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한국인칼럼

큰 불행이 낳은 사랑

큰 불행이 낳은 사랑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

 

일러스트=이철원 기자/burbuck@chosun.com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발안 나들목으로 나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해창리 쪽으로 달리다 보면 '명훈장학회(明勳奬學會)'라는 작은 현판이 걸린 농장이 나온다. 이 농장에는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젖소를 키우며 살고 있다. 농장에서 나온 우유를 팔아 아들의 모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 지 올해로 33년째다. 이 작은 장학회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백 명이 넘는다. 독일로 유학 가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의 교수가 된 사람, 미국 명문대학으로 진학해 세계적인 과학자로 활동하는 사람,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고위직 공무원이 된 사람,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장학회의 주인공은 농과대학에 진학해 이 나라 농촌 지도자를 꿈꾸던 젊은이였다. 마치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주인공 '박동혁' 같은 청년이었다. 친구들과 밤새워가며 농촌 발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교수에게는 날카로운 질문을 하던 지혜롭고 똑똑한 청년이었다. 옷차림은 늘 수수했고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앞장서 도와주었다. 그래서 친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교수들로부터는 이 나라 농촌 발전을 위해 일할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그랬던 젊은이가 대학 2학년 때 학과 모임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잃은 부모는 서울에서 하던 운수업을 정리하고 조용한 시골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농장 일을 하면서 아들 잃은 슬픔을 잊고자 했다.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 같은 과(科)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가 못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장학회를 만들었다. 장학회 이름은 그 친구의 이름을 따서 '명훈장학회'라 하였다. 농장 입구에 작은 현판을 단 게 1978년의 일이다.

이 장학회는 장학재단들과는 다르다. 귀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절함과 수십년 된 친구들의 우정, 그리고 지도교수의 제자 사랑이 담겨 있다. 부모는 젖소를 길러 나온 우유로 장학금을 대고, 학과 친구들과 사회에 진출한 장학생들은 매월 일정액을 보탠다. 아흔이 넘은 지도교수도 지금까지도 계속 장학금을 넣는다.

이런 사연 때문에 장학금 수여식도 각별하다. 일반 장학재단들처럼 도심 한복판 사무실에서 근엄하게 증서를 수여하는 게 아니다. 장학회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모두 초청돼 시골 농장에서 잔치를 벌인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장학생들, 학과 친구들, 모교의 교수들, 가족과 친지들이 참석한다. 작은 태극기가 걸린 농장사무실에서 장학회 취지문이 낭독되고, 매학기 뽑힌 4명의 장학생들은 선서하고 선배들의 축하 박수 속에 장학금을 받는다. 아들이 못 이룬 꿈을 꼭 이루어달라는 부모님의 말에 서로 의지를 다진다. 잔디밭에 나가면 부모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준비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다. 밭에서 손수 키운 채소로 반찬을 해놓고 농사지은 쌀로 만든 밥에선 김이 모락모락난다.

학기 초에 이렇게 만났던 장학생들은 옥수수가 익는 늦여름이 되면 다시 농장을 찾는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옥수수를 베기 시작한다. 겨우내 젖소에게 먹일 사료이다. 낫을 든 남학생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밑둥치를 베어낸다. 여학생들은 우유를 짜는 일을 돕고 젖소의 똥을 치운다. 후배들이 이렇게 땀 흘리며 일하는 사이 선배들이 과일과 술을 들고 찾아온다. 선배들의 뜻밖의 위문에 후배들은 신이 난다. 낮에는 옥수수밭에서 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농업 발전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인다.

몇 년 전, 장학회 주인공의 조카가 결혼을 했다. 식장에는 하객들로 가득 찼다. 식이 끝나고 갑자기 장학회 주인공의 형인 혼주(婚主)가 마이크를 잡더니 "오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여러분이 보내주신 축의금 전액을 장학회에 기부하겠습니다"라 말했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와~'하는 환호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카가 기특하게도 돌아가신 삼촌의 이름이 들어간 장학회에 결혼식 축의금을 기부하자고 아버지에게 제의했던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라고 했다.

장학회는 모교에도 뜻 깊은 일을 했다. 농과대학 건물 내에 첨단 멀티미디어 강의실을 기증했다. 강의실 입구 벽에는 장학회 명칭이 새겨진 동판이 붙었다. 부모님이 아들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내놓아 만들어진 것이다. 모교 총장도 부모님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동판을 걸었다. 얼마 전에는 부모님이 농장 땅 일부를 팔았다. 그동안 대학 등록금이 오른 만큼 장학금의 액수가 커지지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오시다가 결심을 하신 것이다. 그날 부모님은 장학기금이 늘어난 예금통장을 보시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하셨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큰일을 당한다. 어떤 사람은 큰일을 당하면 그 충격에 주저앉아 세월만 탓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큰일을 극복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보람찬 일을 생각해 낸다. 그러곤 바로 실천에 옮긴다. 그런 사람에게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불행은 행복으로 찾아오기 마련이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큰일을 당한 사람들이 꼭 기억해 둘 말이다.

' > 한국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65세에서 75세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0) 2015.08.02
이휘소 평전  (0) 2015.05.09
달래 마늘의 향기 ③  (0) 2009.04.30
달래 마늘의 향기 ②  (0) 2009.04.30
달래 마늘의 향기 ①   (0) 200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