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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농림축창고

빼앗긴 능금의 도시

 

 

자료=통계청·농촌진흥청 등, 그래픽=김현국

 

‘능금 꽃 향기로운 내 고향 땅은/ 팔공산 바라보는 해 뜨는 거리/ 그대와 나 여기서 꿈을 꾸었네.’

패티김이 노래한 ‘능금 꽃 피는 고향’은 능금의 도시 대구에 대한 찬가(讚歌)다. 전국 최고령인 1930년생 홍옥 사과나무도 대구에 있다. 그러나 이제 대구에서 능금 꽃향기 맡기는 쉽지 않다. 지난 100년간 국내 평균 기온이 1.7도가량 상승하면서, 사과 생육 한계선이 북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제 대구에 남은 사과 재배지는 해발 고도 평균 350m인 팔공산 자락의 평광동 일대에 불과하다. 사과는 생육기 평균 기온 15~18도의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 일교차가 커야 열매가 잘 자란다.

대구 시민이 사과나무 보기가 어려워졌다면, 서울 시민은 예년보다 올해 더 빨리 봄을 맞이했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에 지정된 왕벚나무는 1922년 관찰 이래 가장 이르게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올해 2월 평균 기온(2.7도)이 평년(0.4도)보다 높고, 일조시간(181시간)은 평년(163.3시간)보다 많아지면서다. 일각에서는 식목일을 4월이 아닌 3월로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남 귤을 강북에 옮겨 심었더니 탱자가 됐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는 이제 옛말이다. 1980년대만 해도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과 재배지가 90년 후반 이미 경북 지역으로 올라갔고, 최근에는 강원 산간으로까지 확산했다.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하던 강원도에는 ‘고랭지 사과’가 자란다. 제주 특산품인 ‘한라봉’도 내륙에 둥지를 틀었다. 2021년 달라진 전국 과일 지도를 그려본다.

 

◇강원 양구에서 사과 자란다

두타연사과농원을 운영하는 경두현(60)씨는 우리나라 최북단인 강원도 양구에서 10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경씨는 “양구로 귀농을 결심하면서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남쪽이 점차 더워지면서 사과가 강원도로 올라올 것이라 생각했다”며 “양구는 여름에도 많이 덥지 않고, 일교차가 커서 사과 농사짓기에 딱 알맞다”고 했다.

처음엔 농산물 공판장에서도 경북 사과에 밀려 푸대접을 받았다. 몇 년 사이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판장에서도 강원도 사과를 먼저 찾고, 시세도 다른 지역보다 높게 쳐준다. 경씨는 “양구 사과는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강원도 기후 덕에 아삭하고 달다”며 “일부러 양구 사과만 찾는 소비자도 많아졌다”고 했다.

1980년대만 해도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사과 재배지는 90년 후반 경북 지역으로 올라갔다. 현재 사과의 최대 주산지는 경북 청송, 영주 등이지만 통계청은 2030년에는 주산지가 강원도 양구, 정선 일대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이 2018년 발간한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에 따르면 2060년대에는 경북에서 아예 사과 재배가 어려워지며, 2090년에는 전국에 사과 재배 가능지가 급감해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해진다.

대구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이제 대구에서는 사과를 재배하는 곳이 팔공산 인근 평광동에 있는 100여 농가밖에 남지 않았다”며 “사과가 사라진 자리는 도시화돼 아예 과수원이 사라졌거나, 일부가 체리·귤 농사 등을 짓고 있다”고 했다.

 

◇‘신라봉’을 아시나요

북상하는 건 사과뿐 아니다. ‘신라봉’을 들어보셨는지. 경북 경주에는 7곳(2020년 기준)의 농가가 한라봉을 재배하고 있다. 경주에서 나오는 한라봉이 바로 ‘신라봉’이다. 지구 온난화로 한라봉 등 만감류 재배 가능지가 북상하면서 생긴 일이다. 전남 완도 등지에서도 한라봉을 재배한다.

많지는 않지만,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도 감귤 재배를 하고 있다. 통계청은 2090년에는 강원도를 포함한 전국 대부분의 해안 지역에서 감귤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제주도의 경우 기온이 낮은 중간산 일대 정도로 재배지가 쪼그라든다. 복숭아 산지도 경북 청도에서 강원도 원주와 춘천 일대까지 북상했다.

사과·귤·복숭아 등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사랑받던 과일들이 북상하고 난 자리에는 아열대 과일들이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아열대 과일 재배 면적은 2017년 109.4㏊에서 2019년 170㏊로 해마다 늘고 있다. 우리나라 기후에서 잘 자랄 뿐 아니라, 최근 증가하는 다문화 가정 및 상주 외국인 수요를 노린 것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재배되는 과일이 ‘망고’다. 제주도 ‘애플 망고’가 유명하지만, 전남 영광의 ‘홍망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홍망고는 홍콩에 수출되는 성과도 냈다. 경남 진주와 밀양에서는 열대 과일인 ‘파파야’가 자라고, 경북 김천·전북 김제에서는 패션푸르트를 재배한다. 전남 고흥과 강진에서는 남부 유럽 국가인 그리스에서 볼 수 있었던 올리브를 키운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발간한 ‘아열대 작물의 국내 재배 동향 및 주산지 분석’ 연구에서 “아열대 작물의 보급과 확대는 앞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농업 부문의 선제 대응과 농가 신소득 창출 측면에서 중요하다”며 “지역별 생육 여건을 고려한 맞춤형 재배 기술 개발에 연구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조선일보 남정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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