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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한국인칼럼

달래 마늘의 향기 ②

달래 마늘의 향기 ②

 

 

 중국 사람은 네 다리 달린 것이면 책상만 빼놓고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이파리와 줄기 그리고 뿌리가 달려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나물로 무쳐 먹을 수 있는 요리사다.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제상에 오르면 뿌리 나물은 과거를 나타내고 줄기 나물은 현세, 이파리 나물은 내세의 손자들 세상을 뜻하는 삼세(三世)의 의미가 된다.

서양에서는 독초로 분류되는 고사리까지도 한국에 오면 명품 산나물이 되고, 콩도 시루에 물을 주어 키우면 훌륭한 콩나물이 된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나물’ 자가 붙은 낱말을 찾아보면 무려 273개나 등장한다. 그중에는 못 먹는 독초도 섞여 있지만 이만하면 우리를 ‘나물 민족’이라고 해도 시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과 들에서 캐 오는 나물들은 사람이 가꾼 재배 식물이 아니다. 야생의 자연 그대로의 식물로 우리가 지금도 나물을 즐겨 먹는다는 것은 몇만 년 전 농사를 짓기 이전의 채집 시대의 입맛과 그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누이의 나물 바구니를 잡고 봄나들이를 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우리 민족의 기원인 단군신화 때의 광경을 본 것이나 다름없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들판을 울긋불긋한 원색 치마 저고리로 수놓은 누이들이야말로 다름 아닌 웅녀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바깥출입이 부자유했던 누이들에게 있어 겨우내 갇혀 있던 그 골방은 바로 그 곰의 어두운 동굴이 아니었겠는가. 눈부신 봄 들판으로 뛰쳐나온 우리 아리따운 누이들이 웅녀가 아니라면 대체 어느 나라의 여인들을 그렇게 부를 수 있겠는가.

정말이다. 누이의 몸과 바구니에서는 온통 쑥과 달래 마늘의 향내가 났다. 그리고 누님의 달래 마늘 향내가 바로 밥상의 냄새가 되는 그것이 나물 나라에 태어난 한국인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왜 마늘을 달래 마늘이라고 하는가?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인터넷 지식인을 검색해 보라고 권하면 된다. 사람이 재배한 그냥 마늘이 아니라 누이가 캐온 나물 바구니 속 쑥과 함께 들어 있는 야생의 달래 마늘이라야 하늘이 주신 것이다. 그래야 짝이 어울린다. 쓴 것을 좋아하는 쑥, 씀바귀 그리고 매운 것을 좋아하는 달래 마늘, 이 야생의 나물 맛을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다. 과연 유사의 그 대목에도 곰이 먹은 것은 애(艾)와 산(蒜)이라고 되어 있는데, 자전을 찾아보면 애는 쑥이라 되어 있고, 산은 달래, 작은 마늘, 냄새 나는 나물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동물의 상태에 있던 인간들이 돌멩이를 들어 도구로 사용하는 순간 그 돌은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돌도끼라는 문화의 의미로 탄생한다. 그것처럼 야생의 풀을 뜯어 나물로 무치는 순간 그 야생의 식물은 문화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때가 곰이 달래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는 순간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날것으로 먹는 생식은 ‘자연’을 의미하고, 불로 익혀 먹는 것은 ‘문명(문화)’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나물은 무치면 생식이요, 삭히면 발효식이요, 데치면 화식의 문명이 된다. 어찌 레비스트로스가 한국의 무치고 삭히고 데치는 나물 문화를 알았겠는가.

마늘이냐 달래 마늘이냐. 나는 이 논쟁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 단군신화의 곰이 그러했듯이 나물이 있기에 우리는 한국인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입춘을 맞이하는 오훈채 문화가 있었기에 “숙아! 달래마늘같이 쬐그만 숙아”라고 오늘의 시인은 노래 부를 수 있었다. 한마디로 나물이 있었기에 오늘의 비빔밥 문화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물 바구니에 매달려 봄 들판으로 나들이를 갈 수 있었기에 나는 줄곧 구석기 시대의 채집문화에서부터 농경 시대와 산업 시대, 그리고 정보문명 시대의 인류의 전 문명 과정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글을 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석학 토인비와 드러커, 『제3의 물결』에서 채집 시대를 제외하고 문명을 논한 토플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나물 맛을 알고 문명을 논했느냐? 그래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이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가난의 산물로 주신 나물 캐며 살아온 문화에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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