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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농업과문화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

펄벅의 『살아있는 갈대』


 

 

 

 미국 태생의 작가 펄벅(Pearl S. Buck, 1892~1973)이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실은 많은 이들이 안다. 그러나 그가 구한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The Living Reed』(살아 있는 갈대)라는 소설을 쓰고, 우리나라에서 10여년 동안 사회사업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살아있는 갈대』는 구한말에서부터 1945년 해방되던 해까지 한 가족 4대의 이야기다. 펄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언론에서 『대지』이후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이 소설을 펄벅이 한국에 보내는 애정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흔히 외교관 100명이 10년 걸려서도 못할 일을 단번에 해냈다는 표현을 쓰는데, 당시 벽안의 작가가 쓴 이 소설이야말로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김일한이 둘째아이의 출산 소식을 기다리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일한은 주변국인 중국·일본·러시아가 호시탐탐 대한제국을 넘보던 구한말 격동기에 왕실 측근으로 그의 아버지과 함께 당시 미묘한 왕조의 몰락에 연루되어 있다. 대원군 축출사건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본에 의한 강제합병이 이루어지자 김일한은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와 두 아들 연춘과 연환에게 학문을 가르치며 세월을 보낸다. 연춘은 성장해 집을 떠나 독립투쟁에 가담하고, 연환은 학교 교사가 되어 기독교 신자인 동료 교사와 결혼해 지식인으로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한다. 그러던 중 연환은 3·1운동 때 불타는 교회에 갇힌 아내와 딸을 구하려다가 그들과 함께 죽고 홀로 남은 그의 아들 김양(金陽)은 할아버지 김일한이 키우게 된다. 한편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에 갇혔던 연춘은 탈옥해 중국 만주벌판을 누비며 독립투쟁을 계속했다. ‘살아 있는 갈대'도 이 때 생겨난 별명이다. 연춘은 북경에서 한녀라는 여성을 만나 함께 지내다가 그가 자신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남경으로 떠난다. 그 후 한녀는 연춘의 아들 사샤를 낳고 병으로 죽고, 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사샤는 한국으로 돌아오다가 귀국길에 오른 아버지 연춘과 우연히 만나 서울에 있는 할아버지 김일한의 집으로 오게 된다. 귀국한 연춘은 해방이 되자 미군이 인천으로 들어오던 날 남아있던 일본 경찰에 의해 피살되고, 아들 사샤는 북으로 떠난다. 그리고 의사가 된 연환의 아들 양은 서울의 미국인 병원에 남게 되어 장차 한민족 간에 펼쳐질 이념의 갈등과 민족분단의 비극을 예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살아있는 갈대』는 한 가족의 파란 많은 삶을 통해 과도기 한국 역사와 문화를 치밀한 고증작업과 극적인 구성, 탄력 있는 문체로 형상화한 대작이다. 한 가족의 삶이 아리랑 고개를 넘는 모습과 같아서인지 이 책의 표지엔 한글로 쓴 굵은 글씨의 아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을 펴낸 뉴욕 존 데이 출판사(The John Day company) 발행인이 펄벅의 남편이고, 이미 1941년에 『Song of Ariran』(아리랑의 노래)을 낸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이 출간된 1963년, 우리나라에서도 영문학자 장왕록(張旺祿)교수의 번역으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는 제목으로 동시 출판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글/진용선(정선아리랑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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