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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한국인칼럼

만인의 친구’ 미키마우스는 배꼽이 없다

만인의 친구’ 미키마우스는 배꼽이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보면 웬만한 연예인보다 더 큰 대접을 받고 있는 생쥐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미키마우스, 국적은 미합중국, 출생지는 뉴욕이다. 종교는 기독교이고 키는 70㎝, 혈액형은 B형이다.

걸핏하면 “Oh, boy!”라고 말하는 버릇과 빨간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며 더러는 독서도 한다. 교제하는 지인들의 리스트에는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부터 스페인 국왕에 이르기까지 저명인사들이 줄줄이 올라 있다. 거기에 동료 유명 배우와 디즈니 식구까지 합치면 대군단이 된다.

그러나 진짜 사람과 다를 게 없던 미키도 출생 약력에 오면 역시 흔들린다. 미키는 1928년 11월 18일 일요일에 처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나이는 80세, 설정 연령은 10대라는 메모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키가 절대로 못 하는 게 하나 있다는 걸 발견한다. 80세 나이에도 10대 행세를 할 수 있겠지만 한국 나이로 계산해 한 살을 더 보태는 건 천금을 줘도 안 된다.

미키에는 믹(mic)이라는 애칭이 있고 중국에서는 미노서(米老鼠), 이탈리아에서는 토포리노, 스페인에서는 라톤 미겔리토, 인도네시아에서는 미키 티쿠스 등 별의별 이름이 다 있지만 우리 쑥쑥이처럼 태명(胎名)만은 가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무리 사람 대접을 받고 사람 행세를 해도 미키에게는 태가 없고 배꼽이 없다는 것, 그것이 그의 ‘출생 비밀’이다. 그래서 태생적(胎生的) 비극이라는 말도 쓸 수가 없다. 한국에 와서 ‘281118’로 시작하는 주민등록증을 받을 수는 있지만 “나는 한 살에 났다”는 소설은 쓸 수가 없다. 0살과 한 살에 태어나는 차이는 불과 일 년이지만 바이오의 시간, 우주의 시간으로 치면 20억 년이 넘는다. DNA의 발생 시기부터 치면 40억 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태가 아니라 두뇌에서 탄생된 미키에게는 생물학적인 진(gene)이 없다. 오직 문화적 유전자 밈(meme)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0살부터 나이를 따지는 서양 사회에서는 사람과 미키를 분간하기가 힘들어진다. 태내(胎內)를 태반으로 해서 성장한 사회와 뇌내(腦內)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사회의 차이는 크다. 오늘날에는 한국인도 탯줄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 아무렇지 않게 임신 중절로 한 해 약 35만 명으로 추정되는 태아를 죽이는 나라가 되었다.

미키처럼 배꼽이 없고 탯줄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만이 모여 사는 사회는 ‘환상공동체’라 할 수 있다. 디즈니랜드와 해리포터와 같은 판타지가 지배하는 유아적 세상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발보다 훨씬 큰 아버지 신발을 신고 다닌다. 귀여워 보이지만 진짜 사이즈와는 맞지 않는 거북함이 숨어 있다. 사람보다 하나가 적은 네 손가락인데도 엄청난 부와 명예와 사랑까지도 움켜쥘 수 있다. 천적인 고양이도 무서워하지 않는 미키는 마음 놓고 지구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그의 밈을 뿌렸다.

미키와 거의 동시대 사람인 나는 오늘까지 줄곧 그와 즐겁게 동행해 왔다. 30년대의 나는 일제 식민지시대의 불행한 아이로 자랐지만, 미키는 ‘타잔’ ‘킹콩’과 함께 세계의 대공황기에 나타난 3대 캐릭터로 급식소에 늘어선 실직자들의 행렬보다 더 긴 줄을 극장마다 세웠다.

냉전시대에 나는 전전긍긍 초라하게 살고 있었지만, 미키마우스 풍선은 홍콩의 하늘 위에 당당하게 떠서 주룽반도의 중국 영토에 자유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중공 측에서는 즉각 커다란 쥐덫을 올려 미키가 한 마리 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 타격을 가하려 했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쥐덫의 모욕은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의 밈은 전 지구로 급격히 번져 나갔고 그의 변형된 유전자는 디즈니랜드와 인터넷 같은 또 다른 환상의 사이버 공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만인이 싫어하는 쥐를 만인이 좋아하는 쥐로 역전시킨 미키의 놀라운 창조력과 상상력의 문화 유전자 밈을 부러워했다. 쥐를 보면 신발짝부터 벗어 들거나 쥐덫을 놓는 사회는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드디어 미키도 노쇠했는가. 이번 세계 경제위기의 쓰나미 앞에서는 쥐 죽은 듯 소리가 없다. 아니다. 막지 못한 게 아니라 그 주역 노릇을 한 셈이다. 미키를 닮아 가던 미국인들은 탯줄 없는 서브프라임의 판타지 드라마를 통해 부동산과 금융 버블을 일으키게 되고, 그 환상의 거품이 꺼지자 전 세계는 제정신이 들었다. 위기 극복의 탯줄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태아들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어도 판타지가 아니다.

지식도 기술도 없는 태아들이지만 두 엄지를 꼭 틀어쥐고 태어난다. 자궁벽을 찢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기가 자란 그 아기집을 성한 그대로 아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다. 미키마우스의 유전자 밈에 쑥쑥이 같은 한국의 태명을 달아주고 어머니의 몸 안에 있는 태고의 바다와 연결된 탯줄을 이어주기 위해서 한국인 이야기는 다시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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