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인구 구조의 변곡점이다. 베이비부머의 맏형인 1955년생이 65세 이상 법정 노인으로 진입했다. 막내인 1974년생까지 인구의 3분의 1인 베이비부머가 순차적으로 고령 인구가 된다. 거대 인구층의 고령화라는 ‘2020년 문제’가 시작됐다.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0.92)이 맞물린다.
여기에 고령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기대 수명은 올라가고 생산가능인구가 주는 판에 눈덩이 복지비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시계획 전문가 마강래 중앙대 교수(49)의 베이비부머와 젊은층의 공간 분업론은 신선한 처방전이다. 지난달 저서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를 통해 은퇴자의 귀향귀촌이 4차 산업혁명 거점인 도시로의 젊은 인재 진입 장벽을 낮추고 한계상황의 지방도 살린다고 역설했다.
책 제목이 도발적이다.
“우리나라엔 향후 20년이 고비다.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령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베이비부머는 1차(1955~63년), 2차(68~74년)와 그사이에 낀 64~67년생도 포함해야 한다. 2020년 현재 이들 나이는 46~65세로 모두 1685만명이다. 향후 20년간 65세 이상은 813만명→1722만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 반면에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3736만명→2865만명으로 23% 줄어든다. 거대 인구층의 노령화와 대거 은퇴는 시한폭탄이다. 이제 고령사회가 표준이다. 이에 맞춰 제도를 바꾸어야 우리 사회도 지속 가능할 수 있다. 핵심은 베이비부머의 일자리 정책이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은퇴자가 일해야 연금 등 난제 풀려
하지만 연착륙은 쉽지 않아 보인다.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온갖 사회적 난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은퇴자들이 직면한 시간 과잉의 문제부터 연금 고갈,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 고독사, 의료시설 부족까지…. 정치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보다 먼저 은퇴자를 쏟아낸 선진국을 보면 이들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챙길 여력이 있겠나.
“베이비부머는 이촌향도(離村向都)를 주도했고, 거대한 공간 흐름을 만들어낸 인구층이다. 이들은 우리가 목도하는 고령자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지난 30~40년 정치·경제·사회 변화를 주도해온 세대다. 이들은 상상하는 것보다 부자이고 똑똑하며 사회 참여 의지가 강하다. 이들이 앞으로 활발하게 일하고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라의 곳간엔 이들의 여생을 돌봐줄 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 젊은 세대는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차다. 다른 대안은 없다. 이들이 경제활동을 해야 정부도 재정 압박을 줄일 수 있고, 연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세대도 힘들어진다.”
귀향 정책이 왜 대안인가.
“무엇보다 많은 수의 베이비부머가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한다. 은퇴 후 귀농귀촌 여부를 조사한 2018년 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50대의 42%, 60대 이상의 34.3%가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것이 난제들을 해결할 하나의 동력이 될 것으로 보았다. 베이비부머가 도시를 떠나 지방 중소도시나 농촌에서 살며 젊은이들과 충돌하지 않는 일을 하면 된다. 일종의 세대 간 공간 분리 전략이다. 베이비부머와 청년층의 상생을 위해선 세대 간 일자리 분업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공간적 분업도 긴요하다. 이는 두 세대를 궁극적으로 융합하게 하는 상생 전략이다.”
귀향한다고 해도 일자리가 문제다.
“베이비부머엔 지방 중소도시가 대도시보다 여생을 보내기에 더 유리한 터전일 수 있다. 앞으로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게 늘어날 수 있다. 실버산업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고령자가 많아지고 이들의 소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좋은 예다. IT 기술을 중심으로 한 노인 보조기구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품과 서비스 기획·개발은 도시에서 젊은 세대가 하겠지만, 수요는 농촌과 지방 중소도시에서 골고루 있을 것이다. 요양업, 고령자용 운송업, 평생교육업, 고령 친화 주택이나 시설 관련업 등 일자리는 건강한 베이비부머 구미에 맞을 수 있다.”
베이비부머가 도시를 떠나도 젊은층의 도시 안착 보장이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세는 정보통신기술(ICT)과 스마트 공장이다. 이 산업에 적합한 공간은 도시이고, 도시는 젊은 혁신 인재들을 원한다. 해마다 20만명이 넘는 젊은이가 시골로 간다. 이는 귀촌한 게 아니라 대도시 집값이 너무 비싸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고 보는 게 맞다.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대도시 부동산을 꽉 잡고 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의 탈도시화는 청년들의 안착을 돕고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다. 이는 저출산 문제도 풀 수 있는 열쇠다. 청년층에 안정적 주거 환경이 제공돼야 도시가 살고, 국가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 미국과 일본도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도시로 눈을 돌렸다.”
은퇴자가 지방에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베이비부머는 일부 지자체에선 거의 청년층이다. 중위연령이 60세에 다다른 지자체도 있다. 베이비부머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향후 10~30년 정도는 너끈히 일할 능력도 갖췄다. 현재 지방 중소도시는 젊은 인구 유출→인구 감소→도시 인프라 저하→잔여 인구 유출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이를 끊는 방법은 젊은 인구를 유입하는 것보다 인구수 자체를 늘려 생활인프라 저하를 막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 5대 광역시에 1100만명이 넘는 베이비부머가 있다. 이들은 많은 순자산을 가진 만큼 강력한 소비력을 갖고 있다. 일할 능력과 의향도 있다.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인맥이 지방에 상당한 시너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귀향에는 문화·의료 시설 부족 등 걸림돌도 적잖다.
“귀향 인사들이 흩어져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력적인 공간 조건의 하나는 문화 여가시설, 복지와 행정시설의 집중이다. 은퇴자 주거단지(CCRC)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 의료 수준 개선은 인력의 보완과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 부족하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도시 압축을 통해 의료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베이비부머의 귀향을 촉진하려면 기초연금 등 지자체의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궁극적으로 기초연금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다른 정책적 대안은.
“노인 기준 상향 조정과 정년 연장을 통해 고령자가 일하는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65세부터 다양한 복지혜택이 제공되는 상황에서 노인 기준을 늦추면 큰돈을 절약할 수 있다. 예산 절감 효과가 가장 큰 부분은 기초연금이다. 물론 문제도 있다. 노인 빈곤을 심화시킬 수 있다. 그런 만큼 노인 기준 변경 문제는 반드시 ‘계속고용제도’ 등 노인 일자리 정책 논의와 맞물려야 한다.”
귀향 프로젝트를 국가 균형발전 측면에서 본다면.
“수도권과 지방 5대 광역시의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 중 10%의 U턴을 가정하면 62만명의 귀향인구가 발생한다. 수도권에서만 44만명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전남·경북·충남·경남·전북에 각각 10만명 전후의 인구가 유입된다. 몇십만 명의 이동으로 무엇이 달라지겠냐는 얘기는 지나친 과소평가다. 지금까지 숱한 균형발전 정책이 있었지만 불과 몇만 명의 이동도 가져오지 못했다. 지방으로 공공기관 이전이 가장 활발했던 2013~16년 수도권→지방 순이동은 5만8000명에 불과했다. 균형발전의 핵심은 인구인데 정부 정책은 계속해서 사람이 아닌 지역에 초점을 맞췄다. 지방으로 옮겨갈 사람이 없으면 지역에 아무리 투자를 한다고 해도 구멍 난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베이비부머의 귀향 욕구가 정교한 정책 설계와 맞물리면 지방의 장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오영환의 지방시대] 1685만 베이비부머의 이도향촌이 청년·지방 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