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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영화이야기

Life times

[도완석의 영화記] 인생(Life times)

 

 

영화 <인생>을 제작, 감독한 장이모 감독은 1950년 중국 시안에서 출생, 첸 카이거와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영화감독이다. 어린 시절 문화혁명으로 방직공장, 농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 1978년 베이징영화학교에 입학하면서 영화인생의 길을 걷게 된다. 그의 데뷔작은 1987년 모옌(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원작인 <붉은 수수밭>으로 감독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이 데뷔작이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어 제작 발표한 그의 작품인 <홍등>, <국두>가 연이어 국제적인 관심과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그는 일약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영화 <인생>은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으로 1994년에 제작,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그간 중국의 전통민속을 주제로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아왔던 장이모 감독이 ‘이제는 예전같이 민속으로 물들이고 골동품이나 발굴하는 영화를 찍지 않고 중국 근현대사 속에서 살아온 인생 체험을 바탕으로 중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국인들의 독특한 인생 철학이 담긴 영화를 만들겠다.’라고 표명한 뒤 그 첫 작품으로 만들어낸 영화이다.

민중은 언제나 시대적 상황과 연계된 삶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민중과 역사의 상호 관계를 배경으로 장이모는 <인생>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내었는데 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 내용은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를 살아가는 ‘부귀’라는 한 남자의 인생역정을 그린 작품이다. 1940년대 중국,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부귀(갈우 분)는 대부호의 집안 장자로서 경제적 풍요로움과 함께 아내 역시 절세미인인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이다. 하지만 그는 그 풍요로움을 지켜내지 못하고 도박에 빠져 전 재산을 잃고 만다.
  
이에 그의 아내 지아젠(공리 분)마저 부귀를 만류하다 못해 딸 펭시아와 함께 임신한 채로 집을 나가버린다. 뿐만 아니라 집문서까지 도박 빚으로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자 그 충격으로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거리로 쫓겨나게 된 부귀.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절망과 후회뿐이다. 이렇게 실의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 아내는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부귀 곁으로 돌아오고 이 후 부귀는 예전에 본인이 즐기던 그림자극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며 빈궁하게 살아간다.

1940년대 초, 중국의 역사는 국민당과 공산당이라는 중국내 양대세력이 일본 패전을 위해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이른바 국공합작의 역사를 펼친다. 그러나 항일전의 결말은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과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과의 접전으로 내전이 일어난다.

이른바 국공내전(1946 –1949)이 시작된 것이다. 이 역사 속에서 부귀는 처음에는 국민당 군대에 끌려가지만 전쟁터에서 다시 공산당에게 붙잡혀 포로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부귀는 공산군들에게 그림자극을 보여주면서 목숨을 부지하다가 국민당이 대만으로 물러가고 공산당이 지배하는 역사가 되어 부귀는 집으로 돌아온다. 한편 부귀의 집을 사들여 호화롭게 살아가던 롱엔루는 공산당으로부터 유산계층으로 분류되어 공개처형을 당한다.

이는 모택동이 급진적인 사회주의 건설로의 노선전환을 강요한 후 그 비판 분자를 숙청해나가는 반우파 투쟁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역사적 상징이다. 즉, 롱엔루는 자신의 집을 집없는 자들과 공유하라고 당으로부터 강요받지만 거부했고 그래서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숙청을 당한 것이다. 이 사건 후 지아젠과 부귀는 역사적 상황에 순종키로 하고 당민으로서 충성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또다시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 당시 공산당은 인민들의 생활도구 가운데 부엌살림 기구에서부터 작은 쇠붙이 못 하나까지 전부 철이란 철은 모두 대약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거두어갔다. 부귀네 역시 자신의 생계형 그림자극 도구에 붙어있던 철까지 내어준다.

