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리 해안사구 중에서 가장 큰 사구. 고운 모래들이 바람에 날려 모래 물결을 이루고 있다.
끝없이 부는 바람으로 조그만 사구가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친애하는 J에게
사막에 다녀왔습니다. 밖으로 나갈 수도,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시간이 길어져서일까요. 외롭고도 쓸쓸하며 황량한 곳. 요즘 들어 산다는 게 문득 사막을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종일을 걸어도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막. 혹여 몽골과 중국에 걸친 고비사막이나 아프리카 대륙 북쪽의 사하라사막을 떠올리셨나요. 아닙니다. 서울에서도 서너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신두리 해안사구’입니다.
‘해안사구’란 해안가에 왕릉처럼 쌓인 모래언덕을 말합니다. 해류와 연안류(해안을 따라 평행하게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에 실려온 모래가 파도에 의해 해변으로 올라온 뒤 다시 바람에 날려 내륙으로 운반돼 형성됐지요. 먼저 해안 모래사장에서 내륙 쪽으로 모래가 날려와 넓게 쌓입니다. 그러면 육지 끝 쪽 모래에 선구식물(맨땅에 제일 먼저 자라며 건조하고 영양분이 없어도 잘 자라는 식물)이 자리 잡습니다. 선구식물이 덤불을 이루면 모래가 더이상 넘어가지 못해 그곳에 계속 쌓입니다. 첫번째 사구가 점점 성장하는 사이에 바닷가 쪽에는 새로운 사구가 생깁니다. 이때 먼저 형성된 사구 사면에는 덤불과 수목 군락까지 형성되면서 사구 성장에 도움을 주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생성된 사구는 완성기에 들고 바닷가에 가까운 사구에는 사초(키가 작고 뿌리가 붙은 상태로 무리 지어 있는 주로 볏과의 풀)로 가득 차면서 비로소 안정기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사구로 1만5000년 전부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01년 천연기념물 43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길이는 3.4㎞, 폭은 0.2∼1.3㎞며 총면적은 98만2953㎡(약 30만평)에 이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해변을 따라 133개의 크고 작은 해안사구가 있습니다. 충남에는 이 중 32%에 이르는 42개의 해안사구가 있다고 하네요.
제가 신두리를 찾은 날은 마침 영하 10℃를 오르내리며 거센 바닷바람까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17∼18℃에 이르는 날이었습니다. 진눈깨비마저 간헐적으로 날렸지요.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사막이라. 상상이 가시는지요.
탐방로 입구에는 마치 현관이라도 되는 양 긴 띠 모양의 조그만 모래언덕이 있습니다. 바람이 만들어놓은 물결이 굽이치고 있었지요. 그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탐방로로 들어섰습니다. 돌아보니 그새 바람이 파도처럼 몰려와 발자국을 지우고 있습니다. 사방에는 끝없는 모래광장이 펼쳐져 있어요. 순비기언덕을 넘어 해당화동산까지 해안선을 따라 진짜 사막 같은 모랫길이 이어집니다. 왼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서 바다를 발견한 것 같아요.
이곳 길은 발이 푹푹 빠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고운 모래들이 날아와 쌓였기 때문이지요. 이같이 고운 모래를 만든 일등 공신은 엽낭게와 달랑게입니다. 모래사장에 사는 이 게들은 모래를 잔뜩 삼키고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만 빼 먹은 후 고운 모래를 내뱉어요. 그리고는 모래를 둥글게 말아 경단을 만들지요. 수분이 빠지고 햇볕에 마른 모래는 바람에 의해 내륙으로 날아가 쌓입니다.
모래뿐인 이곳에 무슨 동식물이 있을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이곳만의 독특한 생태계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과 염분·바람으로 가득 찬 이곳에는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종들만 살아남았습니다. 갯그령·갯메꽃·갯쇠보리·해당화 등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갯그령은 사구와 백사장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갯그령이 있으면 사구, 없으면 백사장입니다. 갯메꽃은 5∼6월경 나팔꽃 같은 분홍색 꽃이 피며 뿌리로 모래를 붙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당화는 대표적인 사구식물로 꽃이 아름답지요.
이들은 모두 메마르고 바람이 많은 곳에서 살기 위해 씨앗보다 뿌리줄기로 번식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들은 바람을 견디기 위해 키를 낮추고 모래밭을 기듯이 자랍니다. 또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도록 비스듬히 자라거나 얇은 몸통을 흔들리며 자랍니다. 뜨거운 햇볕을 덜 받기 위해 잎이 가늘어지거나 잎과 줄기에 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등에 호랑이 무늬가 있는 표범장지뱀과 명주잠자리 유충인 개미귀신, 삭·황조롱이·종다리 등 다양한 동물들도 살고 있습니다. 다만 겨울이라 마른 풀들로 가득 차 있어 아쉽긴하지만 어떻습니까. 이곳을 사막이라 상상하며 걷듯 아름다운 꽃들도 머릿속에서 선명합니다.
해당화동산을 돌고 억새골을 지나 곰솔 생태숲으로 들어갑니다. 여기가 바로 제일 먼저 생성된 육지 쪽 사구에 자리 잡은 수목 군락입니다. 이제 고라니동산을 지나면 신두리 해안에서 가장 거대한 모래언덕을 만납니다. 깎아지른 모래언덕의 단애(斷崖) 앞에서는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이곳에 와서 보니 냉혹한 환경이라도 견디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씨앗을 포기한 채 땅속줄기로 생명을 이어가고, 바람을 피해 키를 낮춘 채 흔들리며 자라는 식물들. 사람들이 사막을 찾아 그 먼 곳까지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희망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절망적이고 척박한 곳에 있는 것일까요. 비루했던 그 시절 무명가수 윤설하의 노랫말 ‘꿈이 높은 사람들의 도시를 떠나 먼 들녘의 제비꽃이 되고 싶다며’를 흥얼거리던 당신이 떠오릅니다. 비옥한 토양을 버리고 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사구식물들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그 시절이 마치 신기루마냥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J. 다음 여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시간과 돈이 아닙니다. 건강입니다. 부디 자중자애(自重自愛)하십시오. 이만 총총.
당신의 W가 글·사진=김도웅 기자 pachino8@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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