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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한생각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사진의 기억]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입력 2024.12.28 00:06


농부의 얼굴, 전북 부안, 1977년 ⓒ김녕만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을 두루 겪어야 했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가부장적인 절대 권위를 누리는 대신 그에 비례하는 무한 책임을 짊어졌던 그 시대의 아버지들. 새벽부터 들에 나가 일해도 좀처럼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던, 실은 나아질 가능성조차 보이지 않던 궁핍한 시절에 부안의 한 농가에서 만난 농부의 얼굴이다. 좀처럼 웃음을 보이지 않고 늘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아버지가 어려워 그 당시 아이들은 병아리처럼 엄마 곁에서만 맴돌 뿐, 아버지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 쭈뼛거리기 일쑤였다.

늙은 부모, 때로는 조부모까지 모시고 여러 남매를 거둬야 하는 당시 아버지들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돌아보면 마음이 짠하고 안타깝다. 외지에 나가 공부 잘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잠시 집에 돌아와도 그때의 아버지들은 다정하게 아들의 등을 두드려주는 대신에 괜히 헛기침하며 서둘러 마실 나가버렸다. 기다렸다는 듯 대문 소리 들리자마자 제 세상을 만난 자식들은 어머니를 둘러싸고 별별 얘기 다 털어놓으며 웃음소리가 담을 넘었다. 대문을 나선 아버지도 그 웃음소리 들었을까.

그때는 세상의 아버지들이 모든 걸 자기 뜻대로만 하는 강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끝끝내 아버지일 뿐, 평생 지게에 어깨를 내주고 고된 농사에 등뼈가 굽은, 세월에 지친 노인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어느새 사진 속 농부의 나이를 지나면서 한 집안의 짐을 다 걸머졌던, 그래서 잠시라도 희희낙락하며 자식들의 재롱을 받아줄 여유조차 없었던 아버지들의 속마음이 조금씩 읽힌다. 굽고 지친 몸으로도 가족을 품어야 했던 아버지의 삶을 헤아리지 못했던 철없던 아이들. “이제야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지킨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당신들을 그리워합니다.” 오늘로써 2년간 연재해온 ‘사진의 기억’을 끝내며 그 기억의 끝을 아버지로 마무리하는 이유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3430

 

[사진의 기억]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 중앙일보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을 두루 겪어야 했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버거웠을까. 새벽부터 들에 나가 일해도 좀처럼 살림살이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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