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에 밀려 이름까지 뺏긴 슬픈 사연
요즘은 고구마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마처럼 구박을 받았던 작물도 드물다. 본래의 이름을 감자에 빼앗기고 엉뚱한 명칭인 고구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동서양이 모두 마찬가지다. 뒤집어서 말하면 옛날에는 사람들에게 그만큼 외면당했다는 뜻이 된다.
고구마라는 명칭과 관련된 의외의 사실을 몇 가지 정리하자면 먼저 고구마는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우리말 빵이 포르투갈어 팡(p~ao)에서 전해진 말인 것처럼 고구마 역시 일본어가 어원이다. 그것도 표준 일본어가 아닌 대마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단어다.
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영조 때인 1763년이다.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와 보급했다.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며 쓴 기행문인 해사일기(海사日記)에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대마도에 먹을 수 있는 풀뿌리가 있는데 생김새가 마나 무 뿌리 같기도 하고 토란이나 오이와도 닮았는데 모양이 일정하지 않다면서 “이름은 감저(甘藷)라고 하고 혹 효자마(孝子麻)라고도 하는데 왜의 발음으로는 고귀위마(高貴爲麻)다”라고 적었다. 효자마의 일본어 발음인 고시마(こうしま)를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대마도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다.
또 하나, 본래는 고구마를 감자라고 불렀다. 그러다 감자한테 이름을 내주고 대신 고구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 흔적이 지금도 제주도 사투리에 남아있다.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저(감자)라고 한다. 그 대신 감자는 지슬이라고 부른다.
고구마를 한자로는 감저(甘藷)라고 썼다. 저(藷)는 마라는 뿌리 작물이고 감(甘)은 달다는 뜻이니 모양은 마처럼 생겼는데 맛은 달콤하다는 의미이다. 한중일 한자 문화권에서는 모두 고구마를 감저로 표기했다. 그런데 고구마보다 61년이 늦은 1824년에 감자가 북쪽에서 전해진다. 이때는 감자를 고구마와 구분해서 북감저(北甘藷)라고 했다.
영어도 우리말과 상황이 비슷하다. 1492년 미주 대륙을 밟은 콜럼버스 일행이 귀국할 때 아이티에서 바타타(batata)라는 이름의 고구마를 가지고 돌아온다. 영어 포테이토의 어원이 되는 단어로 유럽에서는 처음에 고구마를 포테이토라고 불렀다.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작물인 감자가 고구마보다 조금 뒤늦게 유럽에 전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자를 고구마와 구분해 하얀 고구마라는 뜻으로 화이트 포테이토라고 불렀다.
유럽 사람들도 처음에는 고구마 재배에 실패했기 때문에 고구마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반면 감자는 16세기 중반에는 아일랜드까지 재배가 확대되면서 유럽에서 중요한 식량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보니 처음 고구마를 가리키던 포테이토라는 단어가 사람들이 주로 먹는 양식인 감자를 나타내게 됐고 고구마는 그 대신 ‘달콤한 감자’라는 뜻의 스위트 포테이토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