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rum-미생물은 어디에 살고 있나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
입과 장속에는 수 조마리의 미생물이 서식하며,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내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비만과 날씬함이 결정되고, 면역기능, 치매, 우울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곳까지 지구의 모든 환경 속에 살아간다. 펄펄 끓는 온천수, 산소와 빛이 없는 수 천 미터의 바닷속, 포화 소금 농도인 사해, 얼음 속, 바위 속에서도 생육한다. 심지어 동식물의 체내·외에서도 공생 또는 기생하면서 숙주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도움과 위해를 준다.
미생물은 자기의 생육환경에 맞는 곳에서만 번식한다. 영양성분이 많고 습한 곳에는 많은 수의 미생물 종류가 있고, 반대로 먹이 성분이 빈약하고 환경조건이 나쁜 곳에는 적은 수의 미생물만 자란다. 특히 유기물질이 많고 사체가 부패하는 곳에 가장 많은 미생물이 발견된다. 냄새는 지독하지만 지구의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현장이다.
동식물, 생활 폐기물의 분해는 전적으로 미생물에 의존한다. 지구를 깨끗하게 하고 물질순환의 최첨병이 미생물인 셈이다. 미생물이 아니라면 지구는 동식물의 잔해와 폐기물로 뒤덮여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보통은 토양 속에 미생물이 많다. 거름기가 많은 흙 1g에는 수 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아간다. 어떤 종류가 얼마나 존재하느냐에 따라 비옥도, 땅심과도 관계가 있다. 미생물은 토양 속 잔류농약 등 유해성분을 없애고, 물질(거름 성분)을 분해하여 식물에 영양성분으로 공급한다. 또 병충해를 억제하는 방어 역할도 있다. 질소고정균은 공기 속 질소를 고정하여 식물에게 제공한다.
소금 농도가 3%쯤 되는 바닷속에도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간다. 미생물은 바다로 흘러들어간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조류(藻類)는 산소를 만들어 바닷속 동식물에 공급한다. 또 녹조와 홍조는 인간이 버린 물질에 과도하게 번식하여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역할도 있다.
동물의 체내에도 많은 미생물이 공생 또는 기생하며 거주한다. 입과 장속에는 수 조마리의 미생물이 서식하며,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내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비만과 날씬함이 결정되고, 면역기능, 치매, 우울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건강한 사람의 똥을 이식하는 대변이식클리닉까지 있는 걸 보면 미생물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장내미생물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이라 하고 최근에 가장 핫한 연구과제로 떠올랐다. 유산균이 이러한 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둘러대며 과도하게 예찬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동물사회와 마찬가지로 미생물도 같은 장소에 뒤섞여 살면서 서로 좋은 환경과 먹이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다툰다. 이를 길항(拮抗)이라 하는데 서로 상대를 견제한다는 뜻이다. 몇 종류의 미생물이 같이 있으면 득세하는 놈과 치이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주위에 있는 껄끄러운 상대를 퇴치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상대를 항생제로 독살시키고 환경을 산성으로 만들어 못살게 하며, 재빨리 먹이를 가로 채 굶어죽게 하는 등 그 양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반면, 서로 상부상조하며 의좋게 공생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사회와 판박이다. 특히 우리 대장 속에는 수 백 종류, 수 조마리가 서로 길항하고 견제하며 일정한 균총(菌叢)을 형성하면서 살아간다. 평소에는 평온하다가 몸에 이상한 음식이 들어오거나 환경이 나빠지면 균형이 깨져 치고받는 싸움이 벌어진다. 그 결과 가스가 차고 설사, 통증이 유발된다. 공생관계는 미생물끼리뿐만 아니라 식물-미생물, 동물-미생물 간에도 존재한다. 몇 예로 콩과식물과 뿌리혹박테리아, 초식동물의 위 속 루멘 박테리아, 발광(發光) 어류 등이 있지만 그 양상은 아주 다양하다. 신기해 좀 자세히 설명하자
뿌리혹박테리아 ; 식물의 성장에는 질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통 식물은 질소비료를 공급해 주지만, 콩과식물의 경우는 뿌리혹에 공생하는 미생물이 공기 속 질소를 고정하여 이를 제공한다. 그래서 콩과식물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루멘 박테리아 ; 육식동물은 셀룰로오스를 분해하지 못한다. 초식동물이 가능한 것은 위 속에 공생하는 미생물 때문이다. 이를 루멘 박테리아라 한다. 숙주는 미생물이 섬유소를 분해해 나오는 영양성분을 얻어먹고, 미생물에 삶의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미생물도 서로 언어로 소통한다면 믿겠는가. 화학 언어를 통해서다. 병원균이 숙주에 감염됐을 경우 숙주(적)에 대적할 정도의 숫자가 아니면 공격을 개시하지 않는다. 세력이 불어나고 화력이 갖춰지면 신호물질로 총동원령을 내려 일시에 공격한다. 섣부르게 덤벼 숙주의 면역체계에 박살나지 않기 위해서다. 이를 어려운 말로 쿼럼센싱(Quorum sensing)이라 한다.
미생물은 지구상 모든 공간에 존재하지만 어떤 장소에 어떤 종류의 미생물이 얼마만큼 있는지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한곳에 수많은 종류가 섞여있기도 하지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관찰해 숫자로 세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생물의 종류를 알고 숫자를 세려면 이를 배양하고 순수하게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물이라 이 작업이 만만치가 않다.
[출처: 부산일보]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81519544914077
Quorum(쿼럼)은 한글로 ‘정족수’로, 합의체가 의사를 진행시키거나 의결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인원수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일이 발생하였을 때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진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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