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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좋은글모심

도전은 산소다!

도전은 산소다!

중앙일보 2012.06.16

 

 

 

 

 

 

#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은 후 두 달여 만에 서울로 돌아와 몸무게를 달아보니 족히 10㎏이 넘게 빠졌다. 하지만 빠진 것은 비단 몸무게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비계도 빠졌다. 마음의 비계가 빠지자 내 안의 마음 바닥이 다시금 드러났다. 꼭 10년 전 대학 교수로 있던 자신에게 “‘직(職)’으로 삶을 마감할래, 아니면 ‘업(業)’으로 삶을 다시 살래?” 하고 사생결단을 요구하듯 발본(拔本)적인 물음을 던졌던 바로 그 마음 바닥이었다.

# 마음 바닥이 드러났다는 것은 그 사람이 ‘래디컬(radical)’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 ‘래디컬’하다고 하면 ‘급진적’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래디컬’의 라틴어적 본래 의미는 “뿌리를 건드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보다 근본(根本)적으로 된다는 것이 래디컬의 본뜻인 게다. 그래서 기본(基本), 그 자기 삶의 ‘터뿌리’를 직시하고 직면하며 나아가는 게 무서운 거다. 그러면 자기 삶이 스스로 갈 길을 열고야 만다.

# 나는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지만 또 가장 잘한 결정이 교수 ‘직’을 그만두고 콘텐트 크리에이터라는 생경한 ‘업’의 길로 나선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나는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고 내 안의 가능성의 금광을 파낼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의 때는 또다시 사람을 안주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도전이란 단어는 더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애써 외면하고, 자기가 해냈다고 자부하는 알량한 것들 위에 부풀어오른 엉덩이를 얹은 채 “이만하면 됐지 뭐!” 하며 그것들을 지그시 깔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됐다. 마음의 비계가 두껍게 낀 것이었다. 사람은 몸이 먼저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건강검진은 받아도 마음의 건강검진은 받아볼 생각조차 안 한다.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 900여㎞를 걸은 것은 다름 아닌 마음검진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발로만 걸은 게 아니다. 물론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며 디디기조차 힘들 정도로 혹사시키며 걸었지만 정작 또 힘들여 걸은 것은 내 마음이었다. 발이 걸으니 땀이 나고 물집이 잡힌다지만 마음이 걸으니 그것은 내 속에 쌓였던 ‘숙변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많이 울었다. 평생 울 것을 다 울었는지도 모를 만큼! 그 덕분에 나는 마음의 시력을 되찾았다. 내 속에서 뿜어 나온 눈물이 희뿌옇던 내 마음의 렌즈를 닦아준 덕분이었다. 마음의 시력을 되찾자 나는 자신을 더욱 분명하게 직시할 수 있게 됐다.

# 늘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안주(安住)는 안락사(安樂死)”라고. 10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나올 때도 그런 생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편하고 좋은 게 우리 주변엔 꽤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사람은 나이 들어서 죽는 게 아니라 점점 편하게 주저 앉으면서 조금씩 사그라져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일종의 의식하지 못하는 안락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질식사다. 편하고 좋으면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기에 삶은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버린다. 그래서 언젠가는 질식사한다. 안락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에 산소가 부족해서 아니 아예 없어져서 질식사하는 것이다.

# 인생의 산소는 크고 작은 도전에서 나온다. 도전하면 스스로 삶의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삶의 산소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걸음으로 갈 수 있고 진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그게 애써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그냥 저질러보고 그저 남이 안 하는 이상한 짓거리로 튀는 것이 아니다. 도전은 삶의 산소를 만들어 스스로 호흡하게 하고 주변과 세상마저도 숨쉬게 만드는 그런 힘이다. 도전하는 만큼 삶은 달라진다. 그것이 삶의 산소를 만들고 진정한 생의 호흡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들해가던 중년의 사내가 900㎞를 걷고 와서 다시 도전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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