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에 인생 낭비 말라
[중앙일보] 입력 2012.06.30
# ‘애일당(愛日堂)’이란 당호를 가진 집들이 꽤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였던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별당이다. 본래는 낙동강 지류인 분강 기슭에 지었던 것이지만 안동댐이 세워지면서 영지산 자락으로 옮겨 지금에 이른다. 농암은 꼭 500년 전인 1512년 당시 이미 94세였던 노부(老父)를 위해 이 별당을 지었다. 90세가 넘은 나이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이리라. 그럼에도 농암은 늙은 아버지가 나이 들어감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이란 당호를 지었던 것이다.
# 강릉에서 북쪽으로 30리쯤 떨어진 곳에 교산(蛟山)이란 나지막한 야산이 있다. 그 언저리에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1569~1618)의 외가 터가 있다. 지금의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 인근이다. 허균의 호가 교산인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그런데 허균의 외가 터는 예부터 ‘애일당’ 터라 불렸다. 허균의 외조부로 조선 중종 때 예조참판을 지낸 김광철이 집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애일당이란 당호를 붙였던 까닭이다. 400여 년 넘는 세월 속에 집은 온데간데없고, 그 애일당 터에 허균의 호를 딴 교산시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시비엔 허균이 임진왜란 때 피란길에서 돌아와 다 허물어진 애일당을 고쳐 짓고 살면서 지은 시 ‘누실명(陋室銘)’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반 항아리 차를 거우르고/ 한잡음 향 피우고/ 외딴 집에 누워/ 건곤고금을 가늠하노니/ 사람들은 누실이라 하여/ 살지 못하려니 하건만/ 나에게는/ 신선의 세계인져”. 진정한 ‘애일’ 곧 하루를 아끼고 사랑함은 과욕과 집착이 아닌 청빈과 비움에서 더욱 빛난다.
# 고봉학술원이란 곳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이지만 실은 전남 장성과 이어지는 국도변에 있다. 본래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 선생의 13세손인 기세훈 초대 사법연수원장 등 후세들이 기거하던 300여 년 된 고택이다. 그 안에도 어김없이 ‘애일당’이 있다. 고봉이 누구던가. 26세나 연상인 퇴계 이황과 13년에 걸쳐 서신왕래를 하며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논했던 조선의 거유(巨儒) 아닌가. 애일당 툇마루에 앉아 햇볕 든 마당을 바라보면 정말이지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것은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다.
# 사람은 하루에 2만1600여 회 숨을 쉰다. 그러나 인생의 시간은 단지 우리가 숨쉬는 횟수가 아니다. 삶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과 기쁨 그리고 숨이 막힐 듯한 절망과 슬픔의 끊임없는 교직(交織)이다. 결국 삶의 시간은 단지 생리적 맥박의 횟수를 넘어서 일상에 깃든 감동의 파장만큼 존재한다. 따라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은 단지 부지런하라는 뜻이 아니다. 절망과 슬픔조차 딛고 삶의 매 순간을 가슴 벅찰 만큼 빛나고 멋지게 재창조하라는 준엄한 하늘의 명령이다. “나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빠삐용’에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는 이렇게 꾸짖지 않았던가. 너에겐 ‘인생을 낭비한 죄, 젊음을 방탕하게 흘려 보낸 죄’가 있지 않으냐고! 그렇다.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들에 포박당해 이 아까운 하루하루를 낭비할 순 없다. 그것은 자기 삶을 조금씩 조금씩 죽여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매우 은밀한 살인이니까.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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