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푸아뉴기니 천연가스 개발
ㆍ정부 “300억달러의 국익” 호언투자자 미국·지배계급만 배불려원주민 사회 반목·해체 우려
남태평양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뉴기니섬의 반쪽 파푸아뉴기니. 850여개의 순수한 토착언어가 살아 있고 ‘지상낙원’ 같은 천혜의 자연이 다문화 사회의 터전이 돼왔다. 그곳에 최근 천연가스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축복일 것인가, 아니면 자연과 문화를 앗아가는 ‘자원의 저주’가 될 것인가. 개발과 보전이라는 작금의 글로벌 이슈와 서구 자본의 저개발국 공략의 역사성이 교차하는 파푸아뉴기니의 고민을 살펴본다.
◇ 파푸아뉴기니의 ‘신화’ = 파푸아뉴기니 남쪽 산악지대인 남하이랜드주 지역의 오래된 신화에 따르면 땅 밑에는 ‘기기라 라이테보’라 불리는 불이 늘 활활 타오르고 있다. 주민들은 땅을 막대기로 톡톡 찌르는 행위가 그 불이 계속 살아있도록 돕는다고 믿고 있다. 그 불의 원천이 액화천연가스(LNG)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 석유업체 엑슨모빌이 진출하고 있다. 피터 오네일 파푸아뉴기니 재무장관은 이 신화를 거론하며 “(지하의) 불이 이제 세계에서 빛을 밝힐 것”이라면서 원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하지만 신화가 현실이 됐을 때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를 두고는 아직 논란이 정리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엑슨모빌은 지난해 12월 파푸아뉴기니에서 호주의 오일서치와 산토스, 일본의 니폰오일 등 협력업체들과 함께 150억달러(약 16조9950억원) 규모의 LNG 개발 사업을 승인받아 2014년부터 일본과 중국, 대만에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닐 더피 엑슨모빌 사장은 “LNG에 대한 세계 시장 수요가 2030년쯤에는 지금의 3배로 늘어날 것”이라면서 “이번 프로젝트가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공급원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천연자원 개발은 파푸아뉴기니에 300억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파푸아뉴기니의 30년간 국가소득을 넘어서는 것이고, 지난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대부분 주민들이 하루 1.25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파푸아뉴기니에 장밋빛 미래를 열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익이 전달될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민 존 하무엘(38)은 최근 한 집회에서 “만약 외국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오면, 당신은 그들에게 음식과 물은 주어야 하지만 그들에게 불을 주어서는 안된다”며 “당신이 그들에게 불을 준다면 이 땅을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의 독특한 토지보유제도 탓에 개발용지 확보도 녹록지 않다. 파푸아뉴기니의 97%는 공유지이면서도 관습적으로 땅 사용자에게 보유권이 있다. 오래 살면서 제 땅을 일궈온 사람에게 토지의 사용·수익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천연가스 개발 예정지에는 6만명의 땅 주인이 있다. 정부는 개발을 위해서 각각의 주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지난해 3000여명의 주민을 초청해서 수익 공유에 대한 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이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땅 주인도 2000여명이 있었다. 결국 작은 땅이지만 제 땅의 권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생기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대시위에 나선 주민 짐 타파페는 “우리는 정부와는 더 이상 거래하고 싶지 않다”며 “개발자인 엑슨모빌과 땅 소유자인 우리가 직접 협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엑슨모빌은 “정부가 원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지역 사업가들이 적절한 행정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도자들의 ‘부패의 덩굴’은 이미 부작용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 킬리 마을의 70대 지도자 하몬 마티페는 지방정부로부터 4개월 전에 보상금으로 12만달러를 받았다. 경찰서 건립 및 도로포장 용도였다. 하지만 마티페는 일단 10명의 부인에게 돈의 대부분을 나눠주고, 돼지 48마리를 샀다. 또 15살 어린신부를 데려오기 위해 지참금으로 돼지 30마리 값을 치렀다. 마을 주민 30여명에게 맥주를 사주고 나니 현재 그의 손에 남아 있는 돈은 없다.
