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산도는 고품질농업의 키워드
대학에서 토양학 강의를 처음 들은 것이 1960 년이었다. 토양학 강의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항목이 토양의 산도다. 토양에 들어 있는 점토와 부식의 표면이 음전기를 띠고 있기 때문에 토양의 산도는 복잡한 면을 갖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학교에서 비료학을 배울 때에는 유안 같은 비료는 화학적으로, 생리학적으로 산성비료이며 그래서 유안을 같은 비료를 오래 쓰면 흙이 산성으로 변할 것이라고도 배웠다.
학교에서는 토양의 산도에 대해 그 정도로 배웠다. 1964년에 농촌진흥청에 와서는 우리나라 토양의 산도가 어느 정도인지, 산성인 토양은 왜 개량해야 하는지, 어떻게 개량하는지에 대해 체험적으로 공부도 하고 연구도 했다.
1966 년인가에 산성토양개량을 위해 석회를 줄 때 석회를 얼마나 주어야 할지를 알아내는 데에 쓸 석회소요량간이검정기를 개발해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게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토양의 산도에 관해 꽤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 때 우리나라 토양학계의 분위기는 산성 토양은 대체로 개량의 대상이라고 믿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모든 토양학 책들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나도 그대로 믿었다.
1968년 12 월부터 1969년 3월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과정을 공부하는 동안에도 산성토양은 개량의 대상이라고 배웠다.
1982년부터 4년 간 인도의 하이드라바드(Hydrabad) 근교에 있는 국제반건조열대작물연구소(ICRISAT)에서 질소비료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나는 토양의 pH와 작물의 생육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때까지 내가 배웠던 바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ICRISAT가 위치한 곳은 반 건조열대(半 乾燥熱帶)다. 이곳은 한해 내내 낮 기온은 섭씨 40도를 웃도는데 한 해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은 350~700 mm 정도다. 이런 기후조건 때문에 이 지역의 토양은 대부분 상당히 알칼리성이다. (pH 8.5 정도)
토양학 책에 따르면 pH가 8.5 정도인 토양은 pH가 너무 높아 반드시 개량해야 할 토양이다. 그런데 그곳에 적응된 작물들은 그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8.5인 토양에서 재배된 수수(현지에서 개발된 품종)의 작황
ICRISAT 시험포장의 건조한 토양의 pH는 8.5 정도로 알칼리성이다. 토양의 pH가 5.5 정도로 산성인 온대지방에서 어떤 밭토양의 pH가 이정도로 높게 관리되면 그 토양에서 자라는 작물에는 대체로 철부족증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반 건조지대에서는 토양의 pH가 이 정도로 높더라도 비료만 적절히 주면 작물은 아무 이상 없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위의 사진은 ICRISAT 토양의 pH가 8.5인 포장에서 비료를 적절히 (N-P2O5-K2O; 150-60-60 kg/ha) 주고 재배한 수수의 작황을 보여준다. 이 밭의 수수 수량은 6.5 ton/ha였다. 이정도로 넓은(1 ha) 포장에서 이런 작황은 아마도 내가 처음 보여주었는지 모른다. 비료를 거의 주지 못하면서 수수를 재배하는 농가가 얻는 수수 수량은 평균 0.7 ton/ha였다.)
나는 ICRISAT. 시험포장에서 4 년 동안에 수수, 조, 땅콩, safflower(이 지역의 주요 유료작물 가운데 하나임: 우리나라에서는 이 작물을 홍화라고 부르면서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고 함) 등의 작물들에 대해 23 개의 포장시험을 했지만 어떤 경우에도 토양의 pH가 8.5 정도로 높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을 본바 없다. 이런 시험결과를 보면서 나는 토양학 책에 실려 있는 토양의 pH와 작물생육 사이의 관계에 대해 동의 할수 없게 됐다.
콜롬비아의 자연 식생양상
나는 1993 년 10 월과 11 월, 두 달 동안 한국국제협력단의 농업전문가로 콜롬비아에 파견 됐었다. 방문목적은 그 나라의 산지농업의 문제점에 대한 자문을 하는 데에 있었다.
