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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나의이야기

누가 아시나요

1984년 7월 13일 소인

 

 

 

 

누가 이 편지의 발신인을 아시나요?
이 찍힌 빛바랜 펀지 봉투의 주인공을 공개 수배합니다.


학사장교 1기로 임관한지 40년이 가까와 지고 있습니다. 기억의 저편에 있던 낡은 편지 봉투 하나가 타임머신을 탑니다. 먼지더미 서재에 묻혀있던 내용도 없는 빈 봉투를 보았습니다. 아마 아들을 군에 보내신 어머님이 소대장에게 보낸 편지였을 겁니다. 그 속에 담겼을 어느 소대원의 애절했던 어머님 마음을 그려 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애끓는 부모의 심정이 그려집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태평양 넘어 고국의 깊은 산하에 보냈습니다. 40년 전의 고국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습니다. 전선은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단잠을 못 이루셨을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겨울이 깊어 갈수록 머나먼 전선의 아들이 더욱 그리웠으리라 그려집니다. 이 병사의 어머님은 철없는 소대장에게 내 아들을 부탁하노니.....라고 쓰셨을 겁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눈물로 얼룩진 글자를 만드셨을 겁니다. 
 
이 편지 봉투는 특히 불효자였던 저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먼 나라로 떠나신 제 어머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늘 36년 전에 만났던 글자, 이 빛바랜 펀지 봉투속  얼굴과 333 대원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코로나사태 속에서도 큰 용기로 농업을 지키는 제자들이 조용히 조용히 그러나 강하디 강한 전율로 제게 다가 오고 있습니다. 그 때 젊음과 조국이란 이름으로 만났던 그리운 사내들,  지금 농업과 극복의 모습으로 만나는 젊음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 와이프가 끓여 준 한 그릇 호박국을 먹었으며 동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과 무능도 이야기 했습니다. 또한 그 시절, 이가 시린 겨울밤 뱃치카에서 함께 했던 잊지 못할 추억도 이야기했습니다. 면을 끓이던 그을린 얼굴의 조병장과 한농대 1기들을 만나면 육자배기 탁주 한잔으로 그 빚을 갚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다시 돌아눕지 못하는 흐름 위에 떠나간 푸른 시절을 그려봅니다. 그 애증의 강 속으로 던져졌던 시절을 추수리어 봅니다. 별 헤는 마음으로 동지들과 제자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지금 불러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 시절을 아파했기에 지금 그 모습을 그릴 수 있어서 더욱 행복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극복하는 젊음들을 보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행복을 가르쳐준 편지 봉투의 주인공을 알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