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我/좋은글모심

(93)
송호근의 세사필담 1 첫 발자국 중앙일보 입력 2022.01.25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 첫 발자국만큼 가슴 설레는 말이 있을까. 눈 덮인 오솔길에 찍힌 첫 발자국, 그걸 따라 난 종종걸음 흔적은 미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 발자국의 주인공은 봄을 그리며 겨울을 나고 있을 거다. 갓난아기의 첫걸음은 가족의 환호성과 함께 추억에 접혀 있다. 삼십이립(三十而立)을 향한 대장정의 첫발을 누가 잊으랴.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바깥 담장에 도달했다. 지구에서 228억 ㎞란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첫발을 내디딘 건 1987년, 필자가 30대 초반의 일이다. 그 설렘과 벅찬 감동을 가슴 한 켠에 지피며 35년 세월을 지냈다. 그해 6월의 함성은 귀에 쟁쟁하다. 절대 권력이 물러갔다! 낯선 민주주의는 곧..
백의종군 딛고 선 충무공 세밑에 돌아보는 이순신 리더십 한명기의 한중일 삼국지 중앙일보 입력 2021.12.31 불 밝힌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 새해에 대한 희망을 찾아본다. [중앙포토] “지난번 경을 파직시켜 죄를 처벌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좋지 못했기 때문인데 끝내는 오늘 패전의 치욕을 불렀으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지금 상중(喪中)에 있는 경을 특별히 일으켜 백의(白衣)에서 발탁하여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에 임명하노라. 경이 도착하는 날 먼저 사람들을 불러 다독이고 흩어진 자들을 찾아내고 해영(海營)을 만들어 적을 누를 형세를 이뤄 군성(軍聲)을 진동시키면 이미 흩어진 민심을 다시 편안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1597년 7월, 선조가 백의종군한 이순신을 다시 삼..
타성의 대학 일깨우는 미네르바 대학 대학 교육의 미래 유홍림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중앙일보 “18년 후 내 딸은 대학에 갈까?” 미국의 교육 정책 전문가 케빈 캐리가 2015년 저서 『대학의 미래』에서 던진 질문이다. ‘우리가 알던 대학의 종말’은 예견된 미래인가. 연구, 실용 교육, 인문 교육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쫓으며, 재정과 조직 확장을 통해 19세기부터 유지돼온 통합형 대학 모델의 영광은 머지않아 사라질 수도 있다. 현재까지 대다수 대학은 교육과 연구의 통합을 넘어, 병원과 부설학교, 평생 및 재교육 프로그램, 산학 협력 조직, 벤처창업 지원 서비스 등을 골고루 갖춘 ‘사회서비스 기지(Social Service Station)’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인구 절벽, 온라인 학습플랫폼에 맞서서 그동안의 성취..
1미터의 의미 Opinion :중앙시평 1미터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2021.09.27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대단히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도 1미터가 얼마나 긴지는 안다. 자기의 키가 몇 센티미터(cm, 1미터의 100분의 1)인지, 자기가 100미터를 몇 초에 뛸 수 있는지도 알 것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1킬로미터가 1천미터라는 것도 안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 속속들이 박혀 있는 것이 미터이며, 또 그 이외에도 리터, 그램 등 여러가지 측정 단위를 규정해 놓은 것을 미터법이라 한다. 생각없이 상용하고 있는 이 미터법이 한국에 정착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우리 정부에서 미터법을 전면 실시한 것은 1964년이었다. 그 후에도 다년간 고기는 그램이 아니라 근으로, 곡식은 말이나 되로 흔히 판매..
겸허한 과학농업 겸허함에서 나오는 과학의 권위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과학자들은 믿기 힘든 이야기를 많이들 펼친다.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나서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등의 난해한 소리도 많고, 전문가들의 주장을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옳은지를 일반인들이 판단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과잉 생산하여 지구온난화가 되고 여러 가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석유도 석탄도 가능한 한 쓰지 말고 생활 방식과 경제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과학자들이 한다고 해서 그냥 덜컥 믿을 수 있는가? 특히 사람들의 불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과학자들 간에도 완벽한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으며 게다가 다들 동의하는 정설도 세월이..
소금 대신 레몬즙 레몬즙이 만성질환 막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27 일생 중 몸의 컨디션이 크게 바뀌는 시기를 ‘생애전환기(生涯轉換期)’라고 부른다. 만 40~64세의 중장년기, 만 65세 이상 노년기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중장년 중에서도 후반부인 ‘만 50~64세’가 중장년 내에서의 생애전환기라고 강조한다. 이 시기엔 직장을 떠나거나 자녀의 결혼 등으로 경제적·정서적 변화를 겪는 데다 갱년기로 인한 신체적 변화도 크다. 또 이 시기의 건강 관리는 곧 다가올 노년기 삶의 질을 좌우한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만 50~64세를 ‘삶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새롭고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세대’인 ‘신(新)중년’으로 정의하고, 이들 나잇대의 건강 상태별 식사법을 제안했다. 신중년을 위한 맞..
성공했습니까? 당신은 성공했습니까? 최근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정월 말에는 30~40대의 청‧장년들이 사회봉사를 위한 인생관을 토론 정립해 보는 포럼에서 강연 청탁을 받았다. ‘참다운 행복과 성공이란 어떤 것인가’ 함이 주제였다. 오래전, 안병욱 교수를 포함한 셋이서 스위스 알프스의 융프라우 정상에 올라갔을 때가 생각났다. 산 밑은 여름이었는데 등산 열차를 타고 한참 올라갔더니 가을이 되고, 더 올라가면 봄이 된다. 그다음은 설경으로 바뀌면서 겨울이다.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고 정상까지 올랐다. 표고 4166미터, 알프스의 고봉이다.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빙하와 백설의 경치는 우리를 별천지로 옮겨 놓은 듯싶었다. 등산을 계획할 때는 올라가 보아야 별것 아닐 것이라고 반대하던 안 교수가 ‘..
신두리 해안사구 신두리 해안사구 중에서 가장 큰 사구. 고운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모래 물결을 이루고 있다. 끝없이 부는 바람으로 조그만 사구가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친애하는 J에게 사막에 다녀왔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도,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요. 외롭고도 쓸쓸하며 황량한 곳. 요즘 들어 산다는 게 문득 사막을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종일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 혹여 몽골과 중국에 걸친 고비사막이나 아프리카 대륙 북쪽의 사하라사막을 떠올리셨나요. 아닙니다. 서울에서도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신두리 해안사구’입니다. ‘해안사구’란 해안가에 왕릉처럼 쌓인 모래언덕을 말합니다. 해류와 연안류(해안을 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