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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한생각

감동의 수상소감

마음의 수상 소감

 

 

 

화제가 된 박은빈의 수상 소감을 계기로 어떤 수상 소감들이 큰 울림과 함께 오래 기억되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됐다. 가장 많이 회자하는 수상 소감은 2005년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황정민의 ‘밥상’ 수상 소감일 것이다.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 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스포트는 제가 다 받아요.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요.”

 

음지에서 땀 흘리는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들에게 영예를 돌린 ‘겸양’의 수상 소감이었다. 몇해 전 한 영화제작자로부터 황정민의 미담을 듣고선, 그때 수상 소감이 단순한 겸양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촬영 현장에 트레일러를 준비해 달라고 해서, 제작자는 ‘편하게 쉬고 싶었구나’라는 생각에 트레일러를 마련해줬는데, 정작 그 트레일러에서 휴식을 취했던 이는 황정민 자신이 아니라 쉴 곳 없던 조·단역 배우들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수상 소감은 그런 진심이 담겨 있기에 여전히 전설로 통한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2019년) 대상을 받은 배우 김혜자가 드라마 내레이션으로 대신한 수상 소감은 작품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건, 30년 넘게 하는 국내외 자선 활동이든, 도전의 연속인 연기 경력이든,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선한 영향력을 추구하는 그의 인생 궤적이 수상 소감에 겹쳤기 때문일 터다.

 

제56회 백상예술대상(2020년)에서 ‘동백꽃 필 무렵’으로 TV 부문 남자조연상을 받은 배우 오정세의 수상 소감은 삶이 뜻대로 되지 않아 괴로울 때 꺼내보고 싶어진다.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하다 보면, 평소와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저한테는 동백이가 그랬습니다. 힘든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오정세는 자신의 존재감을 대중에 각인시키기까지 20년 가까이 걸렸지만, 조바심내지 않고 꾸준히 연기했다. 매 작품,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치밀한 캐릭터 연구를 했고, 결국 자신만의 ‘동백꽃’을 피워냈다. “작품이 망하든 성공하든 100편 모두 똑같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찾아온 결과다. 노력만큼의 보상이 없다고 자책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진솔한 위로와 격려의 말은 없을 듯하다.

 

“여성 여러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세요.”(량츠충), “(베트남 탈출) 보트를 타고 긴 여정을 통해 이렇게 큰 무대까지 올라왔습니다. 여러분의 꿈을 반드시 믿으셔야 합니다.”(키 호이 콴) 등 감동적인 수상 소감들이 많았기에 올 아카데미 시상식은 더욱 특별한 인간승리 드라마가 됐다.

 

자신의 길을 의심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노력하며 버텨온 자만이 영광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기에 명 수상 소감은 훌륭한 인생 교과서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삶에 대한 따뜻한 통찰로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의 꽃을 피워주는 수상 소감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자체로 상을 받을 만한 수상 소감 말이다. 정현목 중앙일보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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