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가치’ 헌법에 담은 스위스
2017-11-22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upload/bbs/201711/20171121142338831/20171121142338831.jpg)
‘알프스의 관광대국’ 스위스가 21세기를 맞아 ‘농업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스위스의 국토면적은 4만1300㎞로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더구나 2016년 말 기준 농가수는 약 5만2000가구에 불과해 농업강국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스위스 정부는 전국 가구의 1% 남짓한 농가에 국가 예산의 6%를 투입하고 있다.
특히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헌법 104조’를 탄생시켜 세계 어느 국가도 생각하지 못했던 농업 지원을 펼치고 있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스위스 농가들은 전체 국민이 필요로 하는 식량의 60%를 책임진다. 농업강국으로 도약하는 스위스의 비결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실패로부터 얻은 소중한 경험=세계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알프스산맥이 국토에 걸쳐 있는 스위스. 경사가 심한 산악지역이 국토의 31.3%를 차지하고 빙하가 25.3%에 이르는 등 농사짓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평야면적은 27만3000㏊로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이 5.2㏊에 그쳐 유럽에서는 최하위권이다. 평지와 구릉지 중심의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이 50㏊에 이르는 독일이나 80㏊에 달하는 영국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이런 가운데 1990년대 초 시장개방이 전세계를 휩쓸었을 때 스위스도 그 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농축산물 수입으로 농민수가 급감했고 국토는 황폐화될 위기에 처했다. 이를 경험하면서 스위스 국민은 농업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취리히에서 만난 시민 수잔 그라프(72)는 “농민들이 아니면 누가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산꼭대기까지 정원과도 같은 스위스 특유의 경관을 관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러한 인식은 자유로운 교역을 목표로 1993년 출범한 유럽연합(EU) 가입에 제동을 걸었고, 연이어 1996년 농업보호를 천명한 헌법개정을 이끈 원동력이 됐다.
◆ 헌법 104조에 천명한 농업·농촌 보호=농업보호 필요성에 대한 스위스 국민의 의식변화를 간파한 연방농업청은 1996년 헌법개정에 맞춰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담고자 적극 나섰다. 국민투표 전에 공청회는 물론이고 다양한 이해관련 단체와 공식적·비공식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힘썼다.
결국 헌법 104조 1항에 농업의 핵심역할을 ‘식량의 안정적 공급’ ‘자연 자원의 보전과 경관 유지’ ‘인구의 분산정책’으로 명확히 규정해놓게 됐다. 또한 2항 ‘경자유전’, 3항 ‘상호의무준수’ 사항을 추가해놓았다. 경자유전이란 필요한 경우 ‘경제자유 원칙을 배제하고 토지를 실제로 경작하는 농민을 중시’하는 것이고, 상호의무준수는 ‘농민들이 농사에 임할 때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농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겠다는 게 스위스 헌법의 골자다. 크리스틴 베데르처 스위스 농민연맹 홍보담당은 “정부가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해 투입하는 직접지불제 예산이 28억스위스프랑(3조1100억원, 농가당 평균 6000여만원)으로, 전체 농업예산의 80%를 웃돌 정도”라면서 “이런 지원이 가능한 것은 바로 헌법 104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 스위스 농민들의 소득안전망 ‘직접지불금’=헌법 104조의 구현은 공익형 직불제의 확대·강화로 귀결된다. 이를 위해 스위스의 직불제는 매우 정교하게 구성돼 있다.
식량안보와 경관보전을 중심으로 한 기본형 직불금과 생물다양성·경관개선·생산시스템·자원효율성 등 4가지 가산형 직불금을 두고 있다. 또 직불제 참여 등으로 소득이 크게 감소하는 농가를 위한 전환직불금을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농가는 조건만 충족되면 여러가지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수령하는 직불금도 조건에 따라 차등화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1인당 받을 수 있는 최대 한도는 7만스위스프랑(약 7800만원)이고, 배우자 또는 부모가 농사에 참여하면 수령할 수 있는 직불금은 10만스위스프랑 이상으로 늘기도 한다.
하지만 직불금을 받으려면 생태학적 성과증명이 필수다. 생태학적 성과증명에는 동물복지 실천, 질소와 인 등 영양분의 균형, 3㏊ 이상 농지에 4개 작물 이상의 윤작, 토양보호, 농약사용 제한 등 매우 엄격한 조건이 포함돼 있다. 직불금은 만 64세까지 지급되고 만 65세부터는 농민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이 노령연금을 받는다.
프리스카 디트리치 스위스 연방농업청 농업정책 전문가는 “스위스의 헌법은 농민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대신 농민들에게는 보상에 합당한 의무를 요구해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서 “특히 국가가 4년 단위로 정책혁신을 통해 헌법 104조를 일관되게 추진해가는 게 최대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알프스 고산지대서 17대째 낙농업하는 토니 에틀렌씨
“농지·경관 보전 대가 직불금이 농민의 버팀목”
높은 인건비 등 감안하면 수익 적지만 국민에게 최고의 먹거리 제공 자긍심
융프라우, 마터호른과 함께 스위스 알프스 3대 절경을 자랑하는 루체른의 해발 800m 산기슭. 낭떠러지 같은 발아래로는 수십여채의 농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뒤쪽으로는 해발 2000m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먼 동쪽으로는 알프스산의 만년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경사에 똬리를 틀고 있는 도로를 보면 아찔하다. 잠시 쉬거나 관광을 하기에는 좋지만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토니 에틀렌(40)은 이곳에서 17대째 낙농업을 이어오고 있다. 목초지 37㏊와 산림 10㏊를 관리하며 젖소 50마리, 송아지 20마리를 사육한다. 특히 그가 목축을 하는 초지 37㏊ 가운데 18㏊는 해발 2000m 부근의 고산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젖소 50마리 중 25마리를 6주씩 교대로 방목 사육한다. 고산지대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것은 농지보전과 경관보존 등을 위해 정부가 장려하는 정책이기도 하다.
에틀렌은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해발 2000m 부근의 고산지 목장을 하루 2~3차례씩 오가는 게 힘들지만 최고품질의 유기농 우유를 생산하기에는 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악한 여건의 고산지대에서 친환경적으로 목초지를 관리하고 유기농우유를 생산하며 정부로부터 약 10만 스위스프랑(약 1억1200만원)의 직불금을 받는다. 농지보전·식량공급·경관보전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에틀렌의 연간 농업 조수입 20만2000스위스프랑(약 2억2500만원)의 절반 정도가 직불금이다. 스위스 농민들에게 직불금이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얼핏 많은 듯한 조수입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의 높은 인건비와 비싼 물가·농자재비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그가 손에 쥐는 것은 별로 없단다. 국민에게 최고 품질의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자긍심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다. 이런 자긍심이 초등학교까지 3㎞나 떨어진 열악한 여건에도 아내 로츠(39)와 함께 여덟살·여섯살·세살짜리 딸을 기르며 꿋꿋이 가업을 잇게 하고 있다.
에틀렌은 “경관을 보호하며 목축을 하는 게 매력적이고 지역사회를 유지하는 보람이 크지만, 직불금 지원이 되지 않는다면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농민보호 정책에 고마움을 표했다.
취리히,옵발덴=김기홍 기자 sigmaxp@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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