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공장 간장공장
조선일보 김성윤기자 글
유창우 미디어기자 사진
음력 정월(1월)을 앞둔 요즘 전국 곳곳에서 장(醬) 담그기가 한창이다. 예부터 '정월에 담근 장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정월장'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추운 정월이라야 짜게 담그지 않아도 쉬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아 장 담그기 알맞기 때문이다. 경북 포항시 죽장면에 있는 장류업체 '죽장연(竹長然)'에서 전통 장 담그기를 보고 왔다.
지난 13일 아침 7시쯤, 경북 포항 장류업체 '죽장연'의 대형 가마솥 16개가 새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임금례(59)씨 등 죽장면 주민 40여 명은 뚜껑을 꼭 덮은 가마솥 표면에 찬물을 붓고 넘치는 콩물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는 작업을 부지런히 반복했다. 하얀 김은 물이 뜨거운 가마솥 표면에서 증발하면서 생겨나고 있었다. 70㎏들이 가마솥마다 여기 포항 죽장면에서 수확한 콩이 가득 담겨 있었다. 메주를 만들 콩이다.
"어릴 때 엄마가 장 담그는 것을 보았고 시집 와서는 이때껏 장을 담가왔다"는 임씨는 "장 담글 때 제일 중요한 게 콩 삶기"라고 했다. "콩을 삶는 시간은 모두 다섯 시간이에요. 40분쯤 삶고 나머지 4시간은 뜸을 들여요. 그래야 콩이 누렇게 잘 뜨고, 물렁물렁 잘 물러요. 콩 삶을 때는 센 불이라야 해요. 그래도 너무 불이 세면 콩이 타요. 콩이 타면 장에서 탄내가 나 좋지 않아요. 뜸 들일 때는 보드라운 불이라야 해요. 그래서 뜸 들이기를 시작할 때는 센 불은 다 빼버리고 보드라운 나무(가는 나뭇가지)를 넣어요. 이 불 맞추기가 힘들어요. 너무 세면 눋고, 약하면 덜 삶아져요. 하기야 세상만사 모두 적당해야 하지만."
가마솥 표면에 왜 그렇게 물을 붓고 열심히 닦는 거냐고 물었다. "온도를 맞춰주는 거예요. 그래야 콩물이 넘치질 않아요. 그래도 넘치죠. 그런데 콩물이 흘러 눌어붙으면 탄내가 콩에 배요. 그러면 메주도, 그 메주로 담근 장도 맛이 덜하죠. 하지만 무엇보다 정성을 담는 것 같아요."
2008년 설립돼 2009년부터 장을 담기 시작한 죽장연은 경북 포항 죽장면 상사리 산골짜기에 있다. 포항이라지만 시내에서 차를 열심히 몰아도 1시간30분이나 걸린다. 청송군을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산골 오지이다. 장은 콩도 중요하지만 물, 바람, 햇볕이라는 자연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맛있게 익는다. 죽장연이 자리 잡은 곳은 한눈에도 장이 제대로 익기 맞춤해 보인다. 동(東)에서 서(西)로 난 골짜기라 깊은 산골인데도 하루 종일 햇볕이 드는데다,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바람이 장이 담긴 항아리를 쓰다듬고 지나간다.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는 4000여개나 된다.
콩이 잘 익었으면 이제 메주를 만들 차례이다. 죽장연에서는 전통 장 담그기 방식을 따르되 그 방식을 기록해 매뉴얼화하고 있다. 죽장연 정연태(47) 대표는 "그렇게 해놔야 장인(匠人)이 없더라도 장맛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1·14·11㎝인 틀에 삶은 콩을 눌러 담아 모양을 만들어 짚이 깔린 나무 건조대에 1차로 말린다. 메주를 말리는 데 보통 30일에서 40일 걸린다.
날이 좋으면 창문을 열어 공기가 통하게 하고, 비가 내리면 닫아 습도를 적당히 맞춰준다. 정 대표는 "온도는 섭씨 5~10도, 습도는 30~40%가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라고 했다. 메주의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말랑한 상태가 가장 좋다. 단단한 부분이 2㎝ 정도라야 이상적이다.
