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은 비료 없이도 잘 크는 데, 비료 없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것인가?
결론은 “농사를 지을 수 없다”다. 산과 들에 자라는 풀과 나무들은 천천히 자라도 된다. 그러나 비료를 안 주면 작물이 크지도 못하고 열매도 안 달린다. 농사란 작물을 가꿔서 소득을 얻는 생업이므로 비료로 수량을 올려야 하고, 질과 맛도 좋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농사에는 왜 비료를 줘야 하나?
비료 없이도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은 뿌리에서 끊임없이 분비하는 강산(H+)으로 바위와 흙을 녹여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물만큼 빨리 크지 못한다.
약 40만 년 전부터 인간은 돌아다니며 자연에서 먹이를 구했다. 한 곳에 살면서 농사를 시작한 것은 약 1만 년 전.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간은 종자를 알게 됐다.
아주 먼먼 옛날 한 여인이 들을 돌아다니며 곡식을 따서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는 발을 헛디뎌 그만 넘어졌다. 봄과 여름이 지나 그녀는 여인은 다시 들을 헤매다 낱알이 풍성하게 달린 곳을 발견했다. 정신없이 따다보니 지난해 넘어져 바구니를 쏟았던 그 자리였다. 씨를 거두는 한편 그녀는 그 자리에 좋은 낱알을 뿌려놓았다. 이것이 종자와 밭농사에 대해 인류가 최초로 눈을 뜬 대사건이라 한다.
그 후 인류는 끝임 없이 종자를 개량해 왔다. 한편, 1843년 영국에서 과린산석회를 화학적으로 만들기 시작, 1950년대 이후 질소와 칼리비료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자 육종가들은 비료를 많이 먹고 많이 생산하는 종자 육성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요즘 작물은 아무리 훌륭한 품종이라고 비료를 안 주면 오히려 야생의 것보다도 수량이 떨어진다.
사는데 돈, 뿌리는데 돈, 잘못 뿌리면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 화학비료다. 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비료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유기농이 안전한 만큼 화학비료를 준 것도 안전하다. 독이 들어 있다면 100년 이상 화학비료를 준 농산물을 먹어온 인류가 이렇게 번성할 수 있을까?
비료를 주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제대로 농사를 지으려면 비료를 안 줄 수 없다. 주긴 줘야 하지만 자연파괴를 최소한 줄여야 한다. 앞으로는 토양을 농업기술센터에서 분석해서 적당한 양을 줘야 한다. 대부분의 농부는 복합비료를 주는데, 이 비료는 단비(한 가지 성분만 들어 있는 비료)보다 1.8배나 비싸다. 토양에 축적된 성분을 더 줌으로써, 토양을 버리고, 소출을 떨어뜨리고 자연을 망친다. 득 될게 하나도 없다.
유기질비료는 물론 화학비료를 지혜롭게 쓰는 농부일수록 생산비를 줄이고, 맛과 때깔 좋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할 수 있다.(홍종운 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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