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농사’라는, 여느 또래와는 다른 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즐겨 찾는 평범한 젊은이기도 하다. 하루는 지인의 추천으로 넷플릭스에서 라는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됐다. 다큐의 주제는 기후변화 대응방법이었다. 지난여름, 이상기후의 무서움을 몸소 겪었기에 관심이 갔다.
다큐는 제목처럼 ‘땅’ 그 자체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의 주범이 돼버린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땅에 가둘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은 미생물이 존재하는 건강한 땅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를 잡아둬야 할 건강한 땅이 농사를 짓기 위해 해왔던 당연한 일들로 병들고 있었다.
경운·농약·비료·제초…. 작물을 잘 길러내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행위가 문제였다. 농사에 대한 경력과 배움이 부족했던 나에게도 ‘경운기로 밭을 열심히 갈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 ‘비료를 잘 줘야 작물이 잘 자란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이 흙을 병들게 해 탄소 저장능력이 감소했고, 이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발산을 늘려 기후변화를 가속화했다.
문득 몇년 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텃밭 프로그램에 강사로 나가 텃밭에 농사를 지으려면 흙을 한번 뒤집어줘야 한다고 목청껏 말했던 내 모습과 이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생각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잘못된 농사 상식은 식물과 땅은 물론 우리 삶에도 부작용을 낳았다. 내겐 ‘상식’에 의문을 가질 경험도 배경지식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화까지 났다. 우연히 본 영상 덕분에 지금이라도 잘못된 상식을 고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다큐에 나온 ‘재생농업(Regenerative Farming)’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재생농업은 경운기를 쓰지 않는 대신 피복작물을 심는 ‘무경운농법’을 실천한다. 이를 통해 땅을 재생시켜 화학비료와 농약·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도 작물을 기를 수 있으며 지구온난화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부모님과 운영하는 농장에서 “지구를 위해 재생농업을 하자”고 했다가는 어디서 겉멋이 들었냐는 꾸중과 함께 당장의 생계를 포기하자는 거냐고 혼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개인의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체를 위해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작은 시작을 해보려 한다. 영세한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기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간은 아주 작지만, 그곳만이라도 지구를 위해 양보하며 농사를 지어볼 예정이다.
또 다른 어려운 점도 있다. 재생농업을 실천해보고 싶어도 국내에는 연구 결과나 정보가 드물다. 해외 사이트에서 정보를 찾아도 우리나라 토양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환경적 차이가 있다. 정부 차원에서 관련 연구·교육을 진행해 국내 실정에 맞는 적용법을 안내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혼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기업과 소비자도 재생농업의 가치를 알고 생산과 소비의 기준으로 삼아줬으면 한다. 여기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토양을 재생하며 농사를 짓는 청년농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금의 청년농들이 현재 우리 부모님 나이가 됐을 때 자식 세대에게 이상기후 걱정 없는 환경을 물려줄 수 있게끔 말이다.
이보현 (바이그리너리 대표) 농민신문 기고 인용
'農 > 토양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양검정결과서 읽기 (0) | 2021.02.11 |
---|---|
농업의 과학을 이끄는 이온 (0) | 2021.01.12 |
시설재배지 토양 개량 (0) | 2020.05.01 |
토양검정서 분석 (0) | 2020.04.24 |
원소 및 화합물 기호 읽기 (0) | 2020.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