하루는 마을 대표자가 마을사람들에게 대포 3발을 쏘아서 하나는 장개석의 침실에, 하나는 식탁에, 그리고 마지막은 화장실에 떨어뜨려, 잠을 자지도, 먹지도, 볼일도 보지 못하게 하여 대만을 해방시키자고 선동을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이 대약진 운동 결과 흉작으로 이어졌고, 국가경제는 피폐해져 발전은 커녕 엄청난 피해를 속출했다. 이 와중에서 영화는 부위의 인생에 있어서 큰 상처를 보여준다. 바로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잠도 자지 않고 노동에 전념하는데 이들을 도와주느라 피곤했던 부위 아들 유퀸이 학교 담벼락 밑에서 쪽잠을 자다가 차가 담을 들이 박아 담벼락이 무너지는 바람에 죽게 된 것이다.

감독은 이 대약진운동이라는 역사가 수많은 인민들을 노동과 굶주림으로 혹사시키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던 역사적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다시 세월이 흘러 중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 동안 문화대혁명을 일으킨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치권에서 물러났던 모택동이 이 문화대혁명으로 정치적 회생을 하게 되는데 문화 혁명은 말하자면 그의 회생을 위한 전략적 모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모사는 군의 지원하에 ‘무산계급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대혁명’으로 발전시켰고 어린이로부터 청년에 이르기까지 홍의병 제도를 일으켜서 그들을 정부의 꼭두각시 놀음으로 전락시킨다.

이에 기존 당 지도부가 적위대를 조직하였고 이로 인해 내전 발발 위험이 커지자 다시 군이 나서서 수습하여 종료시킨다. 이 사건으로 4구(낡은 이념, 사상, 습관, 관습) 타파를 미명으로 수많은 인명피해와 더불어 문화재 파손 그리고 국가발전에 필요했던 전문 고급인력들의 숙청으로 말미암아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인력난을 초래하게 했다. 영화에서도 부위가 가지고 있던 그림자극 도구가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지적을 받고 태워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홍위병 완에르시는 부위의 딸인 펭시아와 결혼을 한다. 결혼식 전에 완에르시가 주인공 집을 보수하면서 모주석의 그림을 담벼락에 그린다. 그리고 그 그림 앞에서 결혼식 기념사진을 찍는다. 결혼식 선물도 당연히 모주석의 초상화나 동상들이다. 이렇듯 열렬한 모택동의 신봉자였지만 그의 신부 펭시아가 해산을 맞이하여 병원에 의사가 없어 죽음에 이르게 되자 모주석에 대한 원망으로 절규한다. 그들은 병원에 갔었지만 홍의병에 의해 지식인층의 의사들이 반동분자로 몰려 쫓겨났고 새파란 홍의병 학생들만 우굴대는 병원에는 이렇다 할 의사가 없었다.

결국 생각다 못한 신랑 완에르시와 부위는 반동분자로 찍혀 숨어살던 의사를 몰래 데리고 온다. 하지만 굶주려 있던 의사는 배가 고파 한꺼번에 많은 만두를 너무 급하게 먹는 바람에 실신을 했고 이에 펭시아는 출산을 하다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모두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에 의해 희생을 당한 국민들의 단편적 역사를 설명해준 장면들이다. 이렇게 주인공 부위는 아들과 딸 모두를 잃고 자기 인생의 어떠한 비젼이나 삶의 목적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장이모 감독은 부위라는 한 인물을 내세워 그 시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관객들로 하여금 한 시대의 삶을 간접 체험토록 하게 했던 것이다. 영화 <인생>에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여운은 민중이란 그 역사적 비극을 임의로 벗어날 수 없으며 민중과 역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인생이란 우연 같은 필연, 필연 같은 우연이라는 그물을 통해 걷는 나그네 인생임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위 역을 맡은 배우 ‘갈우’는 1957년생으로 중국 북경출신이다.

그는 장이모 감독 작품에는 어김없이 출연하는 배우로서 ‘대중영화백화상 남우주연상’ 외에도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고 중국에서 흥행신화를 이룩했던 작품 양자탄비(2010)와 건국대업(2009)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또한 부위의 아내 지아젠 역을 맡았던 중국의 국민여배우 공리는 1965년생으로 중국 심양 출신이다.

영화 <인생>은 1994년 당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으로 유력했지만, 중국정부의 방해로 수상을 하지 못했고 대신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남우주연상, 박애주의상 만 수상했다. 그리고 그 해 미국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등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아직도 중국 내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영화로 유명하다

도완석 연극평론가·공주교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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