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상 앞의 한국인 ② 이어령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갓난아이들은 용케 어머니의 젖꼭지를 찾아 빤다. 시각이 아니라 후각을 통해서다. 설마라고 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배 안에서부터 어머니 냄새를 맡아 왔다는 이야기다. 배 안에서도 어머니의 말을 익힌다는 말, 그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편안한 표정을 짓고 베토벤의 시끄러운 음악에는 얼굴을 찡그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냄새까지 맡는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신생아들에게 평소 사용하던 어머니의 브래지어와 그렇지 않은 것을 대주고 그 반응을 살펴본 실험결과라고 하니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탯줄을 끊자마자 양수를 빨고 배설물을 싸던 생물유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배우고 익혀야 사는 사회로부터 오는 최초의 문화유전자가 기저귀를 타고 들어온다. 빠는 것과 싸는 것은 생물학적 유전자에 맡겨진 것이지만 먹는 것과 누는 것은 문화적 학습과 훈련에 의한 것이다. 한국 나이로 두세 살은 되어야 겨우 자기 의지로 배설을 가릴 수 있게 된다. 그동안에는 기저귀를 줄곧 차고 지낸다. 사람들의 일생을 기저귀(강보)로부터 시작하여 수의(壽衣)로 끝나는 한 폭의 천으로 파악한 것은 역시 대문호 셰익스피어다. 하지만 기저귀의 문화인류학적 의미는 그보다도 훨씬 복잡하다. 같은 기저귀라도 자연섬유로 된 옛날의 기저귀와 종이로 만든 요즈음의 일회용 기저귀는 소재부터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천 조각 자체보다도 문화에 따라 아이에게 기저귀를 채우는 방식이 나라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한다. 우선 기저귀를 느슨하게 채우느냐 꽉 조이느냐의 문화적 풍습에서 민족성 형성에 차이가 생긴다는 이른바 ‘기저귀학(學)’이란 것도 있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다니엘 벨 같은 사회학자는 실제로 기저귀를 지나치게 꼭 죄는 풍습으로 러시아인의 기질과 사회성을 분석했던 기저귀학파를 비웃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기저귀를 채우듯 일본 사람들은 아이들의 다리에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꼭 조여 맨다. 일본인 학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다카바시 에쓰지로). 일본인들은 머리에는 하치마키(머리띠), 어깨에는 다즈키(어깨띠), 양 가랑이 사이에는 훈도시(기저귀 모양의 천)를 조여야 힘이 나는 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일제 강점 하의 영향으로 우리도 허리띠·어깨띠까지 두르고 데모를 하지만 일본의 훈도시만은 그들의 것이다. 힘자랑하는 일본의 역사들이 발가벗은 채 ‘기저귀’만 차고 씨름판에 오르는 그 기상을 보면 그래 정말 ‘기저귀의 문화유전자’라는 게 만만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아이들을 업고 다니는 시대가 아니라 실증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기저귀도 포대기 끈도 느슨하게 매는 편인 것 같다. 업힌 아이들이 어깨라고 하기보다 엉덩이에 박처럼 매달려 있는 옛날 그립고 귀여운 삽화를 보면 알 것이다. 기저귀를 꽉 졸라매는 것은 문(文)이요, 헐렁하게 매는 것은 질(質)이다. 조이는 것도 느슨한 것도 아닌 채운 듯 만 듯한 그 가운데 것이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인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한국인이 오랫동안 추구해 왔던 문화다.
기저귀를 조여 매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 동남아의 경우다. 아예 기저귀란 것이 없단다. 인도네시아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배설할 기미가 보이면 전광석화와 같은 타이밍으로 받아 씻어낸다고 한다. 기저귀 없는 문화권의 ‘질’이 생겨나는 순간이다.
그렇다. 기저귀는 문화의 중요한 단서물이다. 젖을 ‘빠는 것’과 대소변을 ‘싸는 것’의 인풋과 아웃풋이 ‘먹는 것’과 ‘누는 것’의 의지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바로 기저귀의 의미다. 한국인의 최초의 학습은 이렇게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배우는 ‘맘마’와 ‘지지’이고 자기 의지로 배설하는 것을 배우는 ‘쉬이 쉬이’와 ‘끙가’의 유아 언어다. 빨고 싸던 생물학적 유전이 먹고 누는 문화유전자로 변하고 그것이 사회에 나가면 벌고 쓰는 관계로 진화한다. 그래서 버는 것만 알고 쓰는 것은 모르는 경제학·경영학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것도 꽉 조인 기저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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