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터농원 김규천 - 이주화씨의 따스한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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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歸農)-.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나이 들면 한적한 산골로 들어가 살고픈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잿빛 콘크리트 문명에 질린 것일까. 눈길 한번 옆으로 돌리는 것도 불편할 만큼 각박한 삶을 살아온 까닭일까. 그러나 시골생활이란 도시에서 그리던 낭만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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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동산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짓는 김규천-이주화씨 부부. 규천씨는“동네터농원이 백두대간 지맥이 끝나는 자리에 위치한 명당”이라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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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이기를 통해 누렸던 모든 편리함을 떨쳐내야 하고, 닭이 홰를 치는 이른 새벽부터 해가 서산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펼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여기에 소득이 일정치 못하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더해져 끝내 자포자기하고마는 이들도 많다.
문경시 동로면 적성2리, 백두대간 황장산 남쪽 자락에 동네터농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김규천(金圭川·51)-이주화(李周和·51) 부부 역시 도시의 안락함 대신 땅과 함께 고된 삶을 택한 귀농 부부다. 이 부부는 점촌시내에서 남들에게 살만하다는 얘기를 들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 부부는 기꺼이 도시생활을 버리고 2004년 11월11일 고향으로 모든 것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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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된 도시생활 버리고 아들과 함께 귀농
“자요, 잡니까?”
해가 막 떨어진 직후 김규천씨의 집을 찾아 들어섰을 때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대신 사랑방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달아오르고 있었다. 모처럼 군불 땐 구들장 위에 눕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 지났을까, 주인 내외가 점촌시내에서 돌아왔건만 객인 기자는 일어나려 애쓰지 않았다.
고된 산행을 마치고 뒤풀이 술에 몸이 늘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모처럼 따뜻한 구들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나니 일어나기 싫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작실(不作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의미의 방에 누웠으니 일어나기 싫은 것도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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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천-이주화씨 부부는 “힘들긴 해도 도시생활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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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천씨와 오랜만에 대면한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새벽녘 닭울음 소리에 눈이 떠진 후 희뿌연 문밖으로 나서자 집 안마당은 고요 그 자체였다. 집 곳곳에 굵직하게 자란 산수유 나뭇가지에는 서리가 하얗게 서려 있는데도 노란 꽃은 봄기운을 듬뿍 담은 채 활짝 피어 있었다.
“걱정이네요. 날씨가 추우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데 말이에요.”
벌써 집 가까이 사과나무 과수원에 비료를 주고 돌아온 김규천씨는 “산수유가 꽃을 피우는 걸 보니 봄이 훌쩍 다가온 것 같다”면서도 한숨을 내쉰다. 개화기에 날씨가 추우면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농부의 마음은 이미 가을 수확에 가 있었다.
고향땅에서 오미자, 사과, 고추 농사 외에 더덕도 심고 있는 김규천씨는 2000년 초까지 정년을 보장받은 문경시청 공무원이었다. 아내 이주화씨는 또한 점촌시내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장사가 잘 되는 등산장비점을 했고, 상주시내에서 스낵코너도 했다. 그런데 부부는 편한 생활을 아낌없이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살림집 뒤편에 있는 식당에서 아침밥을 준비하는 아내 이주화씨는 4년 전 점촌시내 장비점에서 볼 때에 비해 얼굴이 좀 탄 상태였지만 얼굴색은 훨씬 밝았다. 이씨는 “애 아빠가 도시에서도 호강시켜주지 않았는데 시골 산다고 더 나빠질 게 뭐 있겠냐”는 생각에 남편의 낙향에 동조했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지만 그녀 역시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남들은 돈 벌어 좋겠다 했지만 저는 힘들었어요. 손님 들어올 때마다 쪼르륵 달려나가 물건에 대해 설명해주어야 했으니까요.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더욱 힘들어졌어요.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면 저를 불편해했어요. 그래서 더 오래 하다가는 안 되겠다 싶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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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입구를 장식한 목장승만큼 환한 웃음과 함께 농촌에서 살고 있는 김규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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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한 지붕 아래 살아온 부부답게 마음이 맞았다. 급히 서두르지는 않았다. 차근차근 움직였다. 2000년 남편 먼저 직장을 그만두었다. 82년 문경시 영순면사무소에서 시작, 문경시청 문화관광과를 마지막으로 20년 가까이 해온 공직생활을 청산한 것이다.
