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 없는 사람!
나는 이름 없는 사람! 당신은 누구세요?
당신도- 또한-이름 없는 사람인가요?
그럼 우리 한 패인가요?
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알릴 거에요-당신은 알아요!
어찌나 재미없는지요-뭐 대단한 사람-인 양 구는 것은요!
얼마나 공공연한지요-개구리처럼-
자신의 이름을-유월 내내-
칭송하는 늪을 향해-말하는 것은요!
- 에밀리 디킨슨(1830~1886), ‘나는 이름 없는 사람!’ 중에서
평생 자갈밭 걸어오신 어머니
세상 바꾸는 ‘이름 없는 사람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한평생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을 하며 사셨다. 그러나 나는 잘 안다, 어머니가 결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태풍이 휩쓰는 것 같은 세월에도 자갈밭을 걷는 험한 길에서도 어머니는 묵묵히 단단하게 살아오셨고, 햇살과 바람이 나무 잎사귀들 사이에서 노닐 때 그들의 몸짓을 자신의 것처럼 흥겨운 노래와 언어로 불러내셨다.
우리 대부분은 ‘이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또 다른 ‘이름 없는 사람’을 알아보고 “당신도 그렇지? 그러니 우리 한패구나”라며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상은 이들로 인해 바뀌기도 하고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사람’과 대비되는 ‘대단한 이름의 사람’들은, 19세기 미국 동부의 한구석 애머스트에서 평생을 살다 간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따르면, 여름날 ‘늪’을 향해 울어대는 개구리와 같다. 개구리가 울어대듯 그들은 그저 힘을 휘두르고 있을 따름이다. 여름이 지나면 개구리는 개굴개굴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동면에 들어야 할 처지가 되듯, 그들도 언젠가 힘을 잃는다.
[출처: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 허현숙 건국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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