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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좋은글모심

단풍

밤기온 10도 이하면 엽록소 파괴 울긋불긋

 


◇가을에 단풍 들고 낙엽 지는 이유


가을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지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나무의 뿌리가 수분을 흡수하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수분 부족을 겪게 되고 땅이 얼어붙는 겨울로 갈 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해진다. 나뭇잎은 햇빛과 함께 공기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나무의 에너지원을 만드는 광합성 작용을 한다. 광합성 과정에서는 질소, 수소도 함께 필요한데 수소는 물을 통해서만 공급받을 수 있고 질소는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무는 겨울 동안의 생존을 위하여 물과 질소를 내부에 축적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나무는 물과 질소를 소비하는 광합성 작용을 멈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광합성 작용을 주도하고 수분을 증발시키는 역할을 하는 나뭇잎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뭇잎은 엽록소로 가려져 녹색으로 보이지만 내부에는 황색 또는 주황색인 크산토필과 카로틴이라는 색소가 들어있어 원래부터 여러가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또한, 낙엽을 분석하면 질소, 인, 칼륨 등은 적고 칼슘, 규소 등이 많다. 질소, 인, 칼륨 등이 적은 것은 수용성의 물질로 존재하다가 낙엽 시기에 줄기로 이동되고 칼슘, 규소 등이 많은 것은 불용성의 물질로 되어 잎 속에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은 낙엽 현상으로 불필요한 무기질을 체외로 배출한다고 볼 수 있다. 질소(N), 인(P), 칼륨(K)은 식물에게 꼭 필요한 3대 비료 성분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나무는 재활용하기 위해 잎에 있는 N, P, K 같은 무기양분을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잎에 들어 있던 질소의 3분의 2가량이 감소되는데 주로 엽록소에 함유되어 있던 질소가 줄어들면서 엽록소가 파괴되며 이 과정에서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주황색이나 노란색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재활용 물건을 이용하듯이 나무도 낙엽을 떨어뜨리기 전에 죽어가는 잎에서 질소(N), 인(P), 칼륨(K) 등의 가용성 물질들을 모아 줄기의 유조직에 저장하고 다음 해에 잎을 낼 때 다시 사용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것을 체외로 배출한다. 실제로 낙엽에는 질소(N), 인(P), 칼륨(K) 등이 적게 들어있다. 반면, 칼슘(Ca), 마그네슘(Mg)과 규소(Si) 등 불용성 물질은 많이 축적되어 남아있다. 이처럼 물건을 오래 쓰기 위해 부속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듯이, 오래된 잎을 낙엽으로 떨구고 다음 해에 새로운 잎을 내는 것이 나무가 장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의 하나인 듯하다.


소나무나 동백나무, 사철나무, 가시나무 등은 왜 단풍이 들지 않을까? 상록성 침엽수나 활엽수는 잎이 두껍고 질기거나 겨울이 오면 잎에 지방을 축적하고 두꺼운 세포벽과 왁스층을 만들어 효과적으로 열과 물을 관리하기 때문에 단풍이 들지 않는다. 소나무 잎은 단풍이 아니라 노화에 의해 변색되고 낙엽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사철 붉은색을 띠는 홍단풍은 정상적인 녹색 종에서 유래한 변종인데, 안토시아닌과 함께 들어 있는 엽록소에 의해 정상적인 광합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붉은 고추는 안토시아닌 때문이 아니고 주로 캡산틴이라는 색소 때문에 붉은 색을 띠게 된다.

/그래픽=안병현

 

대부분의 식물들은 녹색 잎과 줄기를 가지고 있다. 식물이 녹색을 띠는 건 식물 세포 안에 초록색 색소인 '엽록소'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엽록소 덕분에 식물은 동물과 달리 태양의 빛에너지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해 포도당을 만들어 그 과정에서 산소를 방출할 수 있다. 이것을 바로 식물의 광합성이라한다. 하지만 식물의 색소에는 초록색 엽록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여름에는 엽록소가 많지만, 사실은 노랗고 주황빛 계열의 색을 내는 카로틴과 크산토필, 붉은빛을 띠는 안토시아닌 등 다른 색깔의 보조 색소도 함께 갖고 있다 이런 보조 색소 덕분에 식물은 다양한 파장의 햇빛을 흡수할 수 있다.