메주가 굳으면 황토로 만든 발효실로 옮겨 3~4단으로 메주를 쌓는다. 발효실 온도는 섭씨 25도이고 습도는 60%이다. 3일마다 메주 위치를 바꿔준다. 15일에서 20일이 지나면 메주에 하얀 곰팡이가 핀다. 시꺼멓거나 푸르스름한 곰팡이는 좋지 않다. 탄내 없이 콩 고유의 구수한 냄새가 기분 좋게 피어오른다. 원래 콩 색 그대로면 덜 뜬 것이다. 붉은빛이 도는 황색이 좋다.
재래 된장 vs. 개량 된장_재래 된장 - 깊은맛 일품, 개량 된장 - 잡균 위험 적어
시판되는 된장은 대개 '개량 된장'이다. 콩에 쌀과 밀가루 등을 섞어 메주를 만들고 코지균을 접종해 발효시킨다. 재래식 전통 된장과 일본 된장인 미소 제조 방법을 결합한 것이다. 깊고 구수한 맛과 영양은 콩만 사용하는 재래식 된장이 낫다. 하지만 개량 된장은 제조 기간이 짧고 잡균이 섞일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요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더 밝고 노르스름한 색이기도 하다.
韓 된장 vs. 日 미소_구수하고 짭짤한 韓 된장… 달고 담백한 日 미소
한국 전통 된장은 '바실러스 서브틸러스'라는 세균과 자연계 국균을 이용한다. 일본 된장인 미소는 '아스퍼질러스 오리제'라는 순수한 국균만 사용한다. 습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자연발효되도록 두면 부패한다. 그래서 곰팡이의 일종인 '코지균'을 쌀에 미리 길러 콩과 섞어서 미소를 만든다. 한국 된장은 곰팡이와 효소 등 복합균이 작용해 혈전 용해 능력이나 항암 효과 등 효능에서 미소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자연 발효에 의존하다 보니 균일한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고 만드는 시기가 한정된다. 그래서 미소가 한국 된장보다 일찍 산업화할 수 있었다. 맛도 다르다. 우리 된장이 구수하고 짜다면 미소는 달고 담백하다.
메주가 잘 떴으면 물로 씻어 소독한 장독에 넣고 소금과 물을 붓는다. 달걀을 소금물에 띄웠을 때 500원짜리 동전 크기 정도로 떠올랐으면 알맞다고들 한다. 죽장연 권현구 관리총괄부장은 "우리는 18보메(Baume)로 맞추고 있다"고 했다. 보메란 염도를 측정하는 단위로, 1보메일 경우 소금이 1%라는 뜻이다. "전통 된장은 18~25보메입니다. 기온이 높지 않은 북쪽 지방일수록 염도가 낮고, 남쪽으로 갈수록 높아지죠. 경남지역이 25보메라고 해요. 그래야 장이 상하지 않으니까요. 강원도 된장이 18보메라는데, 죽장연은 해발 450m 고지대여서 덜 짜게 된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50일에서 60일이 지나면 된장을 풀 때이다. 된장을 독에서 퍼내면 간장이 남게 된다. 콩이 완전히 으스러지지 않도록 된장을 빻아 간장과 따로 다시 옹기에 담는다. 옹기에 담긴 된장은 이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숙성되면서 제대로 맛이 나기 시작한다. 날씨가 청량하면 장독 뚜껑을 열어 된장이 햇빛을 직접 쐬게 한다. 장마가 지나가면 뚜껑을 열어 습기를 빠져나가게 한다. 죽장연에서는 이번에 만든 된장을 오는 5월 풀 계획이다. "6개월이면 먹을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2년에서 3년은 묵어야 된장이 제대로 맛을 내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분들은 오래 묵은 된장보다는 6개월에서 1년 된 된장을 선호하더라고요."
