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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음식이야기

소주, 병참기지였던 안동·제주

소주, 병참기지였던 안동·제주


Special Knowledge <350> ‘국민의 술’ 소주[중앙일보]  2011.09.09 00:28 위성욱 기자

 

전통 소줏고리를 사용해 소주를 뽑아내고 있다. 제일 아래쪽 가마솥에 양조주를 넣고 열을 가하면 기체가 올라갔다  찬물이 든 위쪽용기에서 식혀지면서 주둥이 부분으로 소주가 흘러나온다. 증류식 소주는 한 번만 증류시켜 만든다. [중앙포토]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

소주는 기원전 3000년께 메소포타미아(현 이라크 지역)의 수메르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향수를 만드는 증류법이 술을 만드는 것으로 발전한 것이다. 증류법은 12세기 십자군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포도주를 증류한 ‘브랜디’와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가 태어났다. 동방에는 1258년 몽고군이 압바스 왕조의 이슬람 제국을 공략하면서 현지 농경민으로부터 소주 양조법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 그 뒤 몽고군은 가는 곳마다 소주를 전파했다. 고려도 마찬가지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대규모 군대를 고려로 보냈다. 이들 주둔지에는 어김없이 양조장이 생겨났다. 당시 원정군의 본영이었던 개성을 비롯해 병참기지인 안동과 제주가 전통적 토속주인 소주로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개성의 아락주, 안동의 안동소주, 제주의 고소리술의 원류가 바로 몽고 소주인 것이다. 평안북도나 목포·서귀포 지역에서 소주를 ‘아랑주’라 부르는데 아랍어로 소주를 ‘아락(arag·arak)’이라 말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몽고군이 물러간 뒤 고려사회에서는 소주가 권문세가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맛이 특이하고 뒤끝이 깨끗해 인기가 높았으나 독하고 값이 비싸 서민들은 마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역사에 처음으로 소주(燒酒)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고려사』 우왕 원년(1375년)이다. ‘사람들이 검소할 줄 모르고 소주나 비단 또는 금이나 옥 그릇에 탕진하니 앞으로 일절 금한다’라고 적혀 있다. 이때 주(酒)는 누룩으로 빚은 술이라는 의미다. 소주를 다른 술과 섞어 마시는 ‘소폭’의 역사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박지원·홍대용·유득공과 함께 활동한 실학파인 정철조라는 문인은 소주가 한 병 생기면 막걸리를 받아와 섞은 뒤 ‘혼돈주’라 부르며 즐겼다고 한다.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누룩. 쌀·밀 등 곡류를 빻아 반죽한 뒤 곰팡이를 번식시킨다. 전통 누룩은 주로 황국균을 이용한다.
소주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뉜다. 증류식은 양조주에 물을 섞어 열을 가해 한 번만 증류시켜 만든 술이다. 50도 내외다. 안동소주 등이 대표적이다. 고려부터 조선후기까지의 우리 소주는 모두 전통 누룩으로 빚은 양조주를 한 차례 증류시킨 증류식 소주(燒酒)였다. 강제병합 직전인 1909년 일본의 주도로 주세법이 만들어지면서 전통적인 제조법에도 변화가 왔다. 소주를 만드는 전통적인 증류기구인 ‘소줏고리’ 대신 일본식 양조용 시루가 보급되더니 10년 뒤에는 전통 누룩 대신 일본에서 가루로 된 검은 누룩(흑국)이 들어왔다. 우리 기구와 전통 누룩 대신 값이 싼 일본식 기구와 누룩으로 만든 소주가 대세가 됐다는 말이다. 1923년 일본의 흑국과 우리나라 전통 누룩의 소주 비율이 1대 99였는데 1932년에는 95대 5로 역전됐다. 소주회사끼리 채산성을 따지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희석식은 양조주를 여러 차례 가열해 여기서 나온 고농도의 에틸알코올(주정)에 물과 첨가제를 넣는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가 지금 즐겨 마시는 소주다. 소주병에 표시된 희석식 소주(稀釋式燒酎)의 주(酎)자는 세 번 빚은 술이라는 뜻이다. 세 번 이상 증류한 뒤 희석시킨 술이라는 뜻이다.