한여름에 식물은 광합성으로 만든 포도당과 수분이 줄기와 잎 사이를 활발하게 이동한다. 하지만 밤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가을이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먼저 식물은 겨울나기에 대비하기 위해 잎과 줄기를 연결하는 부위의 세포를 단단하게 만듣다. 몸속 수분과 영양분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단한 칸막이 같은 세포층을 '떨켜층'이라고 부른다. 떨켜층이 만들어지면 식물 뿌리가 흡수한 물이 나뭇잎으로 공급되지 못한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잎은 산성화되고 수분이 부족해지면서 엽록소가 차츰 빛을 잃기 시작한다.

엽록소가 파괴되면 그동안 제 색을 드러내지 못했던 보조 색소들의 색깔이 비로소 겉으로 드러나게 되 노랑, 주황, 빨강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다채로운 색깔로 잎이 물들게 되는 것이다. 노란 단풍은 은행나무와 고로쇠나무, 주황 단풍은 사탕단풍과 모과나무, 빨간 단풍은 당단풍과 공작단풍 등에서 볼 수 있다.

◇빨간 단풍 만드는 안토시아닌

식물이 가지고 있는 색소 중 붉은색을 내는 안토시아닌은 남다른 특성이 있다. 2003년 미국 몬태나주립대 연구진은 안토시아닌 생성이 억제된 잎일수록 자외선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엽록소가 파괴되면 일반적으로 자외선과 과도한 활성산소가 식물을 손상시키는데, 안토시아닌이 이런 손상을 막아 나무를 보호해준다.

안토시아닌이 다른 식물들의 생장을 방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미국 콜게이트대학교 프레이 박사 연구팀에 의해 발표되었다. 상추 씨앗 위에 여러 가지 색깔의 잎을 뿌리고, 상추씨가 발아하는 정도를 비교한 결과, 붉은 단풍나무 잎을 얹은 상추씨의 발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또 영국 임피리얼대 연구팀에 따르면 안토시아닌은 해충을 퇴치하는 작용도 한다고 한다. 보통 야생에서 붉은색이 독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진딧물이 붉은색보다는 노란 잎으로 더 많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오색 단풍.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색체예술은 가을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색깔로 사람을 유혹하는 가을 단풍은 단지 미적 관심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단풍이 하늘을 오염시키고 기후를 바꾸는 ‘대기의 박테리아’를 뿜어내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풍들의 색깔이 바뀔 때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화물’(VOCs: Volatile Organic Compounds)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녹색식물의 잎과 줄기에서 VOCs가 나온다는 건 알려졌지만 형형색색의 단풍이 VOCs를 대량 내뿜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다. 

 

식물이 어떻게 자연적인 VOCs를 통해 오존 배출원 노릇을 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오존은 햇빛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380nm 이하 파장의 자외선에 의해 질소산화물의 광화학 사이클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그런데 식물에서 발생하는 이소프린, 테르펜, 알코올, 카르보닐화합물, 에스테르 등 탄소원자 1∼10개로 이뤄진 탄화수소화합물이 대기중에 있으면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오존이 생성된다. 대기중에 질소산화물이 많이 있으면 광분해 과정을 통해 발생기산소가 많이 생겨나 오존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VOCs가 질소산화물의 광화학 사이클에 참여하면 광분해 과정의 순환속도를 빠르게 증가시켜 질소산화물에 의한 오존 발생속도를 훨씬 앞지르게 된다. 

 

그러나 식물의 VOCs를 무조건 유해물질이라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식물은 오존을 비롯한 오염물질을 흡수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 이로운 향기를 방출해 공기의 질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청정지역을 벗어난 대도시의 식물이 방출하는 자연 VOCs이다.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 식물들이 자란다면 일사량이 많은 여름철에 위험한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단풍 초기에 활발한 생리적 자연 배출현상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대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기도 한다. 놀랍게도 단풍들은 낙엽으로 땅에 떨어져 완전히 마를 때까지 VOCs를 발산하는 오존 형성의 전생애 프로그램이 내장돼 있다. 물론 뜨거운 햇볕이 사라진 뒤라면 오존으로 인한 인체의 영향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때에는 오히려 마치 정글 속의 하이에나처럼 오존을 분해해 대기를 청정하게 한다. 

 

 

참고: 안주현 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