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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나의이야기

무과 6년 공부하고도 낙방한 이순신

무과 6년 공부하고도 낙방한 이순신 

 

이순신은 처음부터 큰 인물은 아니었다. 아니, '별 볼일 없는' 청년에 가까웠다. "문과를 준비하다 스물두 살 때 무과 공부로 바꿨는데 스물여덟에 본 첫 과거에서 낙방했다. 본질은 6년이나 공부해서 낙방한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순신의 별 볼일 없는 행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첫 과거에 낙방한 뒤 방황하다가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했는데 급제 뒤에도 문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 '보통사람 이순신'이 어떻게 '영웅 이순신'이 되었을까. 그 변화를 이끈 요체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의 힘과 자기성찰, 그리고 올곧은 성품에서 답을 찾았다. 부러지고 깨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관찰했다. 그런 인고의 시간이 저돌적이고 강직한 성격을 에너지로 바꿔놓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이순신 장군이 근본적으로 바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시련을 넘어 완성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학익진(鶴翼陣)농법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했지만 힘차게 노를 저으며 배를 회전시키고 발포를 했던 병사들이 학익진 승전을 이끌었듯 이 땅의 구석을 지키는 농부들이 있어 다시 일어설 것이다. 대한민국  참 농업은....

 

 

학익진은 기본적으로 그림에서 보듯이 적은 아군에게 종대가 되도록 하고, 아군은 횡대가 되도록 배치하는 형태에 적을 감싸 안듯 양 날개가 휘어진 배치가 된다. 이런 배치는 아군의 포격 유효 사거리 안에 적을 최대한 집어넣기 위한 것이다.

 

이순신은 함포전을 통한 일정한 거리의 유지로 그 효과를 극대화 하고 있다. 다시 이순신은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더욱 큰 효과를 창출해 낸다. 즉 판옥선의 특징을 이용한 것인데, 이 배는 배의 바닥이 평평해 빠르게 달릴 수는 없으나, 홀수선(배가 물속에 잠기는 선)이 낮아 수심이 낮은 서해에서 유리하며, 특히 양측의 노를 반대로 젓는 것으로 제자리에서의 회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제자리에의 회전은 판옥선을 쉽게 돌려 측면에 설치된 화포를 적에게 발포함으로써, 선수와 선미에 설치된 2문 내외의 화포에 비해 5배인 10여문의 화포를 빠르고, 또 일시에 발포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학익진의 형태에서 종대로 내려오는 적은, 위의 예에서 4척이 각각 2문씩 총 8문의 화포를 발포할 수 있지만, 이순신의 판옥선은 학익진으로 4:10, 다시 화포에서 8:100의 비율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즉 화포전을 계속하는 한 100:10의 전세는 8:100으로 역전된 것이다.

 

다시 판옥선의 제자리 회전 기능을 적극 활용한다면, 좌현의 포를 발포할 때, 우현은 장전을 하고, 발포가 끝나면 배를 회전시킨다. 이 시간에 발포를 마친 좌현은 장전을 하고, 장전이 끝난 우현이 적에게 향하면 다시 발포한다. 다시 배는 회전하고 회전이 끝나면 장전이 마쳐진 좌현이 다시 발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서 앞서의 8:100은 다시 8:200의 비율로 역전이 된다. 바로 이것이 정(丁)자 타법으로 적선에 화포가 많은 측면을 향하게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위의 학익진도는 바로 학익진과 정자타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형태인 것이다.

 

이순신의 학인진도를 보면 얼마나 정교한 진형인지 감탄하게 된다. 흐르는 물살과 바람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런 형태의 진을 수십척의 함선이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실전에서 이런 형태의 진형을 그것도 평지에서의 육군이 아닌 바다에서의 수군이 유지해 완벽하게 운영했다는 것은 이순신의 전략과 전술 뿐 아니라 장졸들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했지만 힘차게 노를 저으며 배를 회전시키고 발포를 했던 이름없던 병사들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 것이다. 농업이라는 험난한 대지에서 이름없는 들플로 이 땅을 지키는 수 많은 농부들 속에서 위대한 학익진 농업이 태동하길 기대해 본다.

  

충무공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나라를 구한 업적만이 아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해야 할 소임을 다하고 온몸으로 묵묵히 실천하는 자세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높은 관직을 취하려 하지 않았고 기름진 음식을 탐하지 않았고 자신의 공적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충무공은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역사는 충무공의 위대함을 가감 없이 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충무공은 역사 속의 영웅으로 남았다. 세상이 어두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세상은 모든 것을 정확하게 평가한다. 충무공의 그런 삶을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한다.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배우는 것은 사람이 지향해야 할 자세다. 옛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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