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슬프게 우는 듯한 악장에
차이코프스키의 삶 더해져
겨울 정서 가득한 우울의 향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 중에서도 후반의 3곡(4ㆍ5ㆍ6번)은 한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다. 특히 이 세 곡에는 겨울의 정서가 가득하다. 추운 나라 러시아에서도 가장 추운 곳으로 손꼽히는 북쪽 지역, 한때 죄수들의 유형지로도 유명했던 보트킨스트(Votkinsk)에서 태어난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추운 겨울에 들어야 제맛이 나는 특유의 우울감이 있다.
물론 그것을 ‘러시아 정서’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뿌리는 역시 ‘러시아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교향곡들은 베토벤처럼 구조적이기보다는 모차르트처럼 선율에 중점을 둔 경우가 많다. 차이코프스키는 그런 맥락에서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조용한 곳에서 자라났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대중적인 러시아 노래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었다. 그리하여 러시아 정신의 모든 표현에 정열적으로 빠져들어 갔다. 간단히 말해 나는 철저히 러시아 사람이다.” 이 말은 곧 “내 음악은 러시아의 노래에서 나왔다”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후반기 교향곡들 중에서도 ‘비창’으로 불리는 6번은 비관주의로 가득한 절망의 교향곡이다. 물론 앞서 작곡한 4번, 5번에서도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이 드러나지만 6번만큼 완전한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예컨대 5번만 해도 차이코프스키의 어떤 동경과 그리움 같은 것이 음악 속에 담겨 있다. 특히 3악장에서는 따뜻함을 향한 갈망이 느껴진다. 마지막 4악장에서도 완벽한 절망으로 추락하지 못하고 절충적인 피날레를 선택한다.
하지만 6번은 다르다. ‘비창’으로 불리는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서 차이코프스키는 마침내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그려낸다.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코프스키가 직접 지휘해 이뤄졌다. 그리고 9일 뒤에 차이코프스키는 실제로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교향곡 6번 ‘비창’은 그 자체의 비극성뿐 아니라 차이코프스키의 실제 죽음과 결부되면서 ‘마지막 비극’이라는 신화성을 한층 키웠다.
이 곡은 전체적으로 느린 1악장, 빠른 2악장과 3악장 그리고 다시 느린 4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통상적으로 교향곡의 4악장은 빠른 템포로 펼쳐지는 법이지만 차이코프스키는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비창’의 4악장은 아주 느릿하게 문을 열면서 앞의 두 악장과 확연한 대비를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던 차이코프스키의 비관적 운명론이 집약돼 있는 악장이다. 두 개의 주제 선율은 모두 밑으로 하강하면서 비통한 분위기를 펼쳐낸다. 슬프게 울고 있는 것 같은 첫 번째 주제가 여리게 흘러나오다가 관현악 총주로 한차례 치솟아 오른다. 그러다가 다시 꺼질 듯이 가라앉는다. 호른의 뒤를 따라 현악기들이 여리게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도 흐느끼는 듯한 클라이맥스를 구축했다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진다. 우울함을 뛰어넘어 낙담과 절망, 체념을 느끼게 하는 악장으로 힘없이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그렇다.
키릴 콘드라신이 모스크바 필하모닉을 지휘한 명연은 아쉽게도 국내 매장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가 지휘하는 소련 국립관현악단의 1990년 도쿄 산토리홀 실황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예브게니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1960년)일 수밖에 없다. 지휘자의 카리스마와 악단의 호응이 매우 뛰어난 연주, 호쾌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살아 있는 명연이다. 5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막강한 감흥을 전해준다.
▶ http://youtu.be/F1VG7SKHCeI?t=12s
문학수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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