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5000억 시장 발효화장품
[중앙일보] 입력 2012.06.09
최근 출시된 발효화장품들은 검은콩, 목이버섯, 쌀(막걸리) 등의 재료를 저온에서 일정 기간 발효시킨 후 화장품의 주성분으로 사용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 장아찌…. 한식이 건강식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오래 삭히고 묵혀서 우려낸 이들 ‘발효식품’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선조들의 식문화 지혜가 뷰티 업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이른바 ‘발효화장품’ 전성시대다. 2007년 LG생활건강이 자연발효 브랜드 ‘숨37’을 내놓으면서 불붙은 발효화장품 시장은 현재 50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하며 매년 40%씩 성장하고 있다. 브랜드 간의 각축전도 볼만하다. 2010년 아모레퍼시픽이 발효 전문 브랜드 효시아를 내놓았고, 올 4월에는 한국화장품이 창립 50주년 기념 특별 브랜드로 효움을 내놓았다. 네이처 리퍼블릭, 더샘, 더페이스샵, 투쿨포스쿨 등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들 역시 최근 1~2년 사이 앞 다투어 발효기술을 이용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뷰티업계를 사로잡은 발효화장품의 매력을 알아봤다.
피부 방어력 증가에 항균작용까지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을 구경하던 주부 강정민(33)씨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다 결국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방화장품은 알겠는데, 발효화장품은 또 뭐죠?” 한방발효, 천연발효, 자연발효 등등. 최근 화장품 매장 진열대를 장식하는 홍보문구 중 눈에 많이 띄는 게 ‘발효’라는 단어다. 강정민씨는 “먹어서 좋은 발효식품의 원리를 화장품에 적용했다는 의미 같은데 피부에선 어떤 효능을 발휘하는지 감이 안 잡힌다”고 했다.
발효란, 효모 등의 미생물이 만들어낸 효소가 유기물을 잘게 분해해서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발효화장품은 이 발효기술을 이용해 만든다. 대개는 브랜드가 자체적으로 찾아낸 특별한 재료를 저온에서 일정기간 발효시킨 후 화장품의 주성분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효시아는 검은콩을, 더샘은 차가버섯과 목이버섯을, 네이처 리퍼블릭은 로열젤리와 동충하초를, 투쿨포스쿨은 쌀(막걸리)을 핵심 발효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발효식품과 화장품을 함께 연구하는 한의사 왕혜문(38)씨는 발효의 효능을 ‘영양의 극대화, 흡수력 향상, 항균 효과’ 3가지로 꼽았다. “작은 발효 미생물들이 영양 성분의 효능을 향상시키고, 분자 구조를 잘게 부수기 때문에 성분이 피부 깊숙한 곳까지 보다 많이 빠르게 흡수됩니다. 피부 방어력을 증가시키고 독성을 제거하는 것도 발효의 주요한 효능이죠.” 포도주스보다 발효 과정을 거친 포도주의 노화방지 효과가 7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이해가 쉽다.
한방·자연주의 화장품의 장점만 취하다
① 미샤 ‘타임 레볼루션 나이트 리페어’ 앰풀 ② 숨37 ‘숨아트’ 에센스 ③ 효시아 ‘블랙 리뉴빈’ 크림 ④ 더샘 ‘차가발효 화이트 리포솜 100’ 세럼 ⑤ 투쿨포스쿨 ‘맥걸리’ 퍼펙터 ⑥ 효움 ‘연’ 크림
발효기술이 국내 화장품에 쓰인 건 2000년대 초부터다. 당시 뷰티 업계에선 한방화장품이 인기였고 여러 가지 재료 중 발효 과정을 거친 약재들이 포함되곤 됐다.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SKⅡ 역시 일본의 발효기술을 이용한 화장품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출시 4개월 만에 30만 개가 팔린 미샤의 ‘타임 레볼루션’ 에센스와 앰풀도 발효 효모액을 사용한 것이다. 다만 이들 화장품은 지금까지 ‘발효’ 기술보다는 원료인 ‘약재’와 피테라·비피다 유산균 같은 ‘성분’을 중점적으로 홍보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발효’라는 과학기술을 먼저 앞세운다. 한국화장품의 우하택 마케팅 이사는 그 이유를 “연 매출 2조원 시장을 형성한 한방화장품이 소비자들에게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졌고 많은 브랜드가 고민한 결론이 ‘발효과학’”이라고 했다. 발효는 일단 소비자에게 다가가기에 좋다. 과학이지만 친근하고 익숙해서 어렵지 않다. 또 우리 몸에 이로울 것 같은 동양적이고 자연적인 느낌도 강하다. 우 이사는 “한방라인이 고급 한정식이라면 발효라인은 사찰음식과 같다”며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장점은 취하면서도 느낌은 훨씬 가볍고 산뜻한 게 발효화장품의 특징”이라고 했다.
