이렇다. “1978년 이탈리아의 어떤 마을에서 정신병원이 갑자기 폐쇄됐다. 지역공동체는 정신병원을 대체할 시설이나 공간이 필요해졌다. 결국 1979년 폐쇄된 병원을 대체할 ‘사회적 농업’이라는 개념으로 농장이 등장했다. 2018년 현재 이탈리아에는 약 2천 개의 사회적 농업 농장이 운영중이다.”  



유럽국가에는 평균 700~1000개씩의 치유농장, 케어팜이 있다. [사진=네덜란드 후버 클레인 마리엔달]
         

어떤가? 실화 같은가? 약간 각색했지만 틀림없는 실화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바람직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바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사회적 농업’이란 말이 사회 전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 농업의 화두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란 말처럼 우리 농업의 현실을 잘 대변하는 말도 없어 보이는 건 그만큼 우리가 농업을 단순하고 1차원적으로만 여겨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는 화두(話頭)가 우리 농촌․농업을 살릴 것인가?

농촌진흥청의 농업용어사전에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농업과 농촌은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도 ▲환경보전 ▲농촌경관 제공 ▲농촌 활력 제공 ▲전통문화 유지 계승 및 식량 안보 등에 기여한다. 이러한 기능들을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라 하며 외부경제 효과로서 사회적 후생을 증진시킨다.”

최근엔 사회적 농업이라는 말도 부쩍 사용빈도가 늘었다. ​사회적 농업이란 농업을 통해 장애인이나 고령자를 돌보고 교육시키며 일자리까지 제공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을 한층 구체적으로 “농업의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에 기반을 둔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농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바로 사회적 농업의 수혜자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장애인, 고령자, 취약자들이 사회적 농업의 보호와 혜택을 받아야할 대상들이라는 말이다.

한국영농신문은 이러한 사회적 농업의 가치 공유․ 확산을 위해 지난 4월 '치유농업, 치매․우울증․약물중독․자폐증 치료. 직업학교 기능까지' 라는 기획기사를 1면에 게재한 바 있다. ‘네덜란드 그린케어․케어 팜 운영사례로 본 대한민국 치유농업 전망’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기사에서는 이미 네덜란드와 노르웨이에 각각 1,100개, 벨기에 595개, 프랑스 500개, 오스트리아 250개, 독일에는 162개의 치유농업(Agro-healing)농장 , 즉 케어 팜(Care Farm)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소개됐다.



사회적 농업은 장애인,고령자, 취약자들의 치유, 회복, 안정 기능을 한다. [사진=네덜란드 후버 클레인 마리엔달]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의 치유농장 또는 케어 팜에서는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노인들, 장기 실업자, 화상을 입은 사람들, 뇌손상자 등에게 (유기농) 농장․정원에서 정원가꾸기․레스토랑 운영 등의 체험과 학습을 제공하고 있었다. 65~95세 사이의 치매 노인들에게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

심지어는 자폐증 청소년들이 그곳 치유농장, 케어팜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사례들도 우리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런 면에서 이 기사는 지난 4월 한국영농신문의 치유농업 시리즈 2편이라고 해도 좋겠다.

   

'사회적 농업'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실천조직 전국 9개소 선정, 올해부터 본격 시동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사회적 농업’이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엄연히 포함돼있다. 이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임에 틀림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고 했던가.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3억 7,8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사회적 농업 베이스캠프 마련을 위해 전국 9개소에 각각 6,000만 원씩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라북도가 3곳으로 가장 많고, 전남과 충북이 각각 2곳, 경북 충남이 1곳씩 도합 9개다.

이번에 선정된 사회적농업 실천 조직 9곳은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사회적협동조합, 전북 완주) ▲행복농장(사회적협동조합, 충남 홍성) ▲청송해뜨는농장(농업회사법인, 경북 청송) ▲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 전남 영광) ▲농촌공동체연구소(사단법인, 충북 제천) ▲성원농장(농업회사법인, 충북 보은) ▲무주팜앤씨티(농업회사법인, 전북 무주) ▲야호해남(영농조합법인, 전남 해남) ▲선거웰빙푸드(영농조합법인, 전북 임실) 등이다.  



전북 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모임 [사진=완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페이스북]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 9개소 선정․지원을 계기로 한국형 사회적 농업 모델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며 차차 전국단위 네트워크로 조직화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 역시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사회적 농업에서 찾아야 한다. 장애인, 노인, 범죄피해가족 등 사회적 약자들이 농업을 통해 치유,회복,안정,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끔 그 가능성을 찾는 것이 바로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 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유럽에서는 1970년대부터 민간 주도로 사회적 농업이 시작됐다. 이탈리아의 사회적 협동조합 ‘아그리콜투라 카포다르코(Agricoltura Capodarco)’ 농장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앞서 본보가 보도한 '치유농업'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농민, 원예치료사, 멘티, 정신과 의사 등의 도움으로 발달장애인, 약물 중독자, 정신질환자, 치매 노인 등의 재활치료를 돕고 있다. 물론 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다양한 농업활동을 통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사회적 농업 활성화 지원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전남 영광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과 야호해남영농조합법인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전남 영광군 묘량면은 65세 이상 노인이 39%, 독거노인이 250명이나 된다. 그래서 여민동락영농조합법인은 노인들이 참여하기 쉬운 야생화 재배에 힘을 모았다. 노인들의 삶의 보람을 일터에서 찾아 선물한다는 취지다.  야호해남영농조합법인에서는 다문화여성이 지역 축제를 기획하고 문화강사로 활동하며 자존감을 키워가고 있다. 나머지 7개 시범사업 대상들도 사회적농업이라는 취지에 걸맞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꾸준히 써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농업', 기대가 크다.  

백종호 기자 / 논설실장  bjh@youngn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