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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좋은글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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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開學)과 재학(再學) 개학(開學)과 재학(再學) 입력 : 2023-02-24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학생들이 있는 집집마다 개학 준비로 분주하다. 중국에서 방학을 방가(放暇)라고 해서, 휴가(休假)의 뜻이 강하다면, 한국에서의 방학(放學)은 학교 밖에서 풀어놓고(放) 스스로 배우는(學) 배움의 연장이다. 한국인에게 배움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우선순위다. 전쟁 통에도 피난지에서 천막을 쳐놓고 배웠고, 공장 끝나고 야학을 하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배워야 하고, 병이 들어도 배워야 하고, 나이 들어도 배워야 한다. 코로나 전염병도 배움을 멈출 수 없으며, 어떤 이유든 배움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며, 배움을 지속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인간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죽고 나서도 후손들에..
결단의 순간 선택의 시간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건 어지간한 깜냥이 아니면 안 된다. 지난 1992년 당시도 가장 잘 나가는 회사였던 미국 IBM을 박차고 나오는 선택한 건 한마디 때문이었다. “차세대, 차차세대를 만들자.”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난 삼성전기 박종우 전 사장의 얘기다. 그는 미국서 받던 돈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봉투를 받고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놓고 먹고 자며 반도체 개발을 했다. 해외에서 공부하다 반도체 산업을 일궈보자는 말에 귀국해 반도체 개발에 나선 이들은 수두룩했다. 이건희 회장이 직접 설득했다고 알려진 황창규 전 사장도 그랬다. 그렇게 하나둘, ‘어벤저스’급 인재들이 모였고, 삼성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됐다. #2019년 3월 일본. 당시 게이오대 교수였..
번지는 정신건강 제2의 팬데믹 우울증 조선경제WEEKLY BIZ 미국에선 최근 몇 년 사이 난치성 우울증 환자 약물 치료에 특화된 ‘케타민 클리닉’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케타민 클리닉은 다국적 제약사 얀센이 수면 마취제에 쓰이는 약물 케타민을 기반으로 개발한 비강(鼻腔)용 스프레이 방식의 항우울제 ‘스프라바토(에스케타민)’를 처방해주는 개인 병원을 말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정신 질환 치료 목적의 에스케타민 사용을 처음 승인한 지난 2019년 미 전역의 케타민 클리닉은 15~20곳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들어 400곳 이상이 돼 최소 20배 불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자 케타민 클리닉 수요도 치솟은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 마이어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의 케타민..
김형석 100년 산책 과장밖에 못할 신입사원뿐 중앙일보 2022.05.13 1970년대는 한국경제 도약의 시기였다. 기업들이 연수원을 갖고 사원교육에 열중했다. 기업체의 중견직원들과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교육이 그렇게 왕성한 때는 없을 정도였다. 나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의에 도움을 주었다. 한 번은 삼성그룹 대졸 신입사원을 위한 시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나에게 고전의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책 10권을 읽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다. 없었다. 5권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독서를 하지 않으면 과장까지는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까 괜찮겠지만, 그 이상의 직책을 맡게 되면 자기빈곤을 느끼게 될 텐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했다. 그런데 10년 전부터는 삼성그룹에서 인문학 출신의 졸업생을 우선적으로 뽑기 시작..
나는 왜 산책을 하는가 목적이 없어도 되는 삶을 위하여 Opinion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중앙일보입력 2022.08.18 00:42 나는 산책 중독자다. 나는 많이, 아주 많이 걷는다. 나에게 산책은 다리 근육을 사용해서 이족 보행을 일정 시간 하는 것 이상의 일이다. 나에게 산책은 예식이다. 산책에 걸맞은 옷을 입고, 신중하게 그날 날씨를 살피고, 가장 쾌적한 산책로를 선택한다. 그리고 집을 나가, 꽃그늘과 이웃집 개와 과묵한 이웃과 버려진 마네킹을 지나 한참을 걷다가 돌아온다. 나에게 산책은 구원이다. 산책은 쇠퇴해가는 나의 심장과 폐를 활성화한다. 산책은 나의 허리를 뱃살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안구를 노트북과 휴대폰 스크린으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마음을 스트레스로부터 구원한다. 산책은 나의 심신을 쇠락으..
화학자 하버(Fritz Haber) 버림받은 애국심 중앙일보 입력 2022.05.09 00:42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옛날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다. 위인으로 꼽히는 사람들 중에 과학자들도 꽤 있었는데, 특히 과학적 업적이 훌륭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귀감이 될 만한 인물들이었다.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아인슈타인, 여성과학자로서 선구자적인 모범을 보여주었던 퀴리부인 등등. 그런데 업적이 탁월해도 위인전에 나오지 못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이들이 긍정적인 사회적 기여를 했는가를 따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화학자 하버(Fritz Haber)이다.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에 기여한 공로로 1918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간 지금 돌이켜보면 의아할 수 ..
아름다운 인생 90세부터는 '아름다운 인생' 살고 싶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4.29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내가 90까지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욕심을 갖지도 않았다. 두 친구 안병욱·김태길 교수와 같이 열심히 일하자고 뜻을 모았다. 셋이 다 90까지 일했다. 성공한 셈이다. 90을 넘기면서는 나 혼자가 되었다. 힘들고 고독했다. 80대 초반에는 아내를 먼저 보냈는데, 친구들까지 떠났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90대 중반까지는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100세까지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철학계의 선배 동료 중에는 97, 98세가 최고령이었고, 연세대 교수 중에도 10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새 출발을 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한 결과가 ‘아름다운 늙은이’로 마무리하자..
김형석의 100년 산책 "나는 왜 태어났는가" 중앙일보 입력 2022.04.15 “나는 왜 태어났는가?” 누구나 스스로 물어보는 과제다. 제각기 인생을 살면서도 대답에는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일찍 이 물음을 가졌다. 초등학생 때, 늦게 집에 들어서는데, 어머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병신 같은 자식이지만, 생일날 저녁에 조밥을 어떻게 먹이겠느냐?”는 탄식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엄마! 나 괜찮아. 지금 영길네 집에서 ‘오늘이 장손이 생일인데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가라’ 고 해서 이팝에 고기도 먹었어. 저녁 안 먹어도 돼”라고 거짓말을 했다. 항상 어머니가 내 꺼져가는 촛불 같은 나약한 건강을 걱정했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이 쉽게 나왔다. 어머니는 “그럼 됐다. 아버지나 드시면 되니까 우리는 걱정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