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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농가이야기

농산물 부가가치 높이기

절대적 생산비 감축 한계

농민신문 입력 : 2022-08-15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160원. 월급으로 환산하면 191만원이 넘는다. 캄보디아의 최저임금은 월 194달러(약 25만원)로 우리의 7분의 1 수준. 전국에서 농지가격이 가장 낮게 평가된 전남지역의 2020년 농지 평균가격은 1㎡당 4만4000원. 1㏊면 4억원을 웃돈다. 은행에서 연 3% 이자만 받아도 1200만원을 손에 쥘 수 있지만 농사로 그만한 수익을 내긴 쉽지 않다. 생산의 핵심요소인 노동·토지 비용이 대한민국을 ‘농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몰아가고 있다. 필수재인 비료·사료·에너지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고비용 한국농업은 어디서 지속의 근거와 활로를 찾아야 할까.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와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이 만나 현상과 대안을 짚었다. 두 전문가의 대담은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됐다.

- 우리농업의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하는 것 같다.
▶임=경제 성장으로 인건비와 토지용역비가 증가한 탓이다. 어느 나라라도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이루면서 농촌 인력이 급속도로 이탈했고 농지문제도 독특한 측면이 있다. 농지가격은 농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가치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데 한국은 농민들조차 농지를 재산 증식 수단으로 여기고 개발을 기대한다. 즉 우리농업 고비용구조를 초래하는 농지문제는 느슨한 농지 보전제도에 따른 농지훼손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남=농가 규모가 작기 때문이라고 본다. 농사지으려면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있는데 작은 땅에서 농사짓다보니 비용 대비 수익이 안 나는 것이다. 심지어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은 2015년 1.2㏊에서 2020년 1.08㏊로 10% 감소하는 등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 규모화를 가로막은 요인은.
▶남=역시 토지문제다. 고령농들이 생계를 위해 은퇴하지 않고 작은 농지까지 소유하려고 하면서 농지 유동성이 낮아졌다. 특히 이들이 기계화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농사에 품이 적게 드는 벼농사로 몰리면서 쌀 수급문제도 불거진다.

▶임=토지문제라는 데 동의한다. 토지정책·상속정책이 안 바뀌는 한 규모화를 이루긴 어렵다. 스위스는 농지를 농사지을 자녀에게 물려주거나 주변 농가에 팔 경우 세금을 적게 물리고 외지인이나 비농민에게 팔면 세금을 많이 부과한다. 농사지을 자녀나 주변 농가에 농지를 넘기니까 자연히 규모화가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도시의 자녀 등에게 농지가 파편화돼 있다.

▶남=직불제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 농가 상당수는 경작 규모가 0.5㏊ 미만 고령농인데, 직불금을 받을 생각에 은퇴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 고비용문제를 정부가 해소할 길은 없을까.

▶임=결국 생산비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미국의 가격손실보상제도(PLC)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자국 농경지의 85%를 차지하는 15개 품목을 대상으로 기준가격을 정해놓고 시장가격이 그 이하로 떨어졌을 때 차액 일부를 보전해준다. 가격 하락 위험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미국 농민들은 각자 시장을 예측하고 판단해 15개 품목 가운데 무엇을 재배할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처럼 쌀만 많이 심는 일은 없는 것이다. PLC가 대다수 가족농과 중소농을 위한 정책이라면 대농은 보험제도로 보호한다. 우리나라도 물론 농작물재해보험이 있지만 대상 품목이 한정적이고 그나마도 수량 피해 보상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전체 보험의 80%가량이 수입(收入)보장보험이다. 보험을 통해 수량과 가격 위험 부담을 동시에 덜어주는 것이다.

▶남=결국 규모화인데 규모화를 가로막는 토지문제를 당장 해결하긴 쉽지 않다. 지금의 틀 안에서 식량작물공동(들녘)경영체 육성사업을 확대·개선해 경영체가 대규모 농지를 경작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농민은 경영체의 주주가 될 수도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영농대행회사를 육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농작업 대행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농 전 과정을 대행해주는 개념이다. 영농 주체가 이렇게 바뀌면 농민 개개인이 농기계 등을 소유할 필요도 없고 연로한 몸으로 직접 농사지을 필요도 없다. 정부는 경영체나 회사에 농기계 등을 지원하고 농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 등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임=체코가 딱 그렇다. 주변의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은 소련 붕괴 후 집단농장을 해체하면서 농업생산성이 악화했는데 체코는 농장을 분할하지 않고 협동조합 등이 운영하도록 해서 생산성을 높였다.

▶남=그렇게 규모화가 돼야 요즘 많이 거론되는 스마트농업도 가능해진다.

- 새 정부도 스마트농업을 강조한다.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임=스마트농업은 데이터를 활용해 비료와 농약 등 농자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농업이다. 고비용에 시름하는 우리농업에 대안이 되리라 생각한다. 다만 갈 길은 멀다. 최근 스마트팜을 도입한 강원 평창의 파프리카농장에 다녀왔는데 농장주가 “여기 국산은 나뿐”이라고 하더라.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다 외국산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스마트농업 관련 기자재와 프로그램 등을 하루빨리 국산화해 현장에 싸게 공급해야 한다. 농촌진흥청은 스마트농업 영농기술을 빨리 만들어 보급해야 한다.