콜롬비아는 열대다우지역에 위치한 나라다. 이 나라는 적도에 가깝기 때문에 기온이 높을뿐 아니라 지형적 특징 때문에 비가 메우 많이 온다는 특징이 있다. 대체로 한 해 비오는 양이 약 5,000 mm 정도다. 따라서 토양이 많은 빗물로 �기게 되고 그래서 토양은 강한 산성이다. (pH 4.5 전후: 여기를 참조))
토양학 책들에는 예외 없이 토양이 이 정도로 산성이면 식물이 자라기 어렵고 농사도 짓기 어렵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이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위의 사진이 보여 주는 것처럼 콜롬비아의 토양을 비록 강산성이지만 그 지역에 적응된 식물들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롬비아의 강산성인 토양에서 잘 자라고 있는 두과작물의 일종인 동부(Cowpea)
이 나라의 강산성 토양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것은 산과 들에 자연적으로 자라는 식물들 뿐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과과작물은 특히 산성토양에서는 잘 자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두과작물까지도 강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인도의 반건조지대에서는 토양의 pH가 8.5 정도로 알칼리성인 경우에도 수수, 조, 땅콩 같은 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았고, 비가 매우 많이 와서 토양이 강산성인 콜롬비아에서도 여러 가지 식울과 농작물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경우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즉, 식물(농작물 포함)은 산도가 다른 토양을 만나 오랜 세월이 가면 그 토양에 적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니, 어쩌면 그런 토양에서 살아남는 식물들만 오늘날 볼 수 있게 된 것일 것이다. 그 전말(顚末)이야 어쨋든 지금 토양의 pH가 광범위하게 다른 토양들에서 여러 가지 식물들(농작물을 포함하여)이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토양학 책들은 토양 산도와 토양 중 작물양분유효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예외 없이 위의 그림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책에 따라 그림의 모양에는 다소 차이는 있지만 모든 토양학 책들은 토양의 pH가 4.5 정도로 낮으면 질소, 인산 가리 칼슘, 마그네슘 같은 성분의 유효도가 낮아지고, 알루미늄, 철, 망간, 아연 같는 것은 과다하게 될 가능성이 있으며 토양의 pH가 8.5 정도로 높으면, 인산, 가리, 미그네슘, 철, 아연 구리, 망간 등의 유효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대체로 토양의 pH가 6~7 사이인 것이 바람직함을 보여주는 그림을 시싣고 있다. 위의 그림은 여기에서 따옴
토양의 산도와 여러 가지 성분들의 유효도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림은 토양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화합물이 산성 용액에서 녹고 알칼리성 용액에서는 침전된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적절하다.
그런데 농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위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토양 산도에 대하여 1, 2, 3"에서 소개한 것처럼, 비가 적게 와서 pH가 8.5 정도로 알칼리성인 토양에서도 작물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또 비가 매우 많이 와서 pH가 4.5 정도로 강산성이 토양에서도 작물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위의 그림이 잘못 된 것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토양학적으로 따져보면 위의 그림은 더 이상 옳을 수 없을 만큼 옳다. 그렇다면 이 이론적 정보가 현장에서 관찰되는 바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pH 4.5 정도인 산성 토양에서는 토양용액의 알루미늄, 철, 망간 등의 농도가 높아져 작물이 이들 원소를 너무 많이 흡수하게 되어 피해를 입게 되고, pH 8.5 정도인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토양용액에 녹아 있는 인산, 철, 망간, 아연 등이 매우 적어져 작물이 이들 성분을 적절히 흡수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토양학적인 해석은 토양학적으로는 따질 때에는 아무런 흠이 없다. 그런데 현장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이와 일치히지 않는다. 즉, pH 4.5 정도로 산성인 토양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에서도 또 pH 8.5 정도인 토양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에서도 농작물을 포함하는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잘 자란다는 사실이 관찰된다.
이 두 사실의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하해야 할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1996년에 일본에서 열렸던 식물의 양분 획득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연찬회(Workshop on Plant Nutrient Acquisition: New Concept)에서 얻었다. 위 사진은 그 연찬회의 결과를 발간한 책이다.
식물의 양분획득이라는 개념은 널리 알려진 식물의 양분흡수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식물의 양분흡수의 개념은 여러 가지 양분이 녹아 있는 토양용액이 식물에게 흡수될 때 식물양분도 함께 흡수된다는 개념이다. 이 경우 식물양분이 식물에게 흡수되려면 식물양분이 반드시 토양용액에 녹아 있어야 한다.
