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혁명 이끌 대체육 뜬다
중앙일보 2022.01.29
“삼겹살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만드는 사료와 근육을 만드는 사료를 번갈아 먹이는 한국인의 비육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박정배씨가 쓴 『한식의 탄생』 중 삼겹살 편 첫 문장이다. 뜨겁게 달군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조각을 입에 물었을 때 터지는 육즙과 쫄깃한 식감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집마다, 식당마다 ‘부루스타’라는 개인화로를 앞에 두고 직화구이로 고기를 굽는 풍경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문화다. 그랬던 우리 밥상 위에 ‘대체육’이라는 새로운 식품이 등장했다.
그 옛날 ‘콩고기’는 잊어도 좋아
국내에선 식물 추출 성분들로 고기와 비슷한 형태·질감·맛·향을 만드는 ‘식물성 대체육’이 강세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 구이처럼 보이는 사진은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의 슬라이스 제품이다. [사진 언리미트]
대체육이란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기존 육류를 대신할 수 있는 식품을 말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표한 ‘2020 가공식품 식육가공품 보고서’에 따르면 “대체육 등장 초기에는 콩을 주원료로 만든 단백질 식품이라는 의미로 ‘콩고기’ 또는 인공적으로 제조한 식품이라고 해서 ‘인조고기’라 불렸지만, 기술 발전으로 실제 육류와 비슷한 외형과 식감을 갖추게 되면서 육류를 대체하는 단백질원이라는 의미로 ‘대체육’이라고 통용”되고 있다.
대체육의 종류는 크게 식물성 대체육, 균류 단백질 식품, 배양육, 곤충단백질 식품, 해조류 단백질 식품으로 나뉜다. 이중 전 세계 대체육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식물성 대체육이다. 콩이나 밀·버섯·호박 등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이용해 육류와 비슷한 형태와 맛·영양이 유사하게 제조된 식품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아직 시작 단계로 2020년 1030만 달러(115억원)였고, 2021년에는 이보다 35% 성장한 1390만 달러(155억원)를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전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21년 53억6400만달러(약 6조4705억)였고, 2023년에는 60억3600만달러(약 7조2812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40년에는 전체 육류시장의 60%이상을 대체육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연평균 1인당 육류 섭취량이 120㎏으로 많은 미국에선 10년 전부터 대체육 시장이 활성화됐다. 특히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2019년 대비 45% 성장). 코로나19로 육류 가공·유통 등에 차질을 빚자 자동화된 시설로 생산 가능한 식물성 대체육이 반사효과를 입은 것이다. 전 세계로 수출되는 유명 대체육 브랜드도 여럿 있다. 2011년 스탠포드대 교수가 창업한 ‘임파서블푸드’는 대두를 주성분으로 한 햄버거 패티용 대체육을 생산하면서 성분을 분자 단위로 분석해 실제 고기 맛과 식감을 구현, 2019년 CE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으로 선정됐다. 2019년 기업가치 150억 달러를 달성하며 나스닥에 상장된 ‘비욘드미트’ 역시 식물성 단백질 기반 대체육을 개발해 현재 맥도날드·서브웨이·던킨 등에서 판매 중이며 국내에선 동원F&B와 독점계약을 맺고 있다.
육류 생산 과정서 생태계 파괴 심각
대체육의 등장과 꾸준한 성장세의 배경에는 ‘미닝아웃’ 세대가 있다. 소비주체로 떠오른 MZ세대의 특징 중 하나인 ‘미닝아웃’은 ‘미닝(meaning·신념)’과 ‘커밍아웃(coming out·벽장 속에서 나오다)’이 결합된 신조어로, 소비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과 가치관·취향 등을 적극 표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미닝아웃 세대에게 대체육은 건강, 환경오염 개선, 동물복지를 고려한 ‘착한 먹거리’로 인식돼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위원은 “요즘의 MZ세대는 ‘지구인 정체성을 가진 세대’로 정의할 수 있다”며 “국가·민족 등을 구분하기보다 우리는 모두 ‘지구 안에 사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동·식물 등 모든 생명체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세계 가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14.5%에 달하며, 소와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가축 전체의 65%를 차지한다. 사람이 활동과 상품을 생산·소비하는 전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하는 ‘탄소발자국’을 봐도 kg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높은 식품은 쇠고기(99.48㎏)다. 쌀(4.45㎏), 두부(3.16㎏), 토마토(2.09㎏), 감자(0.46㎏)에 비교하면 숫자 차이가 엄청나다. 친환경에 적극적인 미닝아웃 세대에게 대체육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처럼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생되는 생태계 파괴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육류 소비로 의한 건강 문제, 식품 안전성 등의 이유로 채식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대체육 시장의 성장과 연관이 크다. 국제채식인연맹(IVU)은 전 세계 채식인구를 2억 명으로 추산한다. 한국채식연합이 발표한 바로는 2017년 한국 채식인구는 전체 인구의 2~3%로 약 100만~1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10년 전인 2008년 15만 명 수준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대체육 시장의 등장과 성장 배경에는 ‘육류 공급 부족 현상에 대한 대안’이라는 이유도 있다. FAO에 따르면 2050년 세계 인구는 약 97억명에 육박하고, 육류 수요 역시 약 4.5억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가축 사육을 통한 식육 생산이 증가하는 육류 수요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토지·물 등의 자원 고갈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 및 기후변화 등의 심각성을 깨달은 국제사회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목표다. 결과적으로 탄소발자국 수치가 높은 축산업은 더 이상의 확장이 불가능하다.