▶남=스마트농업의 기술적 완성도는 높아지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다시 규모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영세한 농가는 스마트농업에 드는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없고 설령 지불한다고 해도 비용 대비 큰 효용을 얻지 못한다. 결국 기술에 맞는 구조가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 소와 쟁기로 농사지을 땐 자투리땅도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규모화된 경영체나 영농대행회사가 스마트기술을 도입하면 넓은 땅에서 작물 배치와 출하시기 등을 조절해 시장 수요에 맞춰 공급하는 게 가능해진다.

- 결국 비용 감축보다는 부가가치를 높이는 게 해법처럼 들린다.

▶임=한국의 경제 규모에서 절대적 비용 감축엔 한계가 있다. 농산물 부가가치를 높여 생산비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게 해법이라고 본다. 스위스는 그린바이오산업 등 농업 전방산업이 잘 발달했다. 이를테면 농산물을 활용한 의약품이나 화장품 등을 만드는 산업이다. 농산물이 비싸도 이를 사줄 든든한 전방산업이 있으니 농업이 유지된다.

▶남=동의한다. ‘농업=농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한된 땅 안에서 이뤄지는 농사만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유럽연합(EU)의 ‘팜 투 테이블(농장에서 식탁까지)’, 즉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농업 전후방산업을 혁신해야 농민이 편해지고 안정적인 수취가격을 받을 수 있다.

▶임=탄소중립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농업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국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2.9%밖에 안된다면서 ‘더이상 줄일 것도 없다’고 수세적으로 대응하지 말자는 것이다. EU는 농산물이 생산돼 소비자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전체의 25%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농업이 국민적 관심도 받고 가급적 탄소마일리지가 낮은 국산 농산물을 먹어야 한다는 소비자 인식도 싹튼다. 신선농산물 배송 차량의 탄소배출을 줄이는 등 연구개발도 활발히 이뤄지는데 이 역시 탄소중립을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우리 농업계는 탄소중립에 대한 인식 자체가 미미하다. 친환경인증제 등은 농림축산식품부 소속기관인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관리하는 데 반해 저탄소농산물 인증제만 준공공기관인 한국농업기술진흥원(옛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관리하는 게 그 방증이다.

- 일각에선 농산물을 전량 수입해먹자고 한다. 그래도 농업을 유지할 이유가 있다면.

▶남=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석유보다 식량이 비싼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10년 후면 지금의 에너지 위기보다 더 심각한 식량 위기가 도래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비해 국민 식량을 책임지는 농업을 지켜야 한다.

▶임=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세계 식량 생산과 유통이 과점화됐다. 지난해 곡물 수출 상위 5개국의 점유율을 보면 밀 63%, 쌀 79%, 옥수수 88%, 콩 97% 등이었다. 5개국 중 한곳에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곡물가격은 폭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내에 탄탄한 농업생산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식량안보를 차치하고라도 선진국으로 가려면 농업 발전은 필수다. 국내총생산(GDP) 개념을 만들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후진국이 경제개발을 통해 중진국까지는 될 수 있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산업적·공간적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도 ‘서울 공화국’이라고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농촌 아닌가. 그 공간을 지탱하는 산업으로서 농업을 유지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진행=홍경진 기자, 정리=양석훈 기자,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직불제

직접지불제의 준말로 정부가 생산자에게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 농업분야에선 목적에 따라 여러 직불제가 운영되다 2020년 공익직불제로 대부분 통합됐다. 공익직불제는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기본형’과 농가의 공익적 활동에 대가를 추가로 지불하는 ‘선택형’으로 구성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선택형을 확대하고 특히 농지를 이양하는 고령농에게 ‘농지이양은퇴직불’을 도입하겠다고 밝혀왔다.

◆가격손실보상제도(PLC·Price Loss Coverage)

미국에서 농산물 가격 하락 위험으로부터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로 시장가격과 목표가격 차액의 일부를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해 PLC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예산 한계로 대상품목이 소수로 한정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식량작물공동(들녘)경영체 육성사업

농림축산식품부는 50㏊ 이상 집단화된 논밭의 규모화와 조직화, 공동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교육·컨설팅, 시설·장비 구매, 사업다각화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공동사업 역량을 갖춘 경영주체를 육성해 농업 규모화 효과를 농촌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는 데 사업 목적이 있다.

◆탄소중립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흡수량은 늘려 실질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자는 개념. 우리 정부는 ‘2050 국가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통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2050년 농축산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824만3000t(감축률 37.2%)을 감축한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특히 목표의 71.1%(585만8000t)를 2030년까지 조기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사를 거쳐 농업기술실용화재단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했다. 2018년 한국정밀농업연구소를 설립해 미래농업의 주요 키워드로 꼽히는 기후환경 변화와 에너지 전환, 스마트농업 등을 연구하고 있다. ▲1968년생 ▲경북대학교 농화학과 ▲〃 분석화학 박사 ▲영국 랭커스터대학교 객원연구원 ▲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사무소(농업 ODA 전문가) ▲농림식품과학기술위원회 위원 ▲농특위 농어업·농어촌탄소중립위원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양정·통상·유통 등 농정을 폭넓게 아우르는 연구로 정부 정책 평가위원·자문위원을 두루 거쳤다. 미국 농업법(The Farm Bill) 전문가로 직불제·작물보험·수입보험 등 선진 제도의 국내 적용에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966년생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농업·자원경제학 박사 ▲농림축산식품부 정책평가위원 ▲외교통상부 통상정책 자문위원 ▲FTA 피해보전직불금 수입기여도 검증위원장 ▲한국농업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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