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돌상 앞의 한국인 ⑤
오랜만에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색동옷과 복건을 쓴 돌잡이를 보면서 처음으로 거기 의젓하게 앉아 있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았다. 눈물이 흔해진 나이라 그런지 경사스러운 날에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다. 색 바랜 사진 한 장. 그나마 전쟁으로 불타버린 내 돌 사진이 생각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모든 것이 변했는데 장례식에 가도 곡소리를 들을 수 없고 결혼식장에 가도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세상인데 돌잡이만은 옛날 모습처럼 돌상 앞에 앉아 있다. 하늘의 별들이 일제히 내려와 앉은 것 같은 돌상차림이 아닌가.
그래 나도 돌상 앞에 저렇게 앉아 있었겠지. 아주 작고 반짝이는 그 많은 것들, 이름은 몰랐지만 분명 그것은 붓이고 책이고 무지개 같은 활이었을 거야. 무한대의 기호 모양을 한 것은 장수를 한다는 무명 실타래고 진주알같이 쌓여 있는 것은 만석꾼이 되라는 흰쌀이었을 것이다. “얼른 잡아! 저게 다 너의 꿈인 거야. 좋은 걸 골라 잡기만 하면 돼.” 누군가가 속삭인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고 현실 속에서 내 기억을 일깨워 주신 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다. “네가 돌상에서 맨 먼저 잡은 건 붓이었단다. 그리고 낡고 헤어진 천자문 책을 집으려고 했지.” 그때의 말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흡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미소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부귀영화의 쌀과 돈, 권력의 활을 잡지 않고 붓 한 자루 잡았던 나를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신 어머니, 남의 나라처럼 그냥 ‘퍼스트 버스데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별난 돌잡이 풍습을 만들어 준 나의 조국, 그런 어머니의 아들과 그런 한국 땅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돌날 붓을 잡은 나는 정말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칭기즈칸도 아인슈타인도 없는 땅에 태어났으면서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금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잠시 흐려졌던 눈이 맑아지자 돌상 위에 놓인 낯선 물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저건 컴퓨터 마우스 아닌가.” “예 맞아요. 빌 게이츠가 되라고요.” 돌잡이 아빠는 IT 벤처회사의 간부사원이었다.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는 변명을 하듯 말을 이었다.
“요즘 마우스는 명함도 못 내지요. 박찬호가 뜨면 야구공, 박세리가 이길 땐 골프공이 오르지요. 뭐 사라 장이 한국에 와서 연주를 하면 장난감 바이올린까지 등장한답니다. 그런데 요새는 스케이트래요. 유나 킴, 아시잖아요. 김연아말이에요.”
“어차피 책을 잡아도 판검사 되라고 법전일 테고 CEO 되라고 경영책일 텐데 무엇이면 어떠냐. 나처럼 붓을 잡지 않아도 세계에서 제일 가는 사람이 되거라.” 폰 카메라 같은 것으로 누군가 백 년 전부터 돌상을 찍었더라면 아마 한국인의 다양한 꿈 사전이, 시대를 읽는 욕망의 역사책이 생겨났을 것이다. 어느 화가가 말한 것처럼 한국의 밥상을 부감촬영하면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밥상의 테두리는 액자가 되고 오방색 음식 그릇들은 추상화가 된다. 더구나 돌상은 먹는 음식이 아니라 꿈을 담은 물건들이니 우리 미래를 검색하는 데이터 베이스의 창처럼 눈부실 거다.
예나 지금이나 돌상 앞에 앉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미래의 비전을 잡는 한국인의 모습, 그 시작 속에 우리 문화를 읽는 암호가 숨어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의 돌잡이 풍속과 비교해 보면 알 것이다.
첫째는 상(床)문화다. 한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돌상(床)에서 제상까지’다. 그 사이에 초례청, 결혼상이 있고 환갑상이 있다. 그런데 일본은 상이 아니라 다다미방에 돌잔치의 물건을 진열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돌상에 오를 수 없는 칼(사무라이의 칼잡이 문화)이나 주판(상인들 문화) 같은 것들이다.
둘째는 앉는 문화다. 상 앞에서는 서도 안 되고 누워도 안 된다. 한국의 좌식문화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앉아서 받는 돌상이다. 일본의 돌잡이들은 평생 먹을 양식을 상징하는 떡(잇쇼모찌)을 짊어지고 다다미 위의 돌차림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아이가 걸어가는 쪽 물건으로 미래를 점친다.
셋째는 잡는 문화다. 돌잡이는 꿈잡이다. 한국인은 꿈을 꾸지 않고 손으로 잡는다. “잼잼”과 “곤지곤지”의 애들 놀이에서 쇠젓가락으로 콩알을 집는 손기술까지 모두가 돌잡이의 ‘잡는 문화’로 상징된다. 같은 젓가락 문화권이라고 해도 일본에는 돌잡이의 개념이 없다. 걷지 못하는 아이들은 돌떡(잇쇼모찌)을 발로 밟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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