양반 술에서 서민 술로

소주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가 전국에 ‘양조공장’을 만들면서부터다. 1916년 전국의 소주 제조장은 2만8404개에 달했다. 이들 업체의 76% 정도는 사실상 일본인이 경영하는 회사였다.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국내 최초의 소주 공장은 1919년 평양 교구정에 세워진 ‘조선소주’다. 국내의 대표적 소주회사인 ‘진로’는 1924년 10월 장학엽씨가 평남 용강군 지운면 진지리에 진천양조상회를 설립한 것이 효시다. 당시 35도짜리 증류식 소주를 만들기 시작해 1970년 국내 소주시장 1위에 오른 뒤 현재까지 절대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광복 후인 1965년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시행하면서 곡물로 소주를 만드는 게 어려워졌다. 증류식 소주가 지금의 희석식 소주로 바뀌는 전환점이었다. 당시 200~300여 개에 달하던 소주 회사는 72년 68개로 줄었으며, 73년에는 1도 1사 정책으로 각 도에 소주회사가 한 개로 제한됐다. 지방의 대표 소주가 생겨나게 된 배경이다. 소주는 싼 가격과 보관이 편리하다는 장점 때문에 소비가 계속 늘었고 ‘서민의 술’로 자리 잡았다.

35도에서 15.5도로

지금까지 소주 도수는 크게 11번이 바뀌었다. 진로가 처음 소주를 생산한 1924년 당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였다. 현재와 같은 희석식 소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65년에는 30도 소주가 주류를 이뤘다. 73년 25도로 낮아진 이후 25년간 ‘소주=25’도로 통했다. 그러다 1998년 진로가 2도 낮춘 23도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91일 만에 100만 상자를 판매해 최단기간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참이슬의 독주시대가 계속됐다. 그러자 2001년 강원도 지역 소주인 ‘경월’을 인수한 두산에서 22도인 ‘산’을 내놓으며 맞불작전을 폈다. 참이슬도 22도로 도수를 낮췄다. 다시 3년 뒤인 2004년 두 회사는 동시에 21도 제품을 출시했다.

더 이상 내려가지 않을 것 같던 소주 도수는 2006년 2월 두산에서 20도짜리 ‘처음처럼’을 내놓으면서 다시 도수 낮추기 경쟁이 시작됐다. ‘처음처럼’은 참이슬이 기록했던 100만 상자 기록을 50일 만에 깨뜨리면서 소주시장의 절대강자인 진로를 위협했다. 참이슬도 같은 해 2월 20.1도로 낮추었지만 시장 출시 6개월 만에 19.8도 소주를 다시 선보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부산의 대선주조와 경남의 무학이 2006년 말 각각 16.9도의 ‘씨유’와 ‘좋은데이’를 동시에 내놓으며 ‘순한 소주 전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무학이 승리하자 대선은 2009년 0.2도 낮은 16.7도짜리 ‘봄봄’을 다시 들고 나왔고, 결국 올해 16.2도까지 도수를 낮춘 ‘즐거워예’로 시장 공략 중이다.

이 과정에 진로는 2010년 말 15.5도인 ‘즐겨찾기’를 내놓아 시장 사수에 나서기도 했다. 낮은 도수의 소주는 ‘마치 물 같다’는 시장의 냉랭한 반응도 있었지만, 소주시장에 ‘젊은 여성’이라는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일부 업체는 사실상 16도가 마지막 경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수가 더 낮아질 경우 양조주(14~16도)와 비슷한 수준이 돼 높은 도수가 생명인 소주의 정체성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주의 도수가 낮아진 데는 오후 10시 이후 17도 이상의 술 광고를 못하도록 한 방송 광고 관련 규정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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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대표 소주와 판도 변화

1973년 소주업계의 1도 1사 시절이 시작되면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업체가 등장했다. 진로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 대선과 무학은 부산과 경남, 보해는 광주·전남, 보배는 전북, 금복주는 대구·경북, 경월은 강원, 선양은 대전·충남, 충북합동양조장은 충북, 한일은 제주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들 업체 중 경월은 두산경월을 거쳐 롯데로 인수됐고, 한일과 충북합동양조장은 한라산과 충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난 1~6월 시장 점유율로 보면 소주업계의 최강자는 진로다. 소주 시장의 48.7%를 장악했다. 진로는 60년대 당시 10여 년간 경쟁업체인 삼합을 누르고 독주를 시작한 이래 한 번도 1등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하지만 후발주자들의 추격도 매섭다. 롯데(15.3%), 무학(12.4%), 금복주(8%), 보해(5.1%), 대선(4%) 등이 자신의 지역을 넘어 인근 권역으로 시장을 확대하면서 사실상 전국구인 진로의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선양, 한라산, 충북, 보배 등은 0.9~3.3%대로 아직은 지역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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