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땅 점봉산이 길러 준 산나물은 신의 숨결이 살아 있는 '먹는 보물'이다. 그것은 대지가 밀어낸 약이요,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할 만하다. 인제 땅에서 맛볼 수 있는 소박하고 정갈한 산채 음식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이러한 산나물이 녹색혁명을 거치며 식량 생산이 늘고 채소와 과일이 풍부해지면서 우리에게서 멀어졌었다. 그러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은 최근 일이다. 성인병 환자가 늘고, 무공해 건강 먹을거리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각별히 찾는 이들이 증가했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무공해 산채 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들도 상당수 등장했다. 가격도 산채정식의 경우 1인분에 2∼3만 원씩 하는데도 저녁마다 사람들로 만원이다. 산나물의 정갈한 맛을 따라 먼데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산채의 진정한 맛은 뭐니뭐니 해도 그들이 저절로 무리 지어 자라는 고장에서 맛보는 것이 더 나을 터. 아무래도 도회지에는 중국산 고사리나 도라지 등 수입 산채가 흔하고, 산나물의 신선도도 떨어진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 여건상 산나물은 산촌 어디서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원도 오대산·설악산·점봉산 일대, 전라·경상도의 지리산 일대, 경북 주왕산·문경새재 일대, 경남 가야산, 전북 덕유산·내장산, 충북 월악산 등은 맛 좋은 산나물이 풍부히 나는 대표적인 지역이라 할 만하다.
강원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와 기린면 진동리. 이곳은 점봉산을 품에 안은 청정 지역이다. 점봉산은 남한에서 원시림이 가장 잘 보존된 산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산 일대에서 채취하는 산나물의 무공해성과 맛은 정평이 나있다. 피서지로 이름 난 귀둔리의 필례계곡 일대 음식점들은 웬만하면 산나물 반찬을 두세 가지씩 내어 준다. 물론 점봉산에서 채취한 것으로 무친 반찬이다. 인제 땅에는 ‘푸른농원’(033-463-1005)이나 ‘필례산장’(033-463-4665), ‘진동산채가’(033-463-8484) 등 산채 음식을 전문으로 파는 음식점들도 적지 않다.
귀둔리와 진동리에는 산채를 전문으로 채취하는 이들도 많다. 농사 짓다 빚지느니 차라리 산에서 나는 것들이나 거둬 먹고살겠다며,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산으로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다. 귀둔1리 최성남씨(70)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최씨는 3년 전만 하더라도 봄나물 뜯는 시기에는 아예 산 속에서 살았다. 처음 산에 든 날은 돌과 바위를 주워 구들을 만들었다. 구들 위에 비닐을 씌우고 불을 때면 따뜻한 움막이 되었다. 거기서 밥해 먹으며 연일 산나물을 뜯었다. 얼레지, 미역취, 고비, 땅두릅 등이 나무 그늘 아래 군락을 이뤘다. 채취한 산나물은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아 말렸다. 그것이 산더미처럼 쌓이면 등짐으로 만들어 걸머지고 산을 내려왔다.
요즘은 당일치기로 산나물을 뜯어야 한다. 점봉산이 지난 1999년 국립공원 지역으로 편입돼 산 속에서의 숙식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새벽에 산에 올라 채취한 것들을 그날 집으로 가져 내려온다.
서울 사람들이 이처럼 청정 지역에서 거둔 자연산 산채를 그냥 둘 리 만무하다. 오뉴월이면 점봉산 산채를 찾는 이들의 전화가 최씨 집(033-463-4745)으로 잇따라 걸려 온다. 그러노라면 그는 산나물을 적당한 단위로 포장해 택배로 보낸다. 올해는 얼레지의 경우 말린 것 600g 한 봉지에 1만 3,000원씩에 팔았다. 일반 채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러니 “점봉산은 돈 산”이란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
최씨와 달리 황천호씨(43·인제읍 귀둔1리)는 관광농원을 겸한 식당(푸른농원)에서 재료로 쓰기 위해 가끔 산채를 뜯으러 나서는 이다. 그의 식당은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이 주요 메뉴이다. 산채정식을 주문하면 곰취, 참취, 얼레지, 미역취, 전호, 고사리, 고비, 단풍취, 참나물 등 9가지 산나물과 목이버섯 등이 상에 오른다. 이들을 얻기 위해 황씨는 부인 김옥리씨(39)와 교대로 산에 오른다.