타리 마을은 가스개발 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도시로, 최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인근 언덕에서 억새로 오두막집을 지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원주민들도 맨발로 내려왔다. 이 원주민들은 전통가발을 쓰고, 티셔츠만 입은 채 과일과 채소 등을 팔고 있다. 50년간 파푸아뉴기니에서 살아온 수도사 삼 드리스콜(78)은 “돈이 많이 들어올수록 알코올 중독자나 마약 사용자가 늘어날 것이며, 이곳 사람들은 돈을 쓸 준비가 덜 돼 있다”고 지적했다.
◇ 자원의 축복 될까, 저주 될까 = 서구의 거대 기업들은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세계 빈국들의 천연자원을 찾아나섰다. 이러한 자원개발 원정은 대부분 산악지대나 열대우림 지역에서 이뤄져, 소수 원주민들과 마찰을 빚게 되는 사례가 많았다. 또한 정치권의 부패로 현지인들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은 채 분쟁만 부추겨 이를 두고 ‘자원의 저주’라고 부른다.
석유와 천연가스 이외에도 천연광물 매장량도 상당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파푸아뉴기니로의 개발 붐은 앞으로 더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푸아뉴기니에는 850여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원주민들이 개별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도시 거주 인구는 전체 12%에 불과하다. 수많은 희귀 생물들도 파푸아뉴기니를 터전 삼아 살고 있다. 자원개발이 이러한 것을 한순간에 앗아가는 저주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파푸아뉴기니 일간 포스트 쿠리어에 따르면 올해 1월 남부 산악지대 이라브 지역에서 액화천연가스관 건설을 둘러싼 이권다툼으로 주민 간 총격전이 발생, 11명이 사망했다. 한 갱단이 고성능 총기로 파왈 마을의 부족을 공격하면서 약 270채의 가옥이 파괴됐고 주민 수백명이 대피했다. 가스관 건설과 관련해 남부 산악지대 지주들 간의 수익분배 회담을 앞두고 한 남성이 살해당했으며, 이번 총격이 이에 대한 보복이었다. 최근 이웃국 인도네시아로부터 총기가 밀수되고 마약도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네일 장관은 “남부 고원지대는 인종구성이 너무 다양하게 파편화돼 있어서 나이지리아의 니제르 델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장단체들의 폭력사태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 지도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파푸아뉴기니는 원주민들이 자치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중앙정부의 행정력은 산악지대까지 미치지 않는다. 도로도 포장되지 않았고 전기나 물 공급도 이뤄지지 않는다. 은행이나 우체국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분쟁이 먼저 촉발된다면 원주민들의 사회는 혼란 그 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도자들은 “수익배분에 절망한 젊은 세대의 엑슨모빌 등 업체들에 대한 분노가 폭력으로 나타날까 걱정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해당 지역에 경찰서를 세우고 있다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남하이랜드 코모시의 행정관료인 조 위자(34)는 “지난해까지 이곳은 무법지대였다”며 “엑슨모빌이 이곳에 왔을 때 우리는 터널 끝에서 빛을 봤다”고 말했다.
총리와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마이클 소마레 총리가 지난 3일 수도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함께 웃고 있다.(왼쪽) 원주민과 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한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지난 3일 수도 포트모르즈비 공항에서 전통 춤을 추는 댄서들 ‘싱싱’으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포트모르즈비 | AP연합뉴스
하지만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크리스 알빈 랙키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파푸아뉴기니 경찰은 부패와 (주민) 학대의 대표적 조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들은 범죄 용의자들을 구타하고 고문하며, 여성 수감자들을 상대로 성적 학대를 저지르고 있지만 대부분 처벌받지 않고 있다”며 “다국적 기업들은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경찰관들은 지역 사회를 희생양으로 삼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지도자들의 부패가 개발수익을 삼켜버릴 ‘밑빠진 독’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오네일 장관은 국부펀드를 만들어 개발수익을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아시아·태평양 순방 중 파푸아뉴기니를 방문, 마이클 소마레 총리가 이끄는 정부에 부패 척결과 인권 향상을 촉구하면서 “국부펀드 계획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며 미국은 파푸아뉴기니의 자원이 전체적으로 분배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유에너지부의 석유국장이었던 미첼 맥월터는 “부패는 이미 이 나라의 중앙 행정권과 자치권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며 “국부펀드로 수익을 남길지 그것을 훔쳐갈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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