식물의 양분획득이라는 개념은 식물이 토양에 들어 있는 식물양분이 들어 있는 고체화합물을 녹여 식물양분을 흡수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식물양분이 작물에게 이용되기 위해 미리 토양 용액에 녹아 있지 않아도 된다. 이 개념의 한 예를 그림으로 내타낸 것이 다음 그림이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식물뿌리가 인산을 획득하는 개념을 나타낸 것이다. 이 개념에 있어서 식물 뿌리는 두 가지 기작을 이용하여 토양에 고체상태로 있는 인산화합물로부터 인산을 얻는다. 그 중 한 가지 기작은 식물뿌리가 여러 가지 유기산들을 분비(分泌)하여 토양에 있는 무기태의 인산화합물을 녹여 인산을 흡수하는 것이고, 다른 한 기작은 토양에 있는 미생물들이 여러 가지 효소를 분비하여 토양에 있는 인산을 함유하는 유기물을 분해시켜 식물이 인산을 얻게 하는 기작이다.
이 기작들은 주로 알칼리성인 토양에서 식물이 인산을 획득하는 기작들이다. 식물은 인산뿐 아니라 알칼리성인 토양에서 철 같은 미량원소를 얻는 데에도 이런 기작을 이용한다.
식물은 어떤 양분을 획득하는 데에만 이런 특이한 기작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토양의 pH가 4.5 정도로 강한 산성일 때 토양용액에 많이 녹아 있게 되는 알루미늄이 식물체내로 너무 많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기작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한 산성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들 또는 작물 품종들이 그런 기작을 이용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런 품종의 발견이 강산성 토양이 널리 분포하는 남미의 초원지대에서도 밀이나 옥수수 재배를 가능하게 한다.
생물이란 놀라운 것이다. 생물은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있고 그 본능이 생물이 어려운 여건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일 것이다. 간난(艱難)을 극복한다는 말은 사람에게만 쓰일 말이 아닌 것 같다. 모든 생물들에게 그럴 능력이 있는 것임에 틀림 없어 보인다. 그런 능력이 없는 생물은 변화무쌍(變化無雙)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은 곧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하는 생물만 살아남는 것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토양학자들이 식물이 살아가기 좋은 토양조건을 만들어 주려는 노력은 가상한 일이지만 식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도외시하면서 토양학적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그리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위적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자연의 능력을 사람의 지적 능력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결코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도는 결국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자연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자연에만 의존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다고 할 수없을 것이다. 무거운 돌을 옮길 때 지렛대와 도르래를 이용하는 것까지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비교적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연의 능력을 사람의 지력으로 대체하려는 것도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에서 중용의 길을 택하는 게 옳을 게다.
화학적으로 따져볼 때 토양의 산도가 어느 정도 이상 강하면 토양에 들어 있는 물에 알루미늄, 철, 망간 같은 것이 너무 많이 녹아 있을 수 있고, 인산이나 칼슘 같은 것이 너무 적게 녹아 일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토양에서는 작물이 잘 자랄 수 없게 되고 토양이 어느 정도 이상 알칼리성이면 토양에 들어 있는 물에 철, 아연, 인산 같은 것이 너무 적게 녹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토양에서도 작물이 잘 잘 수 없을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판단이 맞는 경우도 있고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토양의 pH가 5.5 정도인 곳에서 토양을 잘못 관리해서 pH가 8.5 정도로 높아지면 그런 토양에서는 철 결핍증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2001년에 경기도 이천의 한 백합재배농가에 그런 경우가 있었다. 발효가 잘 되지 않은 돼지똥으로 만든 유기질비료를 300 평 당 2,000 kg 정도 주고 백합을 심었는데 백합에 이상한 증상이 있다고 해서 현지에 가보았다. 토양의 pH가 8.5 정도로 높았고 백합 잎은 거의가 다 백색이었고 백합은 자 자라지도 못했다. 잎을 분석해본 결과 그 증상은 철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토양이 어느 수준 이상 알카리성이면 작물이 잘 잘 수 없으리라는 화학적 판단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 판단이 늘 옳은 것은 아니다. "토양 산도에 대하여 2"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기후적 특징 때문에 토양의 pH가 전체적으로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는 작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지역의 토양조건에 적응되어왔기 때문에 토양의 pH가 8.5 정도로 높더라도 별 이상 없이 잘 자란다.
토양의 pH가 4.5 정도로 낮으면 작물이 철 같은 것이 작물에게 지나치게 많이 흡수되어 피해를 준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옳고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다. 이 사진은 국제미작연구소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강산성 토양에서 철 과다증상을 보이는 벼다. 이런 증상을 보면 pH가 4.5 정도로 강산성인 토양에서는 언제나 농사를 잘 지을 수 없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비오는 양이 매우 많은 콜롬비아 같은 곳에는 pH가 4.5 정도로 강산성인 토양이 많지만 그곳에서도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잘 자라고 여러 가지 작물들도 재배된다. 멀리 콜롬비아까지 가지 않아도 그런 예를 우리 가까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제주도의 화산회토 가운데에는 pH가 4.5 정도로 강산성인 토양이 적지 않다. 그런 토양들에서도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잘 자라고 여러 가지 작물들도 재배된다.
