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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된 병을 고치려면

7년 된 병을 고치려면

농민신문 입력 : 2018-04-06 00:00




‘7년 앓은’ 병 고치는 데 ‘3년 말린 약쑥’ 필요하다면

지금이라도 말리기 시작해야 더 늦기 전에 병 고칠 수 있어

일을 할 땐 절차·원칙 지키고 절대 빠른 성공 부추겨선 안돼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라면 ‘자라도록 도움’이라는 뜻으로, 좋은 의미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보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더 심해지도록 부추김’으로 풀이돼 있어 꽤 부정적이다. 조장이 이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어원(語源)을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조장의 어원은 ‘발묘조장(拔苗助長)’으로, <맹자> ‘공손추상’에 실려 있다.

옛날 송(宋)나라에 농부가 있었다. 그는 논에 심은 모가 너무 더디게 자라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느 날 농부는 벼 한포기를 잡아 살짝 뽑아봤다. 그랬더니 벼가 한층 커진 것처럼 보여 자기 논의 벼들을 모두 뽑아 늘려놓았다. 피곤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농부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몹시 힘들구나! 내가 싹이 잘 자라도록 도와줬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진 아들이 논으로 달려가 살펴보니 벼들은 이미 말라 죽어 있었다.

이 농부는 당연히 벼들을 해치려고 이런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논에 벼가 자라는 것을 돕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켜야 할 절차와 원칙을 어기고 빠른 성장만을 추구하면 일을 망치고 만다. 이 고사는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법을 제자에게 가르치기 위해 비유적으로 설명했던 이야기다. 호연지기는 부단히 의(義)를 기르고 의로운 일을 꾸준히 행함으로써 축적되는 것이다. 호연지기를 빨리 기르려고 벼를 뽑듯이 하면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을 망치고 만다고 맹자는 가르치고 있다. 비단 호연지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들이 마찬가지다. 일을 빨리 이루고자 하는 초조함과 조급함은 결국 일을 망치게 된다.

< 맹자>에는 과정을 무시했을 때 일을 망치게 되는 성어가 하나 더 실려 있다. ‘7년 된 병을 고치기 위해 3년 묵은 쑥을 구한다(七年之病求三年之艾·칠년지병구삼년지애)’. 사람들은 병을 고치는 데 3년을 말린 약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면 당장 그 약쑥을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헤맨다. 쉽게 구하지 못하면 효과가 없는 다른 약을 쓰기도 한다. 빨리 병을 고치려는 조급한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애초에 병에 걸린 걸 알았을 때 쑥을 말리기 시작했다면 3년이 되었을 때 병을 고쳤을 것이다. 설사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3년 동안이나 전국을 돌아도 구할 수 없었다면 올바른 대책을 세웠어야 옳다. 그랬다면 7년이 가도록 병을 앓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병자는 “이미 3년이나 앓았는데 또 3년을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7년이나 병으로 고생하는 것이다.

병을 고치려면 7년을 앓은 지금이라도 약쑥을 말리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10년이 되기 전에 병을 고칠 수 있다. 이 절차를 무시하면 평생토록 병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맹자는 군주가 인자와 자비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 비유를 했다. 군주가 인자와 자비로 백성을 다스리면 천하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강국이 된다. 만약 조급한 마음에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범해서 단숨에 강국이 되려 한다면, 마치 ‘7년 된 병을 고치기 위해 3년 묵은 약쑥을 구하는 병자’와 같다. 천하를 차지하기는커녕 망하고 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목적을 이루고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부정과 불법이라고 해도 빠른 성과를 만들 수 있다면 묵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같은 정신이 전란 이후 폐허가 된 나라를 오늘날의 경제대국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풍토와 정신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도 생겼다. 빠른 성장, 빠른 성공을 위해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원칙을 저버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미래세대를 육성하는 교육에서까지 빠른 성공을 부추기며 그릇된 가치관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 제일주의, 물질주의를 넘어 진정한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원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사회풍토를 정립해나가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약쑥’을 말리기 시작해야 한다. 조윤제(인문고전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