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의 기본은 농지다. 농지가 있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농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려고 해도 농지는 필수다. 직불금 등 각종 지원을 받기 위해 기본조건이 되는 농업경영체는 농지를 최소 1000㎡(302.5평) 소유 또는 임차하고 있어야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농지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 농업에 새로 뛰어드는 이들은 농민으로서 최소 규모의 농지도 쉽게 구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농업인구의 감소세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에서 농지가 없어서 농업을 포기하는 일을 막아야만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농지, 비싸고 물량은 없다=농지 매입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올 1분기 농지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농지 1㎡당 평균 가격은 6만5150원이었다. 국내 영세농의 기준이 되는 0.5ha(1512평) 규모의 농지를 매입한다고 가정하면 3억2575만원의 자금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농지가격은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같은 기간 경기도 농지가격은 1㎡당 18만4350원, 제주도는 13만9626원으로 평균을 훌쩍 뛰어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역에 따라 필요한 자금이 2∼3배 늘어난다.
실제로 청년농들은 농지 구매자금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지 구입 경험이 있는 청년창업농 374명을 대상으로 농지 매입 시 애로사항을 물은 결과 66.8%가 ‘구매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매물로 나온 농지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농지 거래 대부분이 지인이나 마을주민 등을 통해 이뤄지는 탓에 농촌에 연고가 없는 이들은 농지 매매 물량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농지 유동화를 전담하는 유일한 공적기구인 농어촌공사 농지은행관리원이 농지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전체 농지 거래량 대비 비중은 낮다. 2019년 국내 농지 전체 매매 물량은 5만6380㏊였지만 농지은행을 통한 매매 물량은 1629㏊(2.9%)에 불과했다.
◆농지은행, 선매권 갖고 사업대상 늘려야=이에 농지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농어촌공사는 농지은행사업을 통해 고령은퇴농·비농민이 보유한 농지를 매입하거나 임차해 청년농 등 농지가 필요한 농민들에게 농지를 팔거나 임대해주고 있다. 하지만 농지은행이 비축·매입한 농지 물량이 수요에 한참 미치지 못하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농지를 비축·매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 방안으로는 농지은행에 대한 선매권 부여가 꼽힌다. 농지은행이 선매권을 갖게 되면 매물로 나온 농지가 시장에 맡기기보다는 농업적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농지은행이 해당 농지를 강제로 매입할 수 있다.
이렇게 강제 매입한 농지는 다른 농민에게 임대 혹은 매각해 농업 목적으로 계속 이용되도록 해야 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독일·프랑스는 우리의 농지은행 같은 공공기구가 농지 선매권을 갖고 있다.
농지은행이 매입할 수 있는 농지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농어촌공사는 농지를 매입할 때 논 비율이 높은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우선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또 1000㎡ 미만의 소규모 농지는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지은행이 공급하는 농지는 논보다 밭을 선호하는 농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장기임차하는 농민들에게 해당 농지의 소유 우선권을 부여하는 사업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정호 환경농업연구원장은 “농지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청년농 등 농업에 막 뛰어든 신규농이 임차를 통해 농사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농지를 소유해 농사를 짓는 게 바람직하다”며 “농어촌공사는 10년 이상 농지를 장기임대한 청년농이 해당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임차농지 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지 임대차 제도 손봐야=일각에선 농지 유동화를 위해 농지 임대차 허용 범위를 확대해야 된다고 말한다. 2021년 임차농지비율이 47.7%에 이르는 등 전체 농지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미 임대차에 이용되고 있는데 농지 임대차를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하는 현행법과 현장과의 괴리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농민들이 소유한 농지 대부분이 고령농의 소유이기 때문에 향후 상속·이농 등으로 비농민의 농지 소유 비율이 늘면서 임차농지비율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지 임대차를 금지한다. 다만 징집이나 질병 등 불가피한 경우 농지 임대차를 허용한다.
박석두 GS&J 인스티튜트 연구위원은 “헌법 121조 1항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다루지만 2항은 불가피한 사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해 농지 임대차를 인정한다고 돼 있다”면서 “현행 농지법은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농지 임대차만 다루고 있고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 측면에서의 농지 임대차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사를 지으려는 이들이 농지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농지 임대차의 허용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지 임대차 허용 범위를 무작정 넓히자는 것은 아니다. 농지 임차 허용 대상으로는 청년농, 신기술 도입 농가, 법인경영체 등 우선순위를 따져 추가하는 방안이 꼽힌다. 또 일정기간 이상 농사를 지은 고령농이 경영이양을 전제로 은퇴하기 전 소유한 농지에 한해선 농지 임대를 허용해주자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임차료 상한제, 최소 임대차 보장기간 등 임차농을 보호하는 규정 마련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주문한다. 박 연구위원은 “농지 임대차 확대와 함께 임차농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지 임대인과 임차농 쌍방의 의무를 농지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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