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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좋은글모심

시냇물이 없으면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시냇물이 없으면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지난주 최대의 화제는 뭐니 뭐니 해도 우리 해군 UDT 대원들의 활약이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미군이나 이스라엘군처럼 실전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데 놀라운 성과였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말 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어수룩한 해적들이니 가능했다는 거지요. 뭐,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로켓포와 기관총을 든 무장세력입니다. 우리 해군에 사격을 가해 부상을 입혔고 로켓포까지 쏘려 했던 무뢰한들입니다. 결코 위험이 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 작전이 무리였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자칫 인질들이 위험할 수 있었다는 얘기지요. 할 수 있는 지적이긴 하지만, 이번 작전의 성공은 지피지기(知彼知己)의 결과라고 저는 믿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아닙니까. 상대가 훈련된 테러리스트들이었다면 우리 해군의 작전도 훨씬 신중했겠지요. 이번 성공이 추후 무리한 작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런 의미에서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걱정도 좋지만 우선은 치하하고 격려할 때 아닙니까.

 이런 자신감은 근거 없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믿을 만한 구석이 있어서지요.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일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이 하나요, 자신을 위해 일을 이용하는 사람이 또 하납니다. 전자의 경우는 즐거운 것이든 아니든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주어진 일을 해냅니다. 그런 사람에겐 갑자기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문제가 될 게 없지요. 평소 하던 대로, 매뉴얼대로 하면 그만이니까요. 후자는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발판 삼아 다른 일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사회 각 분야에 존재하지만, 강의실이나 연구실보다는 정치권이나 관가를 기웃거리는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대표적인 경우지요. 비상사태 해결사는커녕 평소에도 불만 유발자가 될 수밖에 없잖겠어요.

 우리 UDT는 전자의 경우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들이 평소 어떻게 훈련을 하고, 어떻게 정신무장을 하는지는 익히 알려진 일이니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다른 예를 들어볼까 합니다. UDT 같은 극한훈련만이 일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방법이 아니니까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얘깁니다. 바흐가 누굽니까. 서양음악의 출발점이요, 바로크 음악 그 자체며, 베토벤에 의해 ‘화성(和聲)의 아버지’라 추앙된 인물입니다. 오늘날 전하는 것만 1200곡, 소실된 것까지 합치면 1700곡이나 작곡할 정도로 일생을 음악에 바쳤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했을 뿐 헛된 명성을 좇지 않았습니다. 말년에 자서전을 쓰라는 주위 권유도 물리칠 정도였지요.

 공직생활을 할 때도 바흐는 무례한 대공이나 귀족들에게서 거의 ‘종복’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이마르에서 쾨텐으로 자리를 옮길 때 바흐의 사직서 어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이마르 대공이 그를 한 달이나 감옥에 가둔 일까지 있었지요.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대신 음악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까다로운 고용주들이 어떤 주문을 해도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다를 때는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늘 바흐가 옳았습니다.

 남보다 스스로에게 더 엄격하고 높은 수준을 요구했던 바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그는 일회용이라 불러도 좋을 고용주들의 사소한 작품 주문에도 음악적 완성도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수많은 작품 중에 어느 하나에서도 적당히 넘어가거나 반복으로 때운 부분을 찾을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요. (바흐는 음악에만 성실한 게 아니었습니다. 뭘 해도 최선을 다했지요. 그는 두 명의 아내 사이에서 스무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바흐 같은 대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그처럼 일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꼴뚜기 말고 다른 많은 생선들로 어물전이 차려지듯,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굴러가는 겁니다. 다른 데 눈 안 돌리고 그렇게 사회를 굴려가다 보면 어느덧 대가의 영광이 따르게 되는 거고요.

 바흐는 독일어로 ‘시냇물’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베토벤의 말처럼 바흐는 “시냇물이 아니라 크고도 깊은 바다”입니다. 시냇물이 없으면 바다를 이룰 수 없습니다. 바다가 되길 원한다면 먼저 시냇물이 되십시오. 막히면 돌아가고 높으면 모았다 가더라도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가 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j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