국내 대체식품 전문기업 ‘알티스트’의 윤소현 대표는 “이미 중국이 호주·브라질 등의 고기를 싹쓸이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며 “전 세계 고기 수요와 공급의 심각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대체육 시장은 필요하다”고 했다. 부위와 상관없이 ‘5년 치 생산량’을 통 크게 계약해버리는 중국 때문에 몇 년 후 우리 밥상 위에서 수입 고기는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한우는 더욱 비싸고 귀한 몸값을 자랑할 터. 윤 대표는 “미래형 단백질 공급원인 대체육 개발 및 생산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산업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규모는 아직 작지만 성장성이 높은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실천에 앞장서야 하는 국내 식품업계는 자체 대체육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체육 전문 스타트업인 지구인컴퍼니, 알티스트, 위미트 등은 이미 국내 시장의 인지도를 기반으로 미국과 아시아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전통적인 식품기업 신세계푸드, CJ제일제당, 풀무원, 농심 등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세계푸드는 대체육 브랜드 ‘베러미트(Better Meat)’를 론칭하고 슬라이스 햄을 개발, 스타벅스에서 판매되는 샌드위치 재료로 공급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을 선보이고 첫 제품으로 식물성 만두 제품을 출시했다. 두부 등 식물성 단백질 상품 개발에서 경쟁력과 노하우를 갖춘 풀무원도 자체 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식물성 대체육을 사용한 불고기 덮밥소스·철판볶음밥을 내놓았다. 농심은 오는 4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 비건 레스토랑 ‘베지가든’을 열고 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로 개발한 대체육 버거·스테이크·파스타 등을 판매할 계획이다.
식물성 참치 등 대체 해산물도 나와
샌드위치, 치킨 브랜드, 편의점 등도 대체육 메뉴들을 출시했다. 동원F&B는 지난해 투썸플레이스와 손잡고 대체육 샌드위치 ‘비욘드미트 파니니’ 2종을 출시했는데 여기에는 미국의 식물성 대체육 브랜드 비욘드미트의 대체육이 들어갔다. 파리바게뜨도 지구인컴퍼니의 언리미트 대체육으로 ‘건강한 플랜트 불고기 샐러드랩’을 선보였다.
한편, 바다로 흘러들어간 중금속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해양 생태계 때문에 콩·토마토 등의 식물로 만드는 ‘대체 해산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순 편의점 CU는 식물성 참치를 넣은 ‘채식마요 삼각김밥’과 ‘채식마요 김밥’을 출시했는데 기존 채식 제품에 비해 매출이 4배 이상 높을 정도로 인기다. 이들 제품의 주재료인 식물성 참치는 알티스트가 생산·공급하고 있다.
국내 대체육 시장이 확산되자 기존 축산 시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마트 매장 내 축산코너에서 식물성 대체육을 판매하자 축산단체들은 “축산품종이 아닌 식물성 식품을 축산 매대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소비자 인식 왜곡”이라며 규탄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 이승호 회장은 “축산물이 아닌 식품을 축산코너에서 판매하는 것은 국내 축산업 기반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농림축산식품부에 대체식품에서 고기·우유를 의미하는 ‘육(肉)’ ‘유(乳)’ 표기를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몇 년간 축산업에 씌워진 환경오염, 동물권 침해 등의 오명을 씻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한다. 김영원 전국한우협회 정책국장은 “소·돼지를 온실가스 주범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자원순환 측면에서의 공익적 기능도 도맡고 있다”며 “축산업 종사자들도 저탄소 축산환경을 위해 저메탄 사료, 저탄소 사양 관리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무조건적인 동물복지를 외치기보단 축종에 대한 이해, 동물복지농장에 필요한 비용과 시장에서의 경쟁력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 단계별 방안을 함께 찾아 나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대체육을 대하는 소비자의 입장은 유연하다. aT의 ‘2020 보고서 대체육 빅 데이터’에 따르면 대체육에 대한 관심 및 구입 이유의 70.2%는 ‘건강’이다. 고지방인 육류 대신 고단백질이면서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낮은 대체육을 섭취함으로써 건강 관리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그렇다고 육류를 전혀 먹지 않는 순수 채식주의자 ‘비건’이 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 연구위원은 “미닝아웃 세대라 해도 ‘음식은 일단 맛있어야 한다’는 전제에 충실한 건 공통점”이라며 “‘대체육만 먹어야 한다’ ‘채식만 해야 한다’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간헐적이라도 지속가능한 미닝아웃과 실천이 더 가치 있다고 믿는 유연성이 기본”이라고 했다.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채식위주로 섭취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류도 소비하는 식습관 ‘플렉시테리언’이 요즘 식생활 트렌드로 떠오르는 이유다. 1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육류 없는 채식 밥상을 먹자는 ‘고기 없는 월요일’ ‘간헐적 채식’ 캠페인도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강지영 음식 칼럼니스트는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다양성은 더욱 필요한 요소”라며 “소비자 입장에선 동물성인가 식물성인가보다 밥상 위에 놓이는 반찬 선택의 폭이 더 늘었다는 게 더 즐거운 요소이기 때문에 대체육과 기존 축산 시장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의 관계로 다양한 맛을 함께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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