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원소 감소량 비교해 ‘다빈치 작품’ 연대 증명했죠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입력 2023.06.20.
위대한 과학자이자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21세기에 갑자기 발견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림 발견과 동시에 수백억원 넘는 가격을 호가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인류 문화의 귀중한 자산을 발견했다는 의의가 있을 겁니다. 실제로 2011년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빈치의 작품이 발견됐습니다. 1495년 밀라노 공작의 딸 비앙카 스포르차를 그린 ‘아름다운 공주(La bella principessa)’입니다. 이전까지는 1800년대에 그려진 작자 미상 독일풍 초상화로 알려져 있었죠. 다빈치 마니아였던 수집가 피터 실버먼이 그림을 보고 다빈치의 작품일 수 있다는 의심을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원작자가 밝혀졌어요. 특히 ‘탄소 동위원소’ 덕분에 이 작품이 다빈치 시대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죠.
양성자 수는 같고 중성자 수는 다른 동위원소
모든 물질은 쪼개면 아주 작은 입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질의 특성을 갖는 가장 작은 입자는 분자입니다. 분자는 원자가 모여 만들어집니다. 예를 들어 포도당은 탄소 원자 6개, 수소 원자 12개, 산소 원자 6개로 만들어지는 분자입니다. 원소는 이 단일 원자 집단의 종류를 말합니다. 자연적으로 발견되는 원소는 94종으로 과학자들이 실험으로 만들어낸 원소까지 합치면 현재 118종이 알려져 있죠.
같은 원소라고 다 같지는 않습니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돼 있고, 원자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뉩니다. 원자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양성자입니다. 양성자가 1개면 수소, 2개면 헬륨, 3개면 리튬이 됩니다. 탄소는 양성자가 6개, 질소는 7개, 산소는 8개입니다.
평균적으로 양성자 개수와 중성자 개수는 같은 경향이 있지만, 항상 그렇진 않습니다. 이처럼 양성자 개수는 같지만 중성자 개수가 다른 원소를 ‘동위원소’라고 부릅니다. 수소는 양성자 1개(수소·경수소)가 기본 형태지만, 중성자 1개가 더해진 수소-2(중수소)와 중성자 2개가 더해진 수소-3(삼중수소)가 동위원소입니다.
동위원소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지구가 생겼던 당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어떤 동위원소는 우주가 탄생할 당시 만들어지기도 했죠. 최근에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반감기마다 절반씩 줄어드는 불안정 동위원소
동위원소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안정 동위원소와 상태가 불안정해 안정적인 원소로 변하려 하는 불안정 동위원소가 있습니다. 같은 수소 동위원소라도 상태가 다르죠. 수소와 중수소는 안정 동위원소지만 삼중수소는 불안정 동위원소입니다.
원자 속 원자핵을 이루는 입자들에는 두 가지 힘이 작용합니다. 입자들끼리 서로 당기는 ‘강한 핵력’과 양성자가 갖는 전기적 반발력이죠. 이름에서 보여주듯, 양성자는 전기적으로 양의 성질을 갖습니다. 같은 양극을 가진 입자가 모여 있기에 양성자들은 서로 밀어내려는 힘이 강합니다. 이 때문에 양성자 수가 많거나 양성자와 중성자 개수의 불균형이 크면 불안정 동위원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탄소는 탄소-12와 13은 안정, 탄소-14는 불안정 동위원소입니다.
불안정 동위원소는 불균형을 만드는 입자와 에너지를 내보내며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이때 불안정 동위원소가 내보내는 에너지는 방사 형태로 뿜어져 나와 ‘방사선’이라고 부릅니다. 불안정 동위원소가 안정한 원소로 되는 과정은 조금 특별합니다. 불안정 동위원소는 원소 종류에 따른 ‘반감기(半減期)’를 겪으며 안정적으로 변합니다. 반감기는 단어 그대로 ‘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종류가 같다면 불안정 동위원소 원자 10개가 5로 줄어드는 시간과 100개가 50개로 줄어드는 시간이 같습니다. 대신 원소 종류에 따라 반감기가 모두 다르지요. 수소-3은 12.3년, 탄소-14는 5730년입니다. 핵연료로 많이 사용하는 우라늄-235는 약 7억년이죠.
탄소 동위원소 이용한 연대 측정법
원소마다 반감기가 정해져 있다는 특징은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탄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이 대표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름다운 공주’는 발견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21세기에 다빈치의 작품이 새로 발견될 리 없다’는 의견이 많았죠. 심지어 ‘아름다운 공주’를 자신이 그렸다는 위작 화가도 등장했죠. 하지만 진짜 다빈치의 작품으로 결론 나면 그 가치가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도 분명했습니다. 실제로 작자 미상으로 알려졌을 때는 최대 2만1850달러(약 2800만원)에 거래됐지만, 다빈치의 그림으로 판명되자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에 구매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논란을 모두 잠재운 것은 탄소 동위원소를 활용한 연대 측정법이었습니다. 탄소는 생물과 관련됐다면 어디에나 있는 원소입니다. 탄소 동위원소 중 가장 많은 것은 12, 13, 14입니다. 생물이 살아서 움직일 때는 물질이 계속 순환하기 때문에 셋의 비율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예를 들어 불안정 동위원소인 탄소-14가 붕괴해 사라지더라도 호흡이나 영양 섭취 등으로 보충이 되는 겁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일정하던 이 비율은 생물이 죽으면 탄소-14의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남아있는 탄소-12, 13, 14의 비율과 탄소-14의 반감기가 5730년이라는 사실을 이용하면 이 생물이 언제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료가 아주 조금만 있어도 분석할 수 있죠. 그림에서는 액자 테두리나 그림을 그린 캔버스 천이 분석 대상이 됩니다. 특히 캔버스 천은 중요한 생체 시료입니다. 캔버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원료가 대마나 아마 같은 천연 섬유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법은 고고학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반감기가 5730년으로 긴 만큼 인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아주 적절한 동위원소입니다. 겨우 수백년 전 미술품보다 더 정확하게 연대를 측정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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