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쁨 스위치가 쉽게 꺼질까?
인간은 왜 기쁨 스위치가 쉽게 꺼질까?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그 기쁨은 잠깐이다. 수년간 몸과 영혼을 팔아 높은 자리에 오른들 그 기쁨은 순간이다. 왜 신(神)은 인간에게 잠깐의 쾌락만을 허락한 것일까? 좀 더 오래 지속되는 쾌락을 부인한 신이 때로는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나 신이 그렇게 한 건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라고 한다.
수렵시대 인간이 사냥에 성공했다고 하자. 창이나 화살에 맞은 먹잇감이 쓰러지는 순간, 온몸이 짜릿했을 것이다. 그 고기를 씹을 때 역시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계속되면 안 된다. 곧 사라져야 한다. 그래야 인간은 다시 사냥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가 쓴 책 `행복의 기원`에 나오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오늘 아무리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어도, 살기 위해서는 내일 또 사냥을 해야 한다. 사냥에 대한 의욕이 다시 생기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 오늘 고기를 씹으며 느낀 쾌감이 곧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쾌감 수준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런 ‘초기화’ 과정이 있어야만 그 쾌감을 유발시킨 그 무엇(고기)을 다시 찾는다. 창을 들고 동굴 밖으로 다시 사냥을 나서는 이유는 사실 잃어버린 쾌감을 다시 잡아오기 위함이다." 만약 고기를 씹을 때 느낀 쾌감이 마냥 지속된다면 인간은 계속 사냥을 미룰 것이다. 동굴 안에 앉아, 그 기쁨을 계속 만끽하려고 할 것이다. 먹을거리를 구하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이제 우리는 신에게 감사해야 한다. 쾌락과 기쁨의 스위치가 쉽게 꺼지도록 설계한 덕분에 우리 인간은 생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생존을 얻는 대신, 인간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됐다. 우리는 끝없이 기쁨에 배가 고픈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혼 초에는 내 집만 마련하면,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았다. 그러나 작은 내 집을 갖고 나면, 기쁨은 며칠이다. 집 크기를 늘려야 행복해질 것 같다. 그래서 집을 늘린다. 하지만, 이 역시 잠깐이다. 이제는 학군 좋고 교통 편한 곳으로 옮겨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 해도 그 기쁨 역시 잠깐일 것이다. 인간은 생존을 얻는 대가로 끝없이 `쾌락의 쳇바퀴`를 돌고 돌아야 하는 존재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우는 게 옳을까? 드물게 찾아오는 쾌락과 기쁨 거리를 좇는 건 비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몇 년에 한번 찾아오는 승진에 목을 맨다고 해보자. 이를 위해 다른 수많은 기쁨 거리를 포기하고 산다고 해보자. 비록 승진에 성공한다고 해도 몇 년 씩 몸과 영혼을 상해가며 얻은 기쁨의 유효기간은 기껏 며칠이다. 잠깐 며칠 기쁨을 누리자고 몇 년 씩 기쁨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다.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럴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작더라도 자주 느낄 수 있는 기쁨 거리를 찾는 게 현명한 전략이다. 그러면 우리는 삶에서 기쁨을 더 자주 느낄 것이다. 더 자주 행복해할 것이며, 삶에서 행복한 순간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어날 것이다.
전문가들도 행복은 `강도(intensity)`보다 `빈도(frequency)`가 중요하다고 한다. 큰 행복보다는 종종 찾아오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라는 뜻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 최근 유행을 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큰 행복을 주는 건 대체로 불확실하고 이루기 어렵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거나 큰돈을 버는 것 등이 그런 예다. 몇 년을 투자해도 아무 성과를 못 낼 수 있다. 이런 것보다는 생활 속에서 작은 행복 거리를 추구하면 기쁨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는 게 `소확행`의 전략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고 산책을 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일주일에 몇 번도 가능하다.
다만 행복은 앞선 칼럼(goo.gl/drtfv6)에서도 썼듯이 좇으면 좇을수록 멀어진다. `소확행`이라고 해도 행복이나 기쁨을 직접 목적으로 무엇을 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 보면 부산물로 얻어지는 게 행복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 현대인은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들이고 산다. 그 일이 의미 없다 느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영혼이 죽어가는 걸 느낄 뿐이다.
다만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해도 좌절과 퇴보만 있으면 소용이 없다. 테레사 아마빌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3년 동안 238명의 전문직 직장인들로부터 1만 2000일 분량의 일기를 받아 이들의 내면생활을 추적 조사했을 때였다. 가장 기분 나쁜 날에 어떤 일이 있었나 봤더니, 퇴보(좌절)가 67%로 가장 많았다. 프로젝트나 업무에 대한 지원 부족(방해제)이 42%, 무시나 모욕감 같은 `독소`가 18%로 그다음이었다.
반면 가장 기분 좋은 날에는 `전진`이 있었다. 76%의 비율로 압도적이었다. 업무에 대한 지원(촉매)이 43%, 격려나 위로 존중 등 `영양소`가 25%로 뒤를 이었다. 결국 우리가 일에서 행복해지려면 첫째 그 일에 의미가 있어야 하며, 둘째 그 일에서 전진이 있어야 한다. 아마빌 교수는 의미 있는 일에서 전진을 느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며 업무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효과를 일컬어 `전진의 원리(The Progress Principle)`라고 불렀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에서 전진을 이룬다고 해도 쾌락의 쳇바퀴는 어김없이 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느낀 전진의 기쁨 역시 오래가지는 않는다. 금세 사라진다. 우리 두뇌는 또다시 `다시 기쁨을 느끼고 싶어. 기쁨을 찾으라`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렇기에 전진의 원리에도 `행복은 강도보다는 빈도`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크고 불확실한 전진보다는 작지만 종종 얻을 수 있는 `작은 전진`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행복 전략`이다. 몇 달에 한 번 가능한 `큰 전진`을 기대하고 직장생활을 설계하기보다는 빈도 높은 `작은 전진`에 집중하는 게 옳다. 그래야 우리는 더 자주 전진을 경험할 것이고 더 자주 기분이 좋아질 것이고 더 자주 업무에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아마빌 교수 역시 과거 나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작은 전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신이 말하는 전진은 꼭 크고 중요한 전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아마빌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전진의 원리는 일상적이거나 점진적인 작은 전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시 말해 큰 승리가 아닌 `작은 승리`(small wins)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는 일기 분석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작은 전진을 도모하자.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조직에서 일을 하자. 그게 행복으로 가는 최선의 전략이다.
[매일경제 & mk.co.kr, 김인수 오피니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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