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젓, 양념 절제 김치 비법
90년 전인 1932년 11월 매일신보에는 ‘김장 때가 왓스니 김장을 담급시다’라는 기획기사 첫머리로 ‘통김치 담그는 법’이 실렸다. 배추 100통인데 ‘고초가루 한 보시기’라고 적혀 있다. 보시기는 “사발보다 작고 종지보다 크며…깊고 오목한 작은 사발 모양의 지름 5~10㎝ 안팎 그릇”이다(『한국의식주생활사전』). 예전보다 작아진 요즘 밥그릇 크기쯤 될 듯하다. 배추 포기가 커지기도 했지만, 요즘은 배추 5통에도 고춧가루가 그만큼은 들어갈 터이다.
김치가 역사 깊은 한국 전통음식이고 식생활 필수품이지만, 한국인이 오늘날과 같은 김치를 먹은 건 길게 보면 200년, 짧게 보면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100년에도 김치는 끊임없이 변했다. 또 변하고 있다. 주재료와 양념이 개량되고 종류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조합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이다. 반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대를 이어 변함없이 유전하는 김치 DNA도 있다.
본선 20명 ‘작품’ 가운데 첫손 꼽혀
20명이 1인당 네 가지씩 담근 80가지 김치를 시식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김치 맛이 특별했다. 함께한 7인 의견이 거의 같았다. 맛이 두루 조화로웠다. 자칫 넘칠 수도 있는 의욕을 잘 다스리며 맛의 요소를 꼼꼼히 챙긴 자제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맛이 시원하고 편안했다. 지난달 20일 광주 세계김치연구소에서 열린 제29회 대한민국 김치경연대회 본선이다. 튀는 맛이 아닌 조화로운 맛으로 튄 그 김치의 주인공 이영숙(61)씨가 결국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그의 김치 비결이 궁금했다. 때맞춰 김장철이다. 11월 22일은 제정 후 세 번째 맞는 김치의 날이기도 하다. 대통령상 받은 김치를 참고해 김장하면 새롭고 더 맛있는 김치가 되지 않을까. 도움이 될 듯하여 지난 7일 그를 찾아갔다. 레시피를 먼저 받았다.
▶배추김치 재료: ①주·부재료: 배추 5.5㎏(절임 4㎏), 천일염 550g, 무 500g, 갓·쪽파 각 100g, 미나리 70g, 배 200g. ②양념류: 깐 마늘 150g, 깐 생강 30g, 차조죽 200g, 새우액젓 380g, 새우젓 육수 400g, 고춧가루 220g, 검정깨·실고추 약간씩. ③새우젓 육수 재료: 물 1L, 다시마 15g, 새우젓 50g.
조리법: ①배추 밑동을 잘라 반으로 가르고 물 4L에 천일염 300g을 녹여 소금물을 만든다. 배추를 소금물에 적신 후 배추 갈피에 소금을 조금씩 흩뿌리고 자른 단면이 위로 오도록 통에 담는다. 소금물을 붓고 남은 소금을 뿌린 다음 무거운 걸 올려 배추가 소금물에 잠기게 해 8시간 절인다. ②잘 절인 배추는 맑은 물에 3~4차례 씻어 채반에 건져 물기를 뺀다. ③차조와 물 1:8 비율로 죽을 끓여 식혀 놓는다. ④새우젓 380g, 물 380g을 중불에 10분 끓여서 거름망에 꼭 짜서 새우액젓을 만든다. 새우액젓을 거르고 남은 건더기에 물 1L, 다시마 15g을 넣고 10분 끓여 걸러 새우젓 육수를 만든다. ⑤무·배는 2㎜ 굵기로 채 썬다. 쪽파·미나리·갓은 4㎝ 길이로 썰어 놓는다. ⑥무채에 고춧가루 물이 들도록 버무려 놓고, 남은 고춧가루에 새우젓 육수·새우액젓을 넣어 고춧가루가 불면 부재료와 양념을 섞어 김칫소를 만든다. ⑦배춧잎 사이에 소를 넣고 겉잎으로 감싸 단면이 위로 오도록 김치통의 80%를 채워 넣고 남겨둔 겉잎들로 덮어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담는다. ⑧15℃에서 36시간 경과 뒤 4~6℃에서 20일쯤 숙성해 먹는다.
▶왕대추반지 재료: ①주·부재료: 배추 3㎏(절임 2㎏), 초롱무 1㎏, 천일염 440g, 물 4L, 무 150g, 왕대추 200g, 배 150g, 밤·쪽파·미나리·갓 각 70g, 청각 40g. ②양념류: 마늘 30g, 생강 8g, 석이버섯 약간, 새우액젓 30g, 소금 5g. ②국물 양념: 물 2L, 간 마늘 20g, 간 생강 5g, 천일염 26g, 죽 국물 400g. ③새우젓 육수: 물 1L, 왕대추 100g, 다시마 15g, 새우젓 50g.