20대 후반부터 40대까지, 피부 나이로 치면 너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중간에 ‘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더샘의 신재경 마케팅 팀장은 “‘한방라인=올드 타깃 화장품’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20대 후반~40대 소비자들을 위한 새로운 제품 개발이 필요했다”며 “‘아픈 후에 한약을 먹기보다 평소 신선한 자연식품을 먹으면서 건강하게 살자’는 이들 세대 욕구를 화장품에 반영한 것이 바로 발효화장품”이라고 했다. 한약 냄새를 없애고 허브 등으로 자연 향을 강조해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을 살린 건 이들 세대의 자연주의 취향을 반영한 대표적인 예다.
한류 뷰티를 위한 새로운 주자
최근 2~3년간 급성장한 발효화장품은 상품군도 다양하다. LG생활건강은 올해 5월 보디전용 브랜드인 온더바디에서 과일과 꽃을 발효시켜 만든 보디워시를 출시했다. 궁중비책은 아토피 등 피부가 민감한 아기전용 발효화장품 ‘효72’를 선보였고, 미애부는 여성·보디라인과 함께 남성들을 위한 ‘미스터 미애부 라인’을 출시했다.
일본·중국·동남아 등 한류 뷰티에 열광하는 외국 시장으로의 수출도 이미 시작됐다. 특히 국내와는 별도로 일본 시장만을 위해 막걸리 발효화장품을 내놓은 브랜드들도 있다. 네이처 리퍼블릭은 지난해 일본 파트너사인 MRC의 제안으로 포천이동막걸리를 이용한 ‘막코라’ 라인을 출시했다. 현재 배우 장근석의 막코라 비누 광고가 TV에서 방영 중이다. 더페이스샵 역시 일본의 유통업체인 이온그룹과 함께 올해 5월 1일 ‘더골든샵’이라는 별도의 브랜드를 시작했다. 주력 제품은 ‘막걸리 라인’이다. 모델은 ‘지우히메’ 최지우가 맡았다. 이 브랜드 홍보팀의 김지숙 대리는 “낫토 같은 발효식품을 가진 일본은 발효 효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다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한국의 막걸리가 인기가 좋아 이를 이용한 제품을 출시하게 됐다”고 했다.
차별화된 숙성 조건이 마케팅 포인트
효움의 고두진 상품기획팀장은 “발효화장품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조건으로 숙성시켰는가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했다. 실제로 발효식품은 숙성온도와 통풍 조건, 물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의 차이를 보인다. 화장품 브랜드들은 자사의 화장품이 어떤 도구와 환경에서 발효된 제품인지를 마케팅 요소로 적극 활용함으로써 타사와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무안의 연꽃 씨를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효움은 저온숙성 발효의 최적 조건을 위해 강원도 정선의 석회동굴인 화암동굴을 이용한다. 이때 용기는 강진의 봉황 옹기만을 사용한다. 올해 숨37이 내놓은 ‘숨아트에센스’는 24가지 식물 원료를 프랑스 장인이 만든 오크통에 담아 충북 충주에 있는 사과와인터널에서 발효시킨다. 민감한 아기 피부를 위한 브랜드 효72는 한방 약재를 담양 대나무 통에 담아 72시간 발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뷰티 업계 한쪽에선 “발효식품의 장점을 이용한 과대 포장”이라는 주장도 있다. 희귀한 재료와 흥미로운 발효 조건을 앞세워 주목은 끌고 있지만 정작 그렇게 추출한 이로운 성분이 과연 얼마나 함유됐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은 대부분 물(정제수) 70~90%에 오일·보습제 등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여기에 미세한 양의 발효성분이 첨가되는 것이니 광고만큼 효능을 보려면 어느 정도의 양을 얼마 동안 발라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한의사 왕혜문씨도 “발효화장품이 모든 피부 문제를 다 해결할 순 없다”며 “특정 성분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화장품을 구입할 때는 성분 표시를 꼼꼼히 읽어본 후 반드시 팔 안쪽 가장 부드러운 피부에 테스트를 해볼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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