토양학자들이 논하는 토양 산도문제는 토양학의 틀 안에서는 옳지만 식물의 환경적응능력이라는 면이 고려되면 옳지 않을 수 있다. 식물을 함께 고려해야 할 때에는 토양학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토양학은 주로 토양의 물리적 성질과 화학적 성질을 다루기 때문에, 그 지식만 가지고 생물의 영역이 관여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토양학자는 겸손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토양산도에 대해 살펴볼 때, 농업에서 토양산도문제를 순전히 토양학적 지식만을 기준으로 해서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 말이 다소 애매하게 들릴지 모른다. 이 말을 더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어떤 지역에 가서 토양의 산도를 측정해보았을 때 그 지역의 토양의 pH가 자기 고장 토양의 pH와 크게 다르다고 해서 깜짝 놀라면서 "이곳에서 농사를 잘 지으려면 우선 토양산도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지 않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1950년대부터 10여년 간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원조를 받던 때에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의 농업전문가들이 그렇게 했다. 그들은 우리나라 토양의 pH가 5.5 정도인 것을 보고 "우선 토양 산도부터 교정(矯正)하지 않으면 비료를 원조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산성토양 개량을 중요한 정책 사업으로 정하고 그 정책을 추진했다.각주 1 참조 그때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의 토양학으로 교육을 받았고 미국의 토양에 익숙했던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미국의 토양이 콜롬비아의 토양처럼 pH가 4.5 정도로 강산성이었다면 그때 우리나라에 왔던 미국 농업전문가들은 pH가 5.5 정도인 우리나라 토양의 pH가 너무 높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50년 가까이 지나간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때 미국측 전문가들이 취한 태도는 적절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다. 그러나 그들의 견문이 넓지 못했음을 지적할 생각은 없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시대를 초월하는 견문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사실 그 자체만을 밝히려 할 뿐이다.
이제까지 여러 측면에서 관찰한 바를 종합하여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즉 중성인 토양만이 어떤 경우에나 식물을 잘 자라게 한다고 여기는 신조(Dogma)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 같다. 토양학적으로 보면 중성에 가까운 토양이 바람직한 토양일 수 있지만 식물의 환경적응능력을 감안하면 중성토양이 가장 바람직한 토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설령 중성에 가까운 토양이 바람직한 토양이라 할지라도 환경교란을 최소화하면서 농사를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새로운 상황을 고려할 때, 산성토양이 많이 분포하는 곳에서 탄산석회 같은 것을 많이 쓰면서 토양산성을 중화하고, 알ㅇ칼리성 토야이 많은 곳이서는 유황이나 화산을 써서 토양의 알칼리성을 중화시키며 농사를 짓도록 권하는 것은 권할 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토양 산도가 서로 다른 토양에 잘 적응된 식물들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식물들의 그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크게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농지에 농용석회 같은 것을 써서 토양의 산도를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더 이상 현명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우리나라 조건에 맞는 품종을 택하는 편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작물이 꼭 중성에 가까운 토양에서만 잘 자란다면 그런 경우는 예외일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콩은 중성토양에서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는 콩의 조상이 중성토양이 많은 중국 등지에서 왔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를지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이라면 콩농사를 위해서는 산성 토양에 농용석회를 써서 토양산도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다른 작물들도 산성토양에서 성공적으로 재배하려면 반드시 농용석회 같은 것을 써서 개량해야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농토에 농용석회를 넣어 중성에 가깝게 만든다는 일에 따르는 경제적, 환경적 비용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다. 지금은 예전과 상황이 다르다. 예전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농산물을 증산하는 것이 지상과제(至上課題)였지만 지금은 환경보존도 중요한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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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1965년경에 정부는 산성토양개량에 역점을 두면서 농지의 석회소용량을 검정하는 데에 관심을 가졌었다. 그 때 여러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외국으로부터 석회소용량검정법을 도입하려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외국에서 도입하려던 여러 가지 석회소요량검정방법들은 우리나라 여건에 맞지 않아, 결국은 당시 식물환경연구소(지금의 농업과학기술원의 전신)가 개발한 방법을 쓰게 됐다. 그것이 ORD 석회소용량검정기였다.
(출처 : 홍종운 박사, www.soi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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