이후 규천씨가 점촌집에서 동로 시골집을 오가며 귀농 준비를 하는 사이 아내 이주화씨는 점촌시내에서 장비점을 운영하거나 상주시내에서 스낵코너를 하면서 돈벌이를 했다. 점촌 집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완전 이주한 것은 3년 반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인 2004년 11월11일이었다.
“10년, 20년 농사지은 사람도 떠나가는 판에 시골 살겠다 들어왔으니 정상은 아니죠. 문 앞에 지붕 없는 초가삼간과 처음에는 지금 사는 집 두 채밖에 없었어요. 집도 동네 할머니에게 맡겨놓았더니 엉망이었죠. 그런 집을 지금처럼 수리하고, 또 식당에 오미자가공연구소까지 짓게 된 거랍니다. 아직 멀었어요. 오미자를 비롯해 우리 농산물 전시장 겸 시음장도 지어야 하고….”
동로면 일대는 10여 년 전부터 오미자를 재배해왔다. 평균 300m가 넘고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어서 오미자를 재배하기에 적지라고 한다. 사과밭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김규천씨 역시 오미자와 사과를 주 산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오미자 맛보러 온 이들에게 밥을 해주다가 아내는 아예 식당을 차렸다. 사전 예약 손님에 한해 운영하기에 특별한 허가 없이 해도 되지만 정상적으로 하기 위해 식당허가까지 냈다.
“적성리 주민 여러분~, 머리 깎으실 분은 오후 3시까지 마을회관 앞으로 모이세요. 도시 이발소에서 봉사 나온답니다.”
아침부터 마을회관 확성기에서는 주민들에게 알리는 방송이 퍼져 나왔다. 내용을 듣고 나니 이곳이 정말 촌이구나 싶어졌다. 규천씨 가족과 함께 배추국에 밥 한 그룻씩 비운 뒤 오미자가공연구실부터 둘러보았다. 집 뒤편에 위치한 연구실은 단층건물이지만 기초공사가 무척 단단해 보였다. 김규천씨는 TV도 보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지만 연구실은 첨단시설로 꾸몄다. 급속냉동시설과 냉동시설 등이 갖춰 있는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책이 꽉 차 있는 방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점촌에서 이사온 지 3년만인 지난해 가을 처음 풀었어요. 저쪽 책꽂이에는 전부 산 관련 책들이에요.”
규천씨는 문경뿐 아니라 경북에서 이름난 산꾼이다. 문경시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뒤인 84년부터 산에 미쳐 문경뿐 아니라 전국 산을 찾아다녔다.
“백두대간 구간종주는 저희 산악회가 제일 먼저 시작했을 거예요. 주말이면 집에 있는 적이 거의 없었어요. 괜찮다는 소문만 들리면 찾아다녔으니까요. 그렇게 7, 8년 쏴 다니다 보니 고향 산만한 산이 없다 싶더군요. 그래서 문경 산만 다니고 있답니다. 회원들과 함께 무거운 정상석을 올린 산만 해도 11개나 되요. 샘도 여섯 개나 만들었고요. 대미산 눈물샘 이름은 제가 지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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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농사꾼 되려면 땅과 10년은 싸워야”
규천씨는 향토사뿐 아니라 동호인들과 함께 전시회를 네 차례나 가졌을 만큼 산사진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재직시인 96년에 펴낸 <문경명산>은 13쇄나 찍어냈다.
“과장 달고 퇴직하면 뭐해요. 결국 남는 게 없는 걸. 힘들긴 해도 그래도 내가 나은 것 같아요. 제게는 이렇게 넓은 땅이 있잖아요. 아무튼 고향땅으로 모든 것을 옮길 때는 아예 산에 들어가 살겠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점촌 살 때처럼 산에 다닐 시간이 없어요. 봄에 나물 뜯으러, 가을에 버섯 따러 다니는 게 산행의 전부인 것 같아요. 가끔 시청에서 외지 분들 좀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나서는 게 산행이라면 산행일 거고요.”
뒤뜰 널찍한 밭에는 더덕, 산나물과 같은 작물을 심었고, 한쪽에는 닭과 토종흑돼지도 키우고 있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강아지는 천방지축 나다니고 있었지만, 커다란 개 3마리는 줄에 묶여 감옥살이 신세로 지내고 있었다.
“저 놈들 목줄 풀어놓으면 닭장으로 달려가 닭을 잡아먹어요. 누굴 해칠 개가 아닌데 손님 상에 올리느라 닭을 잡은 뒤 처치곤란인 내장을 몇 번 줬더니 성질이 바뀐 것 같아요. 어, 그런데 밭에 싹이 올라오네. 여보! 이리 좀 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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