조리법: ①배추는 다듬어 반으로 갈라놓고 물 3L에 천일염 150g을 녹여 소금물을 만든다. 배추를 소금물에 적신 후 배추 갈피에 천일염 100g 정도를 뿌려 단면이 위로 오도록 통에 담은 다음 남은 소금물과 천일염을 뿌린다. 배추가 소금물에 잠기도록 무거운 것을 올려 6~7시간 절인다. 초롱무는 다듬어서 물 1L와 천일염 90g 소금물에 4시간 절인다. 갓·미나리·쪽파도 40g씩 무와 함께 2시간 절인다. ②잘 절인 배추·무와 다른 채소들은 깨끗이 씻어 채반에 건져 물기를 뺀다. ③차조와 물을 1:10 배율로 죽을 끓여 식혀 놓는다. ④새우젓과 물을 1:1로 끓여 거름망에 꼭 짜서 새우액젓을 만든다. ⑤새우젓 육수는 새우젓, 다시마, 소에 쓸 과육을 도려내고 남은 왕대추 자투리를 넣고 끓여 식힌다. ⑥무·왕대추·배는 3㎝ 길이로 곱게 채 썰고, 쪽파·미나리·갓은 30g씩 2.5㎝ 길이로 썬다. 마늘·생강·밤도 곱게 채 썬다. ⑦절인 쪽파·미나리·갓을 타래 지어 놓는다. ⑧부재료를 모두 섞고 새우액젓과 소금에 버무려 배추 갈피마다 소를 넣는다. ⑨통에 절인 갓·미나리·쪽파 타래와 청각을 밑에 깔고 소를 넣은 배추를 내용물이 빠지지 않도록 잘 감싸서 넣은 다음 초롱무를 위에 올린다. ⑩새우젓 육수와 죽 국물에 무·배 자투리 간 즙을 섞어 전체 2L의 국물을 만들어 조심스럽게 붓는다. ⑪15℃에서 36시간 1차 숙성 후 4~8℃에서 2주 경과 뒤 먹는다.
김치 맛, 온도관리·공기 차단이 좌우
이씨에게 김치 맛의 비결을 물으니 새우젓, 온도, 밀폐(공기 차단) 세 가지를 꼽았다. 온도와 밀폐는 모든 김치에 해당하는 조건이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김치는 일반적인 김치에 비해 새우젓과 차조죽 두 가지가 색다르다. 젓갈은 새우젓만 쓰는데 물을 타고 끓여서 거른 액젓을 쓴다. 찹쌀이나 밀가루 풀이 아니라 차조로 쑨 죽이 들어간다. 그 내력을 거슬러 오르면 김치 하나에 박힌 한국 현대사와 생활문화사의 고난과 결핍이라는 거대한 뿌리가 유전자처럼 밝혀진다.
그의 고향은 소양호~파로호 중간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 두메산골이다. 어릴 때는 해산물은 구경도 못 하고 나물만 먹고 살았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6·25 때 화천에서 군 복무를 했고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그때 화천 처녀를 사귀어 제대하면서 결혼하고 처가 마을에 정착해 정미소를 운영하며 살았다.
서해가 가까운 예산 출신 아버지는 장날이면 새우젓을 사와 할아버지 할머니 밥상에 올렸다. 그렇게 새우젓을 알게 됐고, 어머니는 점차 김치에 이용하게 됐다. 귀한 것이기에 많이 쓸 수는 없어서 물을 타고 끓여서 액젓으로 만들어 썼다. 식구가 일꾼까지 13~14명이나 돼 김장을 400~500포기 담갔다. 키가 1m 넘는 독 스무 개를 가득 채워 집 지하 김치광에 저장했다.
그 산골엔 찹쌀이 귀했다. 소양강댐(1967년 4월 착공, 1973년 10월 준공)이 막히면서 수몰 지구에 살던 화전민들이 산을 넘어 간척리로 많이 이사했다. 전답이 없어 산을 일궈 농사를 짓던 그들은 토질이 박한 밭에 조를 많이 재배했다. 그 바람에 흔해진 차조로 죽을 쒀서 김장했다. 그의 김치 맛은 양념 절제로 자아낸 조화와 시원·깔끔함이 특징이다. 결핍 속에 단련된 맛이 양념 과잉 시대에 새로운 미덕으로 꽃이 핀 셈이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 중앙일보 기자. 늘 열심히 먹고 마시고 여행한다. 한국 음식문화 동향 관찰이 관심사다. 2018년 신문사 퇴직 후 한동안 자유인으로 지내다가 현재는 경희대 특임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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