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나무 오배자
산림청우표속나무이야기
붉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는 나무 잎이 가을에 아주 붉고 아름다워서 ‘붉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붉은 색이 단풍나무보다 오히려 더 빨간색으로 물드는 가을의 단풍이 너무도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불타는 것처럼 붉다 하여 불나무, 북나무라고도 하며 경상도나 강원도지방에서는 ‘뿔나무’라고도 부른다. 붉나무는 개옻나무와 비슷해 옻나무로 착각하여 접근을 기피하는데 사실 붉나무는 전혀 옻이 오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이로운 약이 되는 나무다.
붉나무와 개옻나무의 차이점을 어떻게 구별하면 알 수 있을까? 약간의 세밀한 관찰력을 나타내기만 하면 된다. 예를 들어 붉나무는 잎줄기에 날개가 있고 잎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나 개옻나무는 날개와 톱니가 없다. 또한 개옻나무는 잎자루의 빛깔이 붉고 꽃차례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오지만 붉나무의 꽃차례는 가지 끝에서 나온다. 꽃의 빛깔은 붉나무가 황백색이지만 개옻나무는 황록색이다. 열매는 붉나무가 황적색이고 열매 껍질에 흰가루 덩어리가 있으나, 개옻나무는 황갈색이고 열매 껍질의 털이 강하고 굳세다. 그리고 확실히 구별되는 것은 붉나무 잎에는 드물게 '오배자'라는 굵은 벌레집이 달려있는 것이다.
붉나무는 옻나무과이며 키가 작다. 높이는 약 8m정도까지 자라고 나무껍질은 회갈색이며 겨울눈은 노르스름한 회색의 가늘고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다. 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가지 끝에 곧게 서는 원추꽃차례에 작은 황백색 꽃이 촘촘히 모여 피고 개화기는 8~9월이며 결실은 10월이다.
붉나무 벌레집인 오배자는 잎자루의 날개에 진딧물이 기생하면 벌레 혹 안에는 날개가 달린 암 벌레 1만 마리 내외가 들어 있으며 근처의 이끼 틈에서 겨울을 난다. 맛은 시고 짜며 성질은 평하고 독이 없으며 폐, 위, 대장에 좋다. 초가을 벌레가 나가기 전에 벌레집을 따서 증기에 쪄 벌레를 죽이고 말려야 한다. 잎에 커다란 풍선 주머니 같은 혹이 튀어나와 벌레집을 형성한다. 바로 이것이 천을 물들이는 천연염료와 잉크를 만드는 원료로도 사용된다. 벌레집이 생기는 과정을 세포조직학적으로 살펴보면 외부 자극에 의한 식물세포의 이상 증식으로 식물 또는 식물종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혹에 대한 연구는 항암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속은 대개 비어 있거나 회백색의 죽은 벌레와 분비물이 남아 있을 때도 있고, 역겨운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벌레집은 생긴 모양에 따라 귀처럼 생긴 이부자, 나뭇가지처럼 갈라진 지부자, 꽃처럼 생긴 화부자로 나누는데 각각의 탄닌 함량이 다르다. 대개 껍질이 두꺼운 귀 오배자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태류가 많이 자라는 그늘지고 습한 곳에 붉나무의 생육 상태가 좋으므로 잘 가꾸어서 벌레집을 이용하여 약재를 얻을 수 있다.
열매는 수수알 정도의 크기이며 열매에 뒤집어 씌워져 있는 흰 가루가 짜고 신맛이 있어 염부목, 염부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날, 심심산골에서는 두부를 만들 때 간수로 사용되기도 하거나 산속에서 오랫동안 지내는 사람들에게 귀중한 약소금이 됐다. 붉나무는 열매에 소금이 열리는 이상한 나무이다. 가을철에 익는 열매에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붙어 있는데 혀로 핧아 보면 맛을 보면 소금처럼 짜면서도 매실처럼 신맛이 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산 속에서 살 때 소금이 떨어지면 붉나무 열매에 붙은 가루를 모아서 소금 대신 썼다.
