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위안'(일본인의 심리, 일본문화사)
대지진 사태 때 일본인들이 보여준 차분하고 절제된 대응방식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난에 대처하는 일본인의 심리상태가 궁금하다면 일본의 사회 심리학자 미나미 히로시(南博, 1914~2001)가 쓴 '일본인의 심리'(소화)를 읽어보길 권한다. 패전(敗戰) 이후 일본사회와 일본인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쓰인 이 책은 1953년 작으로 출간된 지 오래됐지만, 현재까지도 루스 베네딕트(Benedict, 1887~1948)의 '국화와 칼'(1946)과 함께 권위있는 일본인 분석서로 손꼽힌다.
일본인이 어떠한 불행이 닥치더라도 당황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은 그들 마음속에 짙게 깔려 있는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태도로 설명된다. 일본인은 오래전부터 노래나 문학작품을 통해 '현세를 무상(無常)이라 인식하고 가볍게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고 주입받았다. 인생 무상관은 일본의 지배자들에게 민중의 불평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효율적인 통치원리였다. 막부시대 무사들이나 2차대전 때의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에게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길 수 있도록 한 이 '무상관'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도 불행에 대한 소극적이면서도 심리적 면역법으로 남아 있다.
일본인에게 불행에 처했을 때의 가장 손쉬운 '깨달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참는 것이다. 일본인이 '무한 인내'하게 된 것은 예부터 지배자들이 아랫사람들에게 '문답무용(問答無用)'을 강조하며 인내와 복종이 최고의 미덕이라고 설교해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승(高僧) 하쿠인(白隱·1685~1768)의 범찬(梵讚)에도 '이 세상은 인내의 세계이며 어쨌든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나와 있다. 무슨 일을 시키든 "네", "네" 하며 복종하는 습관을 길러 나가면 이윽고 '인내'하는 습성이 생겨 마음이 편안하고 기(氣)가 온화한 심경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미나미는 "절대 복종의 결과인 이러한 체념은 어떤 이유가 있는 체념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체념 혹은 무기력이라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일본인은 불행이 닥쳤을 때 불행한 처지에 있는 게 나만이 아니라든가 혹은 남들이 더 불행한 처지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한다. 미나미는 이를 '비교 위안'이라고 명명했다.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유학자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 1630~1714)은 '비교 위안'을 중요한 마음 수양법으로 여겨 권장했다. 도쿠가와 시대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위를 보면 뭔가 바라기만 하는 몸이 되지만, 나만큼도 갖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노래가 유행했다. 물론 이런 '무상관'이 시스템에 실망한 현재의 일본인의 분노를 얼마나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미나미 히로시의 책을 통해 일본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독자라면 미국의 일본문화학자 폴 발리(Varley)의 '일본문화사'(경당)로 일본문화 전반을 훑어보는 것도 일본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1973년 초판 출간 이래 개정·증보를 거듭하며 서구 각국의 많은 대학에서 일본문화 강의 교재로 채택된 스테디셀러다. 선사시대 일본인의 기원부터 현대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학세계까지 일본문화의 변천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면서 다도·정원·문학·음악·미술·연극·영화 등을 망라한다. "일본이 전근대시대에는 중국으로부터, 근대에는 서양으로부터 풍부한 문화적 차용을 해 왔으며, 항상 외국으로부터 차용한 것을 자신의 취향과 목적에 맞도록 응용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정치사와 문화사를 연결시켜 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일본문화와 중국문화의 관련성을 언급하면서 한반도와의 연관성을 무시하거나 축소·간과하고 있는 것은 한계다.
곽아람 기자 aram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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