죽장연에서는 된장과 간장에 '빈티지(vintage)' 개념을 도입하기로 했다. 빈티지란 생산 연도를 뜻하는 말로, 와인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다. 정 대표는 "'2년 된 된장' '3년 된 된장'은 아무래도 애매한 데다, 연도별로 맛과 특성을 기록해 숙성시키면 와인 못잖은 고급 제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장독대에 내려앉는 햇볕이 겨울이지만 따뜻했다. 죽장연 문의 (054)253-8880·8882, www.jookjangyeon.com
된장의 역사_신라, 왕비 예물로 준비하고 고려, 굶주린 백성 구황식품
장(醬)은 원래 간장을 말한다. 하지만 넓게는 간장은 물론 된장과 청국장, 막장, 토장, 즙장, 담뿍장, 고추장 등을 아우른다. 장류(醬類)라고도 한다. 된장에 메주가루와 소금물을 섞으면 토장이 된다. 막장은 메주를 소금물과 섞어 따뜻한 곳에서 1주일 정도 발효시킨, 일종의 속성 된장이다. 즙장은 된장에 무나 고추, 배추잎을 넣어 수분이 더 많다. 담뿍장은 볶은 콩으로 메주를 띄워 고춧가루, 마늘, 소금을 넣어 따뜻한 곳에서 7~10일 발효시켜 만든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장 잘 담그는 민족'으로 소문났다. 290년 중국에서 쓰인 역사서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인은 장 담그고 술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고 기록됐을 정도다. 장류를 언급한 한국의 첫 문헌은 '삼국사기'이다. 신라 신문왕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삼을 때 '시(�f)'를 예물로 보냈다는 내용이 있다. 시는 메주를 말한다. 고려 현종 9년(1018년)과 문종 6년(1052년)에는 '굶주린 백성에게 구황식품으로 장을 배급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추를 이용한 만초장(고추장) 제조법이 등장한다. 1930년대 일본인들에 의해 장류 공업화가 시작됐다. 최근 판매되는 된장은 대부분 메주 대신 개량 메주를 이용한 '개량된장'이다.
된장의 효능_항암·항균, 비만 억제까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약'
된장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약(藥)'이다. 그만큼 우리 몸에 유용한 효능이 많다. 대표적인 효능이 항암효과다. 암예방협회의 '암 예방 15개 수칙'에는 '된장국을 매일 먹어라'라는 항목이 있다. 항암 효과는 전통 된장이 가장 높고 그다음이 시판 된장, 청국장, 일본 된장인 미소 순으로 알려졌다. 전통 된장이 함유한 키토올리고당은 항암·항균 작용은 물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작용도 한다. 된장에 들어 있는 필수지방산과 리놀레산, 리놀렌산은 피부병과 혈관질환 등을 예방한다. 레시틴은 동맥경화를 방지하고, 고혈압과 노인성 치매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된장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인 프리바이오틱은 대장에서 인체에 유익한 균은 잘 자라게 하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한다. 된장은 유해균이나 담배의 발암물질을 제거하고 독소를 제거하기도 한다. 비만 억제 효과도 있다고 알려졌다. 단 소금(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니 조심해야겠다.
집에서 장 담그기_장 담그는 황금 비율… 메주:소금:물=1:1:3~4
집에서 장을 담가보자. 메주 소금 물 비율은 1:1:3~4 정도. 예를 들어 메주 한 말(10㎏)이면 소금도 한 말이고 물은 30ℓ쯤으로 잡는다. 물에 소금을 녹여 하루 그대로 뒀다가 윗물만 떠서 쓴다. 메주를 솔로 문질러 깨끗이 씻고 물기를 빼고 햇볕에 바짝 말린다. 항아리에 메주를 차곡차곡 담고 항아리의 70~80%가량 차도록 소금물을 붓는다. 물 위로 메주가 1㎝ 정도 떠오르면 메주 표면에 소금을 한 줌 뿌리고 숯, 고추, 대추 따위를 띄운 다음 뚜껑을 덮어 3일 뒀다가 열어 햇빛을 쬐게 한다. 망사나 광목을 항아리 입구에 씌운다. 40~60일쯤 지난 다음 숯, 고추, 대추를 건져내고 메주와 간장을 가른다. 간장은 10~20분 거품을 걷어내며 달인 다음 식혀서 항아리에 붓고 뚜껑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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