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천-이주화씨 부부는 귀농 이후 현재까지 점촌 집 판돈에 장비점과 스낵코너 정리한 돈 대부분을 투자했다. 그런데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참 더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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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랜만에 개집에 묶인 줄을 풀어주자 애견이 너무도 좋아 했다. 그러나 닭장으로 달겨 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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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요, 네 번은 죽었다 깨어나야 한다고 하잖아요. 첫해는 낭만이 넘쳐 그럭저럭 지내지요. 두 번째 해부터는 달라요. 실망하고, 절망하고. 4년쯤 되면 앞마당이나 밭고랑에 나뒹구는 농약병을 볼 때마다 저걸 마셔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이 든답니다. 그 과정을 넘겨야 농사꾼이 되는 것 같아요. 진짜 농부가 되려면 땅과 10년은 씨름해야 한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규천씨는 얘기를 나누다가도 두 차례나 트럭을 몰고 어디론가 나갔다 왔다. 농사일 보러 나갔나 했더니 아니었다. 그는 적성2리 이장이었다. 쉰이 넘은 나이지만 동네에서는 젊은 축에 속한다고 한다.
“저 사람, 아들 보다 체격이 좋았어요. 그런데 지난해 큰 병 한 번 앓고 나더니 저렇게 왜소해졌답니다.”
규천씨는 지난해 췌장염 때문에 3주간이나 병원에서 지내야했다.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돼 병원을 찾았더니 입원 치료해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내 이주화씨는 남편을 힐끗 쳐다보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보다”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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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물창고라 자랑하는 석빙고. 규천씨가 오미자술을 국자로 퍼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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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종이가 또 사고를 쳤네요.”
오늘은 식당 주방시설을 옮기는 공사를 하는 날. 설거지를 마치고 뒷마당에 나온 아내는 부서진 방충망과 아들 억종씨(25)를 번갈아 쳐다보며 “방충망 부수는 데 선수라니까”라며 혀를 끌끌 찬다. 집안에서 바깥으로 나올 때 방충망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그냥 밀고 나오곤 한다는 것.
억종은 어려서부터 고향을 떠나 생활했다. 고등학교는 안동생명과학고(예전 안동농고)를 다녔고, 여주에서 농업전문대학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온 것은 대학을 마치고 산업기능요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부터였다. 한국농업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만종(20)은 어제 일본에 갔다. 농촌현장실습 차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청소년기에 이미 앞날을 설계했다.
“농사요? 나이 드신 분들이 몸으로 때우면서 지으려니까 더 힘든 거예요. 땅뙈기도 너무 좁아 수익성이 없는 곳도 많고요. 요즘은 웬만한 일은 기계로 다 하기 때문에 할 만해요. 겨울이면 한두 달 휴가도 가져요. 친구들이 오히려 저를 부러워한답니다. 겨울 농한기 내내 스키장에서 강습하면서 지냈으니까요.”
그래도 아들 억종은 아버지의 생각과 달리 결혼하면 동네터농원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점촌시내에서 출퇴근하면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란다.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젠가 더 깊은 산중에 어택캠프 지을 터”
규천씨 집에는 석빙고도 있다. 식당 뒤편, 돌을 쌓아 만든 자연 냉장고에는 규천씨 내외가 생산해낸 농산물의 정수가 보관되어 있다. 오미자 엑기스와 술, 오미자술, 매실술, 더덕술, 감식초…. 고추장독 된장독도 보관되어 있다. 규천씨는 오미자술과 매실술 맛을 비교해보라며 국자로 퍼주곤 “농업이 제1차 산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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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재래식 화장실. 김씨는 몸에서 나온 것은 무엇이든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변을 발효시켜 퇴비로 사용하고 있다.(우)규천씨 집 허산정사(虛山精舍)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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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빙고는 저희 집 보물창고예요. 농촌에서 들어오려면 먹고 살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하지만, 재력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도시 사이클은 대개 한 달이지만 시골은 1년이에요. 씨를 뿌린 뒤 수확해서 돈으로 만들어내려면 1년이 걸린답니다. 그 사이 돈이 있어야 차에 기름 넣고 돌아다닐 거 아니에요. 농업이 1차산업에 머물러서는 어림도 없어요. 적어도 6차 산업은 되어야 하죠. 농사니까 당연히 1차산업이지요,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하자니 2차산업이지요. 거기다 손님도 맞아야 하니 3차산업도 해야 하는 거죠. 이 모두 합해지니까 6차산업이 되는 거예요. 그래야 농부도 먹고 살 수 있는 거예요.”
김규천씨는 자칭 ‘6차산업’에 문화도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집 뒤편에 세운 오미자가공연구소 건물은 기초공사를 단단히 했다. 5층 건물을 올려도 끄떡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제가 장비 많이 가지고 있는 거 아시죠. 아들방인 부작실(不作室)에 내놓은 것은 일부예요. 아직 풀지 못한 박스에 책이고 등산장비가 많이 있어요. 산악도서관이든 박물관이든 산중에 있으면 더욱 잘 어울리지 않겠어요?”
그는 국내에서 출간된 산서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다. 고산자의 대동여지도가 벽에 걸려 있는 아들 방에만 해도 70년대 초 생산된 국산 아이젠과 피켈, 하켄 등 눈길을 끄는 게 많다. 이런 장비와 책들을 오미자가공연구소에 2층을 올린 뒤 전시하고픈 게 또 하나의 꿈이다. 그는 동네터농원에서 더 높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오염 안 된 곳은 산밖에 없어요. 산에선 먹을 것도 많지만 할 일도 많아요. 여긴 베이스캠프예요. 언젠가는 더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어택캠프를 지어야겠지요.”
김규천씨와 이주화씨 부부는 물론이고 아들 억종씨는 새 봄을 맞아 무척 바빴다. 새벽부터 밤늦도록 잠시도 앉아 쉴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생기가 넘쳤다. 이들은 잿빛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는 희망 넘치는 2008년 새 봄을 누리고 있었다.
동네터농원 주소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2리 638번지. 전화 054-531-2506, 017-531-8440, 017-808-8440(아들).
출처:월간산 글 한필석 차장대우 pshan@chosun.com, 사진 정정현 부장 rockar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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