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나무의 일생
Broussonetia kazinoki
전주한지박물관을 찾아 섬유료 특용작물 제조 방법을 찾았다. 국내 제지업계의 선두주자로 신문용지와 출판용지를 생산하는 전주페이퍼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전통 한지문화와 현재 우리 생활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지의 모습을 동시에 선보여, 일반인들에게 우리한지의 우수성을 제대로 알리고 한지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2007년부터 종이박물관에서 전주한지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지공예품, 한지 제작도구, 고문서, 고서적 등 한지관련 유물을 다시 소장하고 있으며, 해마다 다양한 주제로 한지의 색다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을 개최하여 한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던가. 비록 가죽은 없지만 껍질을 남기는 나무가 바로 닥나무다. 덕분에 닥나무는 인류에게 오늘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 원동력인 종이를 탄생시켜 인쇄문화를 이끌어온 영광스런 나무가 되었다. 기껏 4~5미터 남짓한 자그마한 체구에 볼품없는 잎사귀 몇 개를 달고 있는, 나무나라에서는 그저그런 존재이지만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다른 나무가 일궈내지 못한 큰 선물을 인류에게 안겨주었다.
종이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면서 제조기술의 발전과 함께 원료 확보가 문제였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나무, 뽕나무, 소나무, 버들의 나무껍질에서부터 갈대, 율무, 짚, 솜에 이르기까지 섬유를 가진 식물이면 거의 종이 원료가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식물섬유를 찾아가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종이와 찰떡궁합인 닥나무를 찾아냈다.
닥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방법은 오랜 시간과 손이 많이 간다. 늦가을에 닥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통에 넣고 찐 후 껍질을 벗겨낸다. 물에 담가 부드럽게 만든 겉껍질을 제거하면 하얀 안껍질만 남는다. 다시 솥에 넣고 나뭇재를 섞어 삶는다. 그런 다음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절구로 찧거나 떡판에 올려놓고 두들겨서 껍질이 흐물흐물해지게 만든다. 이후 통에 넣고 물을 부어 잘 섞은 다음 닥풀을 첨가하여 발로 김을 뜨듯이 한 장 한 장 떼낸다.
이렇게 닥나무 종이는 제조과정이 복잡하고 기술집약적인 산업이었지만, 품질 좋은 종이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나무였다. 당연히 공급이 달려 닥나무 확보에 애를 써야 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재배하기를 권했으며, 조정에서는 재래종 닥나무 재배 독려에 그치지 않고 재료 다변화를 꾀했다.
조선 초기에는 품질 좋은 ‘왜닥나무’를 수입해 널리 심었다. 가지가 세 개로 갈라지는 삼지닥나무와 싸리 비슷하게 생긴 산닥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한 왜닥나무다. 삼지닥나무는 꽃도 아름다워 오늘날 남부지방의 절 근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산닥나무는 남해 화방사 앞에 천연기념물 152호로 지정된 자람 터가 있다.
우리나라에 종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낙랑시대까지 올려 잡기도 하나 널리 보급된 것은 삼국시대인 6~7세기 정도로 본다. 실제 현물 종이가 발견된 것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더욱 발전했고, 종이발명의 원조인 중국에서도 그 품질을 알아주었다. 서양 종이에 자리를 내줄 때까지 닥나무 종이는 우리문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박상진 우리나라 나무의 세계 중에서
'敎 > 실습현장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용작물학과 개인 포장실습 (0) | 2016.07.02 |
---|---|
특용작물학과 환경제어 실습동 (0) | 2016.07.02 |
전주 닥나무와 작약꽃 (0) | 2015.05.21 |
선운산약초원의 봄 (0) | 2015.05.20 |
무기물 자재의 이해와 활용 (0) | 2015.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