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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우시인시선

빈집의 속내와 흘러간 시간

빈집

 

장지성

 

고향 집 먹감나무
속잎 틔운
봄 햇살이

바람결 옹알이를
다독이다
같이 잠든

앞마당
토종닭 몇 마리
적막 쪼고 있는가.

 

 

사람이 살다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향의 빈집에는 손때 묻은 세간살이가 그대로 남아있다. 날마다 쓸고 닦아 햇빛에 반짝이던 툇마루에 먼지가 쌓이고, 특별히 허락하지 않아도 바람과 햇살은 살며시 들어왔다가 말없이 빠져나간다. 담장 밖 골목길에 사람의 기척이 날 때마다 혹시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지 숨죽여 지켜보는 건 앞마당의 적막뿐이다.

주인과 함께 호흡하던 먹감나무 속잎도 따스한 봄 햇살을 받아 싹을 틔우는 봄이다. 이 가지 저 가지에서 새싹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미는 시기이지만, 인적없는 빈집의 풍경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보드라운 먹감나무 속잎은 바람이 불면 아이가 옹알이하다 이내 잠이 들듯 미세하게 흔들리다 잠잠해지곤 한다. 화자의 눈은 먹감나무 속잎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관찰한다. 빈집에서 ‘바람결’과 ‘옹알이’를 읽어내는 시인의 언어는 그물망이 섬세하고 촉촉하다.

 

아직 사람 냄새가 가시지 않은 빈집에는 주인의 존재와 부재를 생각하지 못하는 토종닭들이 앞마당을 서성이다가 봄 햇살에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먹감나무 속잎과 함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양이다. 앞마당에도 적막이 찾아든다. 먹감나무 속잎과 앞마당 토종닭이 함께 잠든 뒤에야 비로소 빈집의 적막을 실감한다.

 

빈집의 속내와 흘러간 시간과 세세한 사연을 풀어놓는 것은 허망하다. 누군가 살다 떠난 그 집의 이야기는 실꾸리에서 실이 풀어지듯 언젠가는 풀려나와 다시 우화로 엮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봄 햇살에 싹을 틔우는 먹감나무 속잎과 바람결에 옹알이하듯 함께 조는 앞마당 토종닭을 보여줄 뿐이다. 그곳에 드리우는 적막은 외롭고 고요하다. 그 적막에 빗금이 가듯 금방이라도 누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 그동안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물을 것 같다. 빈집을 보는 시인의 눈길이 다시 적요롭다.

김삼환(시조시인)/ 중앙일보

 

풍경 수채화 (절판, 2010년, 미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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