황씨를 따라 점봉산에 든다. 그는 집을 떠나올 때 걸망에 밥과 고추장을 챙겨 넣었다. 점봉산은 ‘녹색의 거대한 탱크’이다. 고로쇠나무, 당단풍, 피나무, 신갈나무, 노린재나무, 전나무 들이 울울한 숲속 여기저기에 산나물들이 돋아나 있다. 그것들을 꺾으며 산을 헤매노라니 어느덧 걸망 가득 산나물이 채취되고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다리가 노곤하고 배도 출출해진다.
“이만 됐으니 개울에서 다리 좀 쉽시다.”
그가 말하고는 계곡을 찾아 바위에 걸터앉는다. 물은 백옥처럼 하얗다.
황씨는 평평한 바위 위에 준비해 온 밥과 고추장을 꺼내 놓는다. 계곡의 물에서는 금강모치와 열목어가 한가로이 헤엄치며 논다. 채취한 산나물을 물에 씻는다. 넓적한 산나물 잎 한 장에 밥을 싸고 고추장을 얹어 입에 넣는다. 반찬이라고는 고추장과 산나물뿐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맛있을까.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식사 후에는 계곡의 물을 그냥 퍼 마신다. 물맛 또한 달디 달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살아왔어요. 학교도 중단하고 부모님 모시고 산나물 뜯어 자급자족하며 생활했어요.”
어찌 황씨뿐일까. 진동리, 귀둔리 사람들의 20∼30%가 오래 전부터 황씨와 같은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삶이었다.
푸른농원의 산채정식은 5향(香)과 5미(味)가 갖춰진 음식이다. 산골 음식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갖가지 묵나물과 쌈으로 쓸 수 있는 싱싱한 곰취, 참취가 나오는데 산채마다 입 안에 휘도는 향기가 제각각이고 맛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구운 돼지고기라도 곁들여 쌈을 싸 먹으면 임금님 수라상 부러울 것 없다. 원시의 산이 생성한 생명의 기운이 산나물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번져 가며 힘이 솟는다.
진동리에는 진동산채가란 음식점도 있다. 거기서 맛볼 수 있는 산채정식에는 다섯 가지 산나물 반찬에 목이·석이버섯과 향미 그윽한 자연산 더덕구이가 곁들여진다. 이들을 깔끔하게 다듬어 내는 주인 최춘지 아주머니(62)의 정성에 상차림이 더욱 빛난다. 더덕구이와 산채를 안주 삼아 동동주 한 사발을 들이켜면 산골의 풍요가 입 안 가득 느껴진다.
인제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가난이 서러워 사람들이 자꾸만 도시로 떠나던 땅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사정이 바뀌어 떠났던 이들이 돌아오고 있다. 명경 같은 물이 흐르는 내린천이 아름답고, 원시의 점봉산과 필례계곡이 있고, 방동약수와 개인약수 같은 약수터가 있어 휴양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게다가 철 따라 야생화가 제 모습을 뻐기며 함초롬히 피어나 도처가 무릉도원 같은 인상을 준다.
요즘은 길가나 산밑에 민박용 통나무집들이 점점이 들어섰다. 맛난 자연산 산채 음식을 찾아 그곳으로 여행했다가 그런 통나무집에서 하룻밤 단잠을 자보라. 밤에 소쩍소쩍하는 두견이 울음소리와 아침에 찾아드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영육에 촉촉이 스미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 곳에서라면 몸 안의 문명병의 찌꺼기가 밀려나는 것도 잠깐이다. 돌아오는 길에 전신이 개운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다.
산나물, 그 중에서도 인제 땅 점봉산이 길러 준 산나물은 신의 숨결이 살아 있는 ‘먹는 보물’이다. 그것은 대지(大地)가 밀어낸 약(藥)이요,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 할 만하다. 인제 땅에서 맛볼 수 있는 소박하고 정갈한 산채 음식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