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인생, 핵심가치는 말보다 현장에 있다”
제3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들이 7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저는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일하는 평범한 외과의사인데 너무 크게 주목받는 것 같아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이국종(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 교수의 수상 소감은 가히 반전이라고 할 만한 강렬한 메시지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7일 서울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3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에서다. 세 명 수상자의 소감에는 진지한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회부문 수상자인 이 교수는 “스승인 왕희정 교수님께 ‘핵심가치’를 배웠다”고 말했다. “어떤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수술법을 구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환자 분이 어떤 도움을 받을지 환자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영국 사람들의 치열한 역사의식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가 2007년 일했던 로열 런던 병원에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숨진 의사, 간호사의 이름을 따서 병동이 지어져 있다고 한다. 이를 비롯해 연중 참전용사를 기리는 영국의 풍토를 전했다. 이 교수는 “그런 치열한 역사의식을 보면서 한국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정치적 수사와 언어유희가 난무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곳은 가벼운 말장난이 지배한다”는 비판이다. 중증외상센터 건립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그의 이름을 딴 ‘이국종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은 18대 국회 막판인 지난 2일에야 가까스로 통과됐다.
그는 “찰나 같은 인생에서 핵심가치를 지키는 방법은 말장난이나 언어적 수사가 아니라 현장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희는 정책을 만들지 않습니다. 저희는 정책의 도구입니다.(중략) 저와 같은 팀에서 일하는 정경원 선생은 1년 동안 집에 네 번 갔습니다. 김지영 간호사는 정규시간의 두 배를 오버타임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미약한 노력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임팩트를 낼 수 있다면 저희는 기꺼이 그 희생을 감당하겠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 큰 박수가 울려퍼졌다.
사회부문 아주대 중증외상센터 이국종 교수
응급의료체계 개혁 … 법 개정 이끌고 선진수술 도입
지난달 25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 이국종(43) 교수의 얼굴엔 극도의 피로감이 흘렀다. 말을 붙이기 미안할 정도였다. 전날 밤 10시쯤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있다가 새벽 3시에 또 응급실로 나왔다. 횡경막이 파열된 70대 할머니 때문이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희귀병인 중증 근무력증이었다. 집도하지는 않았지만 최종 판단은 이 교수가 내렸다. 원래 이 교수의 이날 일정은 오전 강의, 오후 외래진료다. 그러나 기계에 몸이 눌려 실려 온 50대 환자 때문에 일정은 또 바뀌었다. 그의 일상은 늘 이랬다.
지난해 그는 가장 주목받은 의사였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 당시 중상을 입은 석해균(59) 삼호주얼리호 선장을 살려내면서다. 그는 국내 외상외과 분야에서 단연 최고로 꼽힌다.
그는 열악한 중증외상환자 응급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다. 그 결과 정부는 지난해 전국 단위의 중증외상센터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응급의료 전용헬기인 ‘에어 앰뷸런스(Air Ambulance)’ 두 대도 처음 도입됐다. 한시적으로 과태료 등을 모아 쓰고 있는 응급의료기금 연장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도 마련됐다. 이 교수가 국내 응급의학계의 풍경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응급의료법’ 통과가 국회에서 발목이 잡히자 그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국민의 세금을 받고 일하면서 어떻게 출근을 안 할 수 있느냐”고 거침없이 쏘아붙였다. 그 덕분일까. 법안은 2일 다른 민생법안들과 함께 국회를 통과했다. 그는 외상외과 분야에 헌신한 10년 동안 이런 좌절을 여러 번 겪었다. 병원을 적자로 몰아넣는 주범이었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이번 달이 마지막이구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외국 교과서에서만 나오는 수술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장기 손상이 많을 때 당장 생명에 위험을 주는 부위부터 응급수술로 막고, 배를 열어 둔 채 수술을 끝낸다. 급하게 배를 닫으면 장기가 다시 눌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명 ‘손상 통제(Damage Control)’ 수술법이다. 최대 21일까지 개복 상태를 유지한 환자도 있었다. 수술경험이 많고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한 수술이다. 지난해 대한외과학회는 새로 발행된 외과학 교과서에 이 수술법을 포함시켰다. 이 교수가 단독 집필했다.
그의 환자들은 노동자나 농어민,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이다. 요즘 보는 환자들 중에도 공장 유압기에 몸이 으스러지고, 경운기 사고로 논두렁으로 굴러 떨어지고, 리어카를 끌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동거하던 남자한테 두들겨 맞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많다.
이날 이 교수는 강의를 하러 가는 길에 본 낙화(落花) 이야기를 꺼냈다. 바람이 불면서 마지막 남은 벚꽃 잎이 한꺼번에 떨어졌다고 했다. “김훈의 『칼의 노래』라는 책에 일본인 하급 무사를 잡는 대목이 있는데 그 칼에 쓰여 있던 검명(劍名)이 떠올랐어요. ‘우리 짧은 인생이 사쿠라(벚꽃) 꽃잎처럼 떨어져 나가네’라는 내용인데. 인생, 짧잖아요.”
그는 이날도 병원 당직실에서 쪽잠을 잤다.
글=박유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이국종 교수=1969년 서울생. 95년 아주대 의대를 1회(88학번)로 졸업한 외상외과 전문의. 2002년부터 아주대병원에 재직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외상외과와 영국 로열런던병원 트라우마센터에서 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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