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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좋은글모심

산천어 이야기

산천어를 낚으며

 

 

 

 

 

 

그놈은 무심했다. 바닥에 드리운 미끼 근처를 맴돌다 가버렸다. 또 한 떼가 접근했다. 이번에는 아예 갈 길이 바쁜 관광객 무리처럼 사라졌다. 은빛 몸통에 눈물 점 박힌 그놈을 낚아보려고 한 시간가량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급기야 몸이 얼었다. 화천 협곡에서 부는 골바람에 턱이 덜덜 떨렸다. 한 자 정도 두텁게 얼어붙은 강 한복판에 방한복을 차려입은 도시인들이 챔질을 계속했다. 그 무뚝뚝한 은빛 산천어를 유혹해 물 바깥으로 끌어올린 행운아들도 더러 있었다. 올해로 100만 명을 돌파한 화천 산천어축제의 풍경이다.

 줄잡아 400억원, 10년 동안 그 작은 산촌에서 벌어들인 소득이다. 창업자본은 그야말로 소액, 가장 중요한 설비는 얼음인데 그건 혹한의 산바람이 무상으로 제공한다. 축제장 부근의 식당과 포장마차는 주민들이 차린 즐거운 점포이고, 군청직원과 주민들이 돌아가며 안내를 맡는다. 휴가병들이 뿌린 잔돈푼으로 연명하던 산골마을 화천이 미국 CNN이 불가사의한 성공사례로 주목한 비결은 위기 타개를 위한 관민 협력이었다. 미련 없이 떠났던 북한강 마을 화천으로 청년들이 돌아오고 있다. 마치 산란을 마친 산천어처럼 말이다.

 재정자립도 12.9%라는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결과였다. 공직자들과 주민단체가 사익을 초월한 생존의 아이디어를 짜내고 실행한 것이 주효했다. 이런 경우엔 국고지원이 아까울 게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세금누수처다. 양평군에는 750억원짜리 종합운동장이 건설 중이고(국비 120억원, 군비 490억원), 전남 영암군은 430억원짜리 수상뮤지컬 무대를 기획 중이다. 전북 진안군은 용담호에 동양 최대의 고사분수를 40억원 들여 만들었는데 관광객 유치에 실패해서 가동을 중단했다(중앙일보 진세근팀의 ‘세 감시/시민 CSI가 떴다’).

 

지난해 감사원은 지방의원이 친인척에게 몰아준 불법 사업 192개를 적발했다. 지자체는 사업이권을 분배하고 상납받는 거대한 이권조직으로 전락했다. 요즘 전국적으로 각광을 받는 우레탄 산책로에도 관상(官商) 비리가 깔려 있다. 중앙일보 탐사팀은 편법 부실 시공된 관급공사 851곳을 적발했다. 도로 밑에 건설비 50%가 증발된 스토리가 숨어 있다. 지자체는 관급공사와 전략사업을 둘러싼 이권동맹이었다. 세금 파티를 벌이는 전국 232개 지자체, 그걸 감시하고 문책할 기관은 없다. 감사원은 중앙업무만으로도 벅차다.

 세금을 갉아먹는 이권동맹은 요즘 같은 선거철이 되면 투표 혈맹으로 전환한다. 시장·군수-지방의원-개발업자로 구성된 ‘철의 삼각동맹’이 권력을 다투는 선거철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단체장이 임의로 집행할 수 있는 300억~400억원의 사업예산은 이미 동맹결속용으로 쓰였기에 조직원들은 보답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가 남이가’-이 한마디면 이익공유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광주 동구에서 벌어진 것처럼 주민센터가 후보경선 전략사무실이 되는 이유다.

 

그게 어디 광주뿐이랴. 단체장이 되고 금배지를 다는 것은 지역구에 길러둔 이권동맹을 비밀 충성결사로 제대로 전환했는가에 달려 있다. 모바일 경선을 포함해서 예비경선이 지닌 허점이 이것이다. 주민자치를 앞세운 지방선거, 권력교체를 내건 총선도 따지고 보면 지역을 장악한 이권동맹 간 주도권 싸움이다. 전국을 옭아맨 관상(官商) 야합을 감시할 공식기구는 손을 놓고 있다. 감사원은 적발된 사례를 도 감사실과 시·군 감사실에 통보하지만, 지역사회에서 결코 남이 아닌 이들은 이권동맹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다리 건너면 곧장 선이 닿는다. 언론과 방송이 가끔 카메라를 들이댈 뿐이다.

 

 

관권(官權)과 향권(鄕權)이 각축하던 조선시대에도 이러지 않았다. 지방 사족인 향반은 수령과 아전들을 감시했고, 청렴한 수령은 향반들의 서민수탈 행위를 금했다. 다산 정약용은 수령과 현감이 아전들의 농간에서 벗어나고 향족들의 이권다툼을 다스리는 데에 필요한 덕목을 『목민심서』에 가득 적었다. 관향(官鄕) 야합이 자행되어 서민생계가 핍박받는 지역, 그래서 연명상소가 올라오거나 소요가 발생한 곳에는 암행어사를 파견했다.

 

지금은 세금이 어떻게 남용되는지, 이권동맹의 조직원이 누군지, 관상 야합의 구조가 어떤지를 알 길이 없다.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의회에서 가끔 논란이 일어나도 합법적 행정행위라면 그만이다. 끈질기게 파헤치고 용기 있게 고발하는 주민도 없다. 그러다가 지역사회에서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감동적 혁신 드라마를 보여준다던 여당과 야당, 당내 인맥과 파벌에 눌려 인적 쇄신은 엄두도 못 내는 두 정당이 정권을 바꾸거나 연장한들 건강한 사회발전의 밑동을 갉아먹는 지역 이권동맹의 야합구조를 척결할 수 있을까? 아니 그게 밑천인데 그걸 구태여 버릴까?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그 무심한 산천어가 밉지 않았던 것은 산촌의 빈곤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화천의 열기가 진짜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송호근/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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