붉나무 열매에 붙어 있는 소금은 소금의 독성이 완전히 제거된 가장 이상적인 소금이라 할 수 있다. 이 소금을 간수 대신 써서 두부를 만들면 두부 맛이 천하일품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두부를 만들려면 붉나무 열매에 붙은 가루를 간수 대신 써야 한다. 두부를 만들 때 쓰는 간수에는 상당히 센 독성이 있어서 옛날 시어머니한테 구박을 받던 며느리가 간수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더러 있었다. 간수로 콩의 단백질을 엉기게 하여 두부를 만든 다음 물에 담가서 간수를 씻어낸다고 하더라도 두부 속에 간수가 약간 남아 있기 마련이므로 두부를 많이 먹으면 간이 망가지기 쉽다.
붉나무 껍질과 잎은 급성이나 만성 장염에 특효약이라 할만하다. 잎을 잘게 썰어서 물엿처럼 될 때까지 진하게 달여서 먹으면 신통하다고 할 만큼 잘 낫는다. 설사가 나거나 곱똥을 누거나 대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배에 가스가 차고 속이 더부룩하며 가끔 아랫배가 아픈 증상 등에 효험이 크다. 흔히 만성 대장염은 병원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라고 하지만 잘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흔한 나뭇잎 같은 것으로 얼마든지 고칠 수 있는 것이다.
오배자에 관해서 북한에서 펴낸 <동의학사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배자는 붉나무 벌레집이다. 문합(文蛤), 백충창(白蟲倉)이라고도 한다. 옻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인 붉나무의 잎에 생긴 벌레집을 말린 것이다. 붉나무는 각지의 산에서 자란다. 9~10월에 붉나무벌레집을 따서 증기에 쪄서 말린다. 맛은 쓰고 시며 성질은 평하다. 폐경, 위경, 대장경에 작용한다. 장(腸)을 수렴하여 설사를 멈추고 출혈과 땀을 멈춘다. 또한 헌데를 잘 아물게 하고 기침을 멈춘다. 주요 성분인 탄닌(50~60%)의 수렴작용에 의하여 지사작용, 지혈작용, 억균작용, 선분비억제작용을 나타낸다. 설사, 대장염, 이질, 위장출혈, 탈항, 토혈, 각혈, 코피, 식은땀, 자한(自汗) 등에 쓴다. 또한 외상성 출혈, 창양, 점막의 염증, 화상, 궤양, 습진, 농가진, 오랜 기침 등에도 쓴다. 탄닌성분은 알칼로이드를 앙금으로 가라앉히므로 알칼로이드중독을 막는 데도 쓴다. 하루 2~8그램을 물로 달이거나 가루내거나 환을 지어 먹는다. 외용약으로 쓸 때는 달인물로 씻거나 가루내어 뿌린다. 또는 가루를 기초제에 개어 바른다."
안덕균씨가 지은 <원색한국본초도감>에서는 염부목에 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옻나무과의 갈잎떨기나무 붉나무(오배자나무)의 뿌리와 잎이다. 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집을 오배자라고 한다. 성미는 염부목은 시고 짜며 차다. 오배자는 시고 평하다. 효능은 염부목은 청열해독, 산어지혈한다. 오배자는 렴폐, 삽장, 지혈, 해독한다. 뿌리는 감기로 인한 열을 내리고 장염, 치질 출혈에 효력이 있다. 잎은 제독작용이 있으므로 뱀에 물린 데 붙인다. 오배자는 수렴 작용이 강하여 폐 기능 허약으로 인한 만성해수를 그치게 하고 잘 치유되진 않는 이질, 탈항, 자한, 도한, 유정을 치료한다. 지혈 작용은 대변 출혈, 코피, 자궁 출혈을 그치게 하고 외상 출혈에도 유효하다. 종기, 피부염, 가려움증에도 효력을 나타낸다. 약리작용에서 오배자의 'gallotammin' 성분은 수렴 작용이 있어서 피부 점막에 접촉되면 조직 단백이 응고되어 수렴 효과를 나타낸다. 이질균, 녹 농균 등에 항생물 작용이 있고 항생육작용이 있어서 정자를 감소시킨다. 간 기능 보호 작용과 항산화 작용을 나타낸다. 임상 보고에서 소화기도 출혈에 이 약물 15그램을 가자(訶子)와 배합하여 복용하자 유효한 반응을 보였고, 궤양성결장염, 방사성직장염, 유정, 폐결핵으로 인한 도한, 각혈, 이질, 자한, 당뇨병, 말기 분문암 및 식도암, 치질, 화상, 조루, 야제(夜啼), 소아설사, 가을철에 유행하는 장염 등에 치료효과를 보였다